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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04. 2018

내 시간도 거꾸로 간다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책은 좋은 도피처였다. 당시 읽은 책 중 하나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다. 몇 해 전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었다. 작가는 수사를 배제한 채,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했다. 마무리는 회사 취업 공고문처럼 딱딱했다. 독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함의를 찾게 만들려는 의도 같았다.

그 답이 어찌 됐던, 외국에 살면서 벤자민 버튼이 된 기분이다. 시간의 부산물은 나이만이 아니다. 그 안에 이해와 배움, 경험이 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해마다 성장한다. 더 세련된 말씨를 체화하고, 사회에 통용되는 행위를 학습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질문에 대해 다채로운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너 결혼하면 아이 몇 낳고 싶어?" 란 질문을 들었다고 가정한다. 
나이의 혜택을 받지 못했을 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세 쌍둥이를 낳고, 한 명은 축구 선수, 한 명은 가수, 한 명은 과학자 시킬 거야."

조금 더 머리가 크면,
"딸, 아들 한 명 씩 낳을 거야. 딸이 첫째고 아들이 둘째. 어른스러운 딸이 개구쟁이 동생 이것저것 알려주면 좋겠어."

결혼 적령기쯤 되면,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어. 미흡한 사회 제도가 우리 사회에 아이들을 하나 둘 줄여가는 것 같아. 물론 제도를 탓하기 전에 이렇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겠지. 기술 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 인구가 기계에 하나 둘 대체되고 있어. 그들이 일자리를 잃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지. 국가의 세수는 줄어들어. 또 국가는 노동하지 않는 빈곤 계층을 지원해야 해. 한정된 재화로 육아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야. 게다가 물가 상승률, 부동산 시세 상승률에 비해 평균 임금 상승률은 떨어지고 있어.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양육이 어려운 상황이야. 음, 무슨 얘기 중이었지?"

같은 질문에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해서 대응할 수 있다. 하드웨어가 담고 있는 자료 양도 늘어가고, 그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도 꾸준히 버전업을 한다. 결국 얼굴의 주름뿐만 아니라, 말이 담고 있는 깊이를 통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간혹 60, 70대 어른이 '양육비 오지고 지리는 각. 인정? 어 인정.'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성숙한 말은 넓고 깊게 간다.

말로써 우리는 어떤 안건에 대해 우리의 이해와 깊이, 경험을 드러낸다. 만약 그 깊이를 표현할 소프트웨어가 고장 나면 어떨까? 평생 써오던 소프트웨어 (한국말)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낯선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기존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 익숙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전제조건이 있다. 대화 상대가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언어의 필드 위에서만 언어의 드리블이 가능하다. 비유 집어치우고, 외국 나오면 외국말을 써야 한다. 

나같이 외국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의사소통의 퇴화를 경험한다. 유치원 수준의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복잡한 어휘와 개념을 요구한다. 하드웨어에 있는 지식 100 중에 80이 비효율적인 소프트웨어에 여과된다. 가끔 민감한 주제를 듣게 된다.

"인도 애들은 너무 불친절해. 신뢰할 수 없어."

상대가 말하는 배경을 이해하지만 잘못된 말이다. 머릿속 하드웨어에서 반박할 자료를 수집한다. 물론 상대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씨로 전달해야 한다. 하드웨어가 돌아가서 말을 정리한다.

머릿속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야. 최근에 몇몇 인도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그 인종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야.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 행동도 있어. 그것들을 '잘못'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 우리가 극히 일부를 기준으로 전체를 평가하고 비난할 수 없지. 현대적 관점에서 차별은 혐오로 읽혀. 기준을 피해자에게 옮기기 때문이야. 아무리 우리가 혐오의 의도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상대가 어찌할 수 없는 것(피부색, 국가, 언어, 문화, 성적 취향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한다면, 상대는 소수자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부정당한 것이 돼. 결국 너의 차별은 그/ 그녀/ 성을 규정하지 않은 이에게 충분히 혐오로 읽힐 가능성이 있어. 이제 우리는 형태소적인 의미만 해석하는 것을 넘어 편견, 대상화 등을 포괄하는 대개념으로의 혐오를 읽어야 해. 그들이 너에게 잘못을 했다면 그 잘못과 그들을 탓해야 하는 이유야. 그 인도 사람들을 이유로 인도 사람 전체를 대상화, 객관화해서는 안 돼.'  

입밖
"그거 인종 차별 아니야? 차별 나빠."

극단적, 과장된 예이지만, 일상적 경험이다.

조금 전 일이다. 강의가 끝난 교실에 나와 강사 둘만이 남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녀를 갖는 일에 대해 말하게 됐다.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합리적으로 그에게 설명하려 했다. 실패했다. 생각을 언어가 따라가지 못 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 중 하나를 페미니즘으로 설명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주입하는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는 개념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육아에 어떤 준비도, 계획도 없기에 적극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 호주는 사회 보장이 한국보다 잘 되어 있어 아이를 갖기 좋은 환경이지만, 임신은 여성의 신체적 희생을 강요해야 한다. 경력 단절보다 준비 안 된 와이프에게 임신을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어, 우리가 페미니스트라서..."

페미니스트여서 임신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를 요한다. 근거가 없으면 뜬금없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강사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생각을 다시 제대로 설명하기 전까지 쏟아지는 말의 폭격을 들어야 했다.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고, 정부와 직장에서도 경력 단절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펼치고 있다. 남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았다....."

26살에 한국을 떠났고, 한 살을 먹어 7살이 됐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원래 나이를 따라잡지 못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날이 오면 할 말.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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