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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08. 2018

씨발새끼와 그린티 푸라프치노

한 시간 소설/ 씨발새끼와 그린티 푸라프치노 




"나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은 죄다 불완전한 것들이라고."


"재밌는 생각이네."


영철은 미영의 말을 듣고 호응했다. 미영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봤다. 모든 것이 불완전해 보인다.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딱 30분의 시간을 느낀다. 뜨거웠던 커피는 상온에 30분 있으면서 온기를 잃었다. 온도로 표현하기보다 '30분 식은'이란 수식이 완전하게 느껴졌다. 온도계의 눈금은 같은 위치의 모든 것을 같은 온도라 말하기 때문이다. 미영은 말을 이었다. 


"내 생각 속에 있는 것들만이 완전하게 느껴져."


"그 역시 재밌는 생각이야. 구체적 형체가 있는 물체보다 추상적인 너의 관념이 더 완전하다니. 보통 반대로 여기기 마련이잖아."



미영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영철의 존재가 고마웠다. 자신이 어렴풋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그 모호한 말을 영철은 항상 경청한다. 그리고 쉬운 말로 풀어서 정리한다. 마치 선생님처럼. 미영은 누구에게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하는 이가 한 명도 없다고 믿던 그녀다. 자신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가슴 한편에 봉인하고 사람들을 상대해왔다. 그러나 영철의 앞에선 숨길 필요가 없었다. 영철은 씨발새끼다. 


"영철아, 너는 정말 씨발새끼야."


"그거 재밌는 생각이네. 너는 이성 안에 완벽한 세상을 모방한 것이 이 세계라고 믿지? 그러나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 네가 완벽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니까 세상을 구분 짓는 거야. 그러나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벽 안 쪽을 보는 나의 존재가 이 세상의 삶을 어지럽게 만들지. 그런 의미로 내가 너에게 씨발새끼가 된다는 것을 알아."


"그래 맞아. 그런 너이기에 씨발새끼란 이 세상의 모욕적인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거지. 너는 친절하지만 무서운 씨발새끼야."


사실 영철에겐 씨발새끼란 표현은 듣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미영은 그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영철은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를 알기에 상처입지 않았다.


'미영은 영철을 30분 후에 만났다. 그것은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라는 말을 영희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며, 거짓인 이야기다. 미영은 카페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 하나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도시는 인공적인 것들의 집합이다. 버스 정류장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뿌리를 내린 나무다. 한 평 안 되는 공간을 나무에게 할당해줬다. 흙을 채워 어딘가에서 어느 정도 자란 나무를 가져와 심었을 것이다. 영철은 그런 미영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봤다. 


"저 나무 보는 거 맞지? 불완전한 세상이지만 자연스러운 것과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지. 이미 인류가 세상을 지배한 이후로 부자연스러운 것의 세상이 됐어. 너는 나무가 있는 곳이 부자연스럽지만 나무란 존재 자체는 자연스럽게 보겠지."


"맞아. 불완전한 것들을 완전하게 느끼고 완전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나도 거기 맞춰야 해."


미영은 불완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불완전하지만 고소한 향이 코끝을 울리고 사라졌다. 영철은 살짝 웃었다. 권태로운 미영의 표정을 재밌는 듯이 관찰하며 그도 자신의 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그린티 프라프치노 베이스에 시나몬가루를 뿌리고 슬라이스한 아몬드를 올린 호화로운 음료다. 세상의 다채로움을 한 입에 담는다. 영철은 서로 다른 식감과 맛을 즐겼다. 


"미영아, 너의 삶은 누군가에 맞춰가는 삶이며,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야."


"굳이 그런 이야기를 왜? 물론 맞는 이야기지만. 할수록 비참해. 


"너를 부정하고 싶지 않아. 이 세상을 완전한 세상의 부산물, 혹은 워너비로 바라보는 너의 힘듦이 애처로울 뿐이야. 다음엔 너도 시나몬 가루와 아몬드를 올린 그린티 푸라프치노를 마셔볼래?"



미영은 그의 말을 막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린티 푸라프치노가 마시고 싶었다. 영철은 어쩌면 완전한 존재일지 몰랐다. 완전한 존재가 지시하는 곳에 다른 완전함이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미영은 별안간 번쩍 일어섰다. 영철은 기립의 이유를 물으려 했지만 미영의 말이 빨랐다.


"지금 주문하고 오려고, 그거. 그린티 프라푸치노. 음, 푸라프치노? 어느 게 맞는 발음인지 모르겠지만 그거."


영철은 손뼉 치며 좋아했다. 지갑을 열어 자신의 돈을 주려고 했지만 미영은 거절했다. 5분 뒤 화려한 음료를 들고 미영이 자리로 돌아왔다. 미영은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했다. 영철은 흥미롭게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그녀는 결심이 선듯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손과 컵의 거리는 지구 반대편처럼 멀었지만, 도달은 빛보다 빨랐다.  컵 뚜껑을 벗기고 생크림과 시나몬가루, 아몬드 칩을 크게 한입 먹었다. 그녀의 코에 생크림이 묻었다. 미영은 이게 완전한 맛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맛있지? 내 것과 다른 푸라프치노야. 푸라프치노라는 단어는 똑같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푸라프치노를 마시고 있어."


미영은 더 이상 영철을 씨발새끼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속으로도. 프라푸치노는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은 맛임을 깨달았다. 


"미영아 있지, 그린티 푸라프치노는 이제 우리에게 친숙한 음료야. 어느 카페를 가도 메뉴판엔 그린티 푸라프치노가 있어. 여기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같은 브랜드의 기계로 같은 브랜드의 재료로 만든 푸라프치노지만 거기서 나온 재생산된 푸라프치노는 이전 것과 다르단 점이야. 어떤 것도 원본이 아니고 어떤 것도 복제품이 아니야. 모두가 말하는 프라푸치노라는 정의에는 시간과 공간에서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즉 일회적 현존성이 있어. 그런데 그 원본성이라는 것을 찾지 않을 때야 말로 모든 것이 의미가 되는 거지."


미영은 영철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살갗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어두워졌다. 카페가 암전 된 것인지 세상이 암전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파악하기도 전에 미영의 정신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호투제뿌뿌는 키키키후뿌뿌뿌뿌(가상현실에서 미영이라 불린)의 정수리에 꽂힌 가상 현실 접속 장비를 뺐다. 키키키후뿌뿌뿌뿌는 원래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원래 세상의 기억을 되찾았다. 가상 현실 속에서 완전 몰입을 위해, 접속 장비는 유저의 현실 기억을 없애고 가상의 삶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기계를 사용하면 가상 현실은 현실이 된다. 호투제뿌뿌는 키키키후뿌뿌뿌뿌의 동료로 뉴타입 가상 현실 접속 장비를 만든 과학자다. 키키키후뿌뿌뿌뿌는 실험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키키키후뿌뿌뿌뿌는 그린티 푸라프치노의 맛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에겐 진실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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