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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06. 2018

준환의 글

작가 준환은 고민에 빠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글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정갈하고 깊이가 있다. 그의 입은 그렇지 다.

"씨발, 왜 글이 안 나오는 거야. 빨리 명작을 써서 자격 미달 작가들 다 끄집어 내려야 하는데!"

준환은 자판을 두드리고 delete 키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저녁 9시에 시작한 쓰고 지우기는 오전 10시 노트북을 덮을 때까지 이어졌다. 200만 원 주고 산 신형 12인치 뉴 맥북의 액정을 쾅 하고 덮었다. 한 달 고료 200 받는 그에게 있어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200만 원짜리 감성 신줏단지도 그의 분노를 피할 수 없었다.

좆같네를 반복하며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옷걸이에 걸린 유니클로 울재킷을 집었다. 입구 옆에 있는 서랍에서 키를 꺼내 작업실을 나왔다. 준환은 3층에 있는 작업실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에서 아침형 인간인 준오를 만났다. 준오의 머리가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다. 그는 옆머리를 날카롭게 치고 목과 귀 옆의 잔털을 깔끔하게 제거했다. 준환은 그가 미용실에 들렸음을 눈치챘다. 평소라면 아침 9시에 딱 맞춰 출근했을 그다.

"어디 갔다 오냐?"
"나, 준오 헤어"
"좆같은 곳에서 좆같이 잘랐네."
"아침 인사가 거칠다. 또 못 썼어?"
"몰라. 나 간다. 좆같은 머리로 좆같은 글 많이 써라."

준오는 과격한 말을 뱉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작업실로 올라갔다. 글이 안 나올 때 극도로 예민해지는 준환이다. 가뜩이나 주변 인물들이 대단한 문학상을 쓸고 있는 마당에, 아무 것도 못 하는 그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돌리며 작업실에 들어가는 준오를 준환은 올려 봤다. 

작업실은 젊은 작가 2명이 사용한다. 준환과 준오다. 그들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같은 학번 친구다. 학교 다닐 때부터 유명했던 준환은 언제나 교수님들로부터 사랑 받았다. 군대를 전역한 첫해에 메이저 신문사 신춘문예에 단편을 투고, 당선되어 문학계에 등단했다. 그가 대학교 2학년 때다. 학교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등단작은 그에게 한국 문학계를 책임질 젊은 작가란 칭호를 수여했다. 그다음 해에 출판한 그의 장편 소설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반면 준오는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지역 신문사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 후, 준환은 그에게 같은 작업실을 쓰자고 권유했고, 그는 동의했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은 변했다. 준환은 첫 장편 출판 이후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잡지사와 출판사 잡지에 칼럼을 연재할 뿐, 자신이 소설을 쓰지 못 했다. 칼럼집도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지만, 초기에 받았던 관심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반면 준오는 달랐다. 늦게 시작했지만 꾸준히 작품 세계를 넓혔고,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지오는 엉뚱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다. 다소 깊이가 떨어진다는 비평을 받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작품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매해 한 작품씩 출간했고, 해를 거듭할수록 팬층이 두터워졌다. 

준오는 한 해에도 몇 개의 상을 받았다. 준오는 활동 영역을 넓혔다. 유머러스한 성격을 바탕으로 방송 출연을 하기 시작했다. 도서 관련 팟캐스트와 케이블 문학 관련 방송에 고정 패널이 됐다. 유쾌하고 재치 있는 언변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준환은 글에만 전념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글쓰기에 투자했다. 책상에서 쓰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준오였지만, 대중에 내보내는 세상은 더 많았다.

준환은 모든 게 다 불만이었다. 대중 매체에서 준오의 이름을 듣는 것도, 준오의 서글서글한 얼굴을 보는 것도 싫었다. 하루 종일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글만 쓰는 그에게 잘나가는 준오는 눈엣가시였다. 분칠하고 TV에 나오는 게 특히 꼴값이었다.

준오 욕을 하며 아버지가 등단 기념으로 사준 2010년식 국산 세단의 문을 열었다. 몸을 던지듯 운전석에 앉았다. 차 키를 돌리다 말고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워버렸다. 주먹으로 차 문을 쾅 하고 쳤다. 

"씨발... 씨발..."

문단의 소란스러운 기대도, 식어가는 기대도, 동료들의 활약도, 글이 써지지 않는 것 모두가 그를 분노하게 했다.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다. 즐겨찾기 목록에서 일간 베스트를 눌렀다. 일베 유저들은 생각 없이, 고민 없이 사는 것 같다. 사회의 시선을 무시하고 보란 듯이 자극적인 말을 쏟아냈다. 작가의 신분으로서 일탈이었다. 쓰레기 같은 글을 보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고, 이내 화가 누그러졌다.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타부를 보며 조소했다. 30분 정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좆같은 글을 보고 웃는 자신을 의식하자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 인생 존나 하타치네(별로네)"

핸드폰을 내려놓고 팔을 접어 얼굴을 가렸다. 노트북 스크린의 모든 인물들은 죽어 있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려 밤을 새우지만, 그들은 밀랍 인형 상태를 벗어나지 못 했다. 준환이 만든 세계는 생기를 잃고 문학을 의식한다. 현실과 글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데 그럴수록 벽의 존재가 뚜렷하다. 준오와 지수의 글은 자신이 봐도 감탄할 지경이다.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고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가만히 있던 그가 불현듯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을 보면 좋은 자극이 될까 싶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글'이란 검색어를 입력했다. 검색 결과를 보던 준환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제목이 '준환의 글'이다. 동명이인이 쓴 글인 것 같았다. 클릭하니 작성자의 블로그로 이동했다. 

블로그는 심플했다. 회색 바탕이고, 상단 중앙에 글방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있었다. 특별할 것 없었다. 글을 읽기 전까지는. 첫 문단에 준환과 이름이 같은 등장인물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 동명이인은 준환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작가 준환은 고민에 빠졌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글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정갈하고 깊이가 있다. 그의 입은 그렇지 않았다.

"씨발, 왜 오지고 지리는 글이 안 나오는 거야. 빨리 명작을 써서 자격 미달 작가들 다 끄집어 내려야 하는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수도, 준오도 등장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쓴 것 같다. 내 옆엔 아무도 없다. 말이 안 된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입장인데, 소설 안에 존재한다. 그럼 내 삶은 현실인가 허구인가. 내가 원하는 글이 이런 것이었나.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허무는 생동감. 나에겐 현실이니 경계가 있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실험을 위해, 열정을 위해 스스로 등장인물이 되고 현실을 등진 것인가?'


준환의 눈은 액정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 했다. 시선이 무한히 루프한다. 
준오는 스크린에서 준환을 내려다 본다. 그는 친구를 위해 변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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