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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08. 2018

첨 본 사람이랑 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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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자주 가는 카페 유머 게시판에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여초 카페에서 한 회원이 원피스 사진을 올리렸다. 치마와 레이스는 코르셋이니 이런 글 올리지 말라는 댓글과, 개인 행복 추구권이 페미니즘의 지향하는 방향과 달라 불편하다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코르셋이 가리키는 사회 통념과 억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내가 가는 카페는 소위 남초 카페로 반페미니즘 성향이 짙다. 한 회원이 그들의 댓글 몇 개를 캡처해 남초 카페에 올렸다. 그들의 다툼을 남성 입장에서 보며 조롱하는 반응이 많았다. 

오지랖 넓고, 호전적인 내가 쓴 댓글을 이렇다. 

  



보고 든 생각 3가지. 1.배우려는 자세/ 2. 대화하는 태도/ 3. 비폭력적인 소통방식. 

1. 디매 댓글과 비교해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길다. 저쪽 댓글은 최소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는데, 디매에서는 자기 생각 한 마디 툭 남기고 쿨하게 떠나는 느낌. 후훗 멍청한 여성들이군. 얼마나 유치한가. 저런 건 말할 가치가 없어. 피해망상 환자들의 인생은 피곤하겠어~라는 뉘앙스의 댓글이 대다수. 저도 탈코르셋, 코르셋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되려 저들의 댓글 보고 많이 배우고 느끼는 게 있네요. 디매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기 생각을 남기고 더 토론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할 듯. 막연히 조롱하는 게 아닌, 근거를 갖고 탈코르셋 운동에 반박하는 게 더 건강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고 맥락을 잡아서 나중에 대화할 때 쉬울 거예요. 댓글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되네요. 

가까운 예로 저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대의와 개인의 행복 추구권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하나란 질문. 우선 페미니즘이 인류의 대의에 맞나 어긋나나란 문제는 차치하고도, 저런 고민은 생산적이에요.
만약 노예 운동이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노예들이 그 생활에 익숙해져 그게 더 행복했다 해도 인권이란 대의엔 어긋나는 행동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옳았을까란 질문과 생각이 뒤 따르죠. 

2. 저기 댓글 다는 사람 중 몇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여성 인권학이나 사회학적인 지식이 많다는 느낌입니다. 막연히 오크들의 열폭과 피해의식의 표현이라고 치부한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가치를 놓치게 될 것 같습니다. 의견이 다른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기준과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말하고 토론해서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조건 상대를 낮잡아서 '대화할 가치가 없는 존재' 혹은 '대화가 안 통하는 존재'로 규정짓는 것보다 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 몇몇 디매 댓글이 너무 폭력적이다. 코르셋을 말하는 여성들은 코르셋(화장과 치마, 남성에게 먹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해도 페이스와 몸이 받쳐주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다.라고 저들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해서 공격합니다. 이 주장엔 근거도 없고 통계도 없고, 나의 주장이 옳다고 떼쓰는 수준입니다. 혐오의 메카니즘이죠. 비판을 하려면 적절한 근거를 가져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비난한다면 서로에게 어떤 도움이 안 됩니다. 




출근 전에 급하게 써서 문체가 들쑥날쑥했지만 전달하는 바는 확실했다. 아무래도 카페 회원들이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기에 반발이 예상됐다. 반발은 예상보다 강렬했다. 댓글 밑으로 재댓글이 30개 넘게 달렸다. 그중 한 회원과 논쟁했다. 

그는 탈코르셋은 이미 엔트로피가 다 한 개념으로, 더 이상 논쟁하는 게 불필요하다 주장했다. 그리고 탈여성 남성화 운동(그가 말한 탈코르셋 운동)은 되려 여성 혐오의 극한이라 공격했다. 본성을 무시한 채 체재를 전복시키려는 움직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나의 주장- 상대방 의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자. 비난하기 전에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은 갖추자. 맹목적 비난, 인격모독은 삼가자. 
그의 반박- 탈코르셋은 쓸모없는 운동이고 불온하므로 알 필요도, 존중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나는 현재 진행형의 탈코르셋 운동은 과거와 일치하는 게 아니다. 다르게 읽어야 한다 주장했다. 19세기의 탈코르셋 운동은 실재하는 코르셋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21세기 탈코르셋은 관념적 코르셋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공부 부족을 탓하며 과거와 완벽히 일치한다 했다. 나는 또다시 다르다고 했다. 사회 운동은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해야 하고, 21세기 탈코르셋 운동은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재고해야 한다 했다. 여기에 그는 현재 탈코르셋 운동은 합의되지 않은 명칭이므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 반박했다. 19세기와 21세기의 탈코르셋 운동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보려는 그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논문과 과학계에서 특정 개념을 규정해야만 인정하겠다는 태도는 떼쓰는 것 밖에 안 된다. 

우선 그의 문제는 
1. 학계에서 규정짓지 않은 사회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 
2. 학계에서 규정짓지 않고, 코르셋이 지칭하는 합의된 규제가 없으므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말하는 점. 입맛에 맞게 편집할 수 있는 주장은 창조론과 궤를 같이 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선 2번의 주장은 그의 1번 주장과 모순된다. 2 주장은 현대 개념의 코르셋을 인지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3. 하나의 진리만 수용하려 한다. 그의 논리라면 신학과 같이 해석 가능성이 열린 학문에 대해선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문학과 사회 현상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세상에 하나의 진리는 없다. 과학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다양한 분석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 

배우고 존중하는 태도로 사회를 이해하자는 나의 주장에 그의 대댓글은 완벽히 논지에서 벗어났다. 탈코르셋이란 명제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나의 모든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했다. 논리 비약과 근거의 빈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첫 댓글에 나는 카페를 이용하는 회원 전체를 한심하게 보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몇몇 댓글이라 명시했음에도 어느새 나는 카페 모든 회원을 무시하는 공공의 적이 됐다. 그의 댓글 아래로 그는 디매 회원을 무시하는 악당인 나에 대항해 싸우는 참된 지식인이자 디매의 영웅이 됐다. 확대해석과 구체적 주장을 보편화하고 은폐된 순환 논증을 그 자신이 사용해 비논리를 논리로 포장했다. 핵심을 벗어난 말에도 '몇몇' 회원들은 그의 궤변에 열광하며 정신승리를 거뒀다. 

-이라고 재댓글 달고 그 밑에 추가 댓글전.


훈훈한 마무리. 상대도 똑똑했다. 댓글 나눈 회원 분 허락 맡고 올림. 

사실 말이 안 통하면 대화가 성립이 안 된다. 상대가 많이 알고 배운 사람이라 적극적으로 키보드 워리어 짓을 했다. 보는 회원들이나 나나 상대나 얻어가는 게 있다고 믿었다. 남에게 피해 안 주는 범위 (중간에 감정 컨트롤 못 한 부분이 있다)에서 손가락 스포츠를 즐겼다. 카페 회원들 반응만 보면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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