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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25. 2018

독서모임 단상

인생 첫 독서모임




배경
지난 몇 년간 도서 팟캐스트, 블로그 이웃, 글쓰기 공동체에서 독서 모임의 장점을 귀가 아프게 들었다. 흥미가 생겼다. 하나의 책을 선별해서 저마다의 감상평을 공유하는 자리. 어찌 재밌지 않겠나. 영어 사용자를 타겟으로 한 현지 독서모임엔 관심이 없었다. 영어 원서를 읽는 경우, 속도와 이해의 정도가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말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을 원했다. 공간의 제약은 컸다. 내가 아는 한 멜버른에 그런 모임은 없었다. 주도적으로 모임을 만들 기력 또한 없었다. 

나는 호주에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단톡방 참여자 목록엔 13명이 있지만, 제대로 활동하는 이는 없다. 사실상 원맨 모임이다. 나만큼 글쓰기와 읽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 열정의 정도가 안 맞으면 서로 부담스럽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글 쓰라 말하지만, 결국 홀로 자판 튕긴다. 내 모습 자체가 부담일지 모른다. 6시간 연달아 글 쓰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참여를 안 하니 책이나 사회 현상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 상호 소통의 결핍 (물론 와이프란 인생 최고의 지식인이 있지만)이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싶게 만들었다. 

카카오 오픈 채팅방 목록에 멜버른과 독서모임이란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를 넣었다. 시간 낭비란 것을 알았다. 검색은 일종의 하소연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절차
거침없이 채팅방에 들어와 참여하고 싶다고 글을 썼다. 20명 정도의 회원이 있었다. 이 도시에도 평범 이상으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반가움을 빠른 채팅 속도로 표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다음날이 모임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방인에게 참여를 권유했다. 책을 안 잃어도 참여할 수 있다며 종용했다. 가능하면 참여하겠다 대답했고,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선정 도서를 읽겠단 말을 덧붙였다.

선정 도서는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이었다. 친숙한 작가다.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들어왔다. 덕분에 그를 작가 장강명이 아닌 진행자 장강명으로 인식했다. 나는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말 사이로 생각의 깊이와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 그는 2년 동안 5권의 저서를 낸 다작 왕이다. 이번 기회에 작가의 면모를 알 수 있었다. 분량이 짧고, 간단 명료한 문체로 가독성이 훌륭했다. 자기 전 30분, 지하철 타는 1시간 동안 완독했다. 책을 다 읽고, 저자, 작품, 작품을 낸 배경을 10분 안팎으로 조사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한 시간에 맞춰 대화할 준비를 끝냈다.

구성원
나를 포함 총 6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부터 7년 동안 독서 모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남, 여, 그들과 의기투합해 모임을 창설한 창립 멤버 남성, 그날 처음 나온 나와 여성분, 그리고 가장 어린 20대 중반의 고민 많은 남성 한 분이 구성원이다. 7년의 경력은 무시할 수 없다. 생각에 깊이가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는 와이프 한 명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인문학에 관심이 덜 했고, 그런 주제를 기피했다. 그들에게 따분한 이야기를 꺼내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가벼운 일상 이야기, 예능 이야기, 아이돌 이야기를 나눴다. 관심 없는 사람 잡고 이런 이야기 나누고 있노라면 자신이 허세 종자가 된 기분이다. 사람에 맞춰 주제를 고르게 된 배경이다.  

철학과 인권, 사회와 문화, 예술, 문학에 대해 맘껏 이야기해도 '오버한다'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 장소를 발견했다. 그날 처음 온 여성분과, 고민 많은 친구, 창립 멤버 남성도 다른 두 명에 비해 떨어질 뿐, 충분히 괜찮은 대화 상대였다. 

수준
7년 경력 여성분이 자리를 주도했다. 질문거리, 생각해 볼 부분을 발췌해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가기 전에 정돈되지 않은 모임이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다행히 7년 콤비의 존재는 이런 걱정을 불식시켰다. 30분 만에 할 말 다 하고, '또 하고 싶은 말 있는 사람?' 이란 질문에 조용해지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런 자리라면 나도 말을 쉽사리 못 한다. '오버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7년 콤비의 이해와 의견을 나누는 방식은 일반적 도서 팟캐스트의 패널 수준이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청자 입장에서 상호 소통의 일원으로 거듭나 감회가 새로웠다. 

팟캐스트의 패널이 된 기분을 맛봤다. 참여자는 적극적으로 생각을 말하고, 남이 말한 내용에 공감과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모임
책이라는 매개를 중심으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수준 있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흔치않다. 친구들에게 그 책 어땠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뒤따른다. 
'재밌었어. 주인공 마지막에 대박. 그런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어. 작가 변태인 듯.'

문장 너머의 핵심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얼핏 무언갈 느꼈다 해도 적합한 어휘와 개념의 부재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직관 만이 남는다. 그들은 국어 선생님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작가가 글을 쓴 배경과, 그의 사상, 행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의 존재는 거추장스럽다. 안 낄 때 안 끼는 미덕으로 대답한다.
'응 그러게'

호주에서 '낄 데'가 있는 줄 상상하지 못했다. 모임은 5시에 시작해 9시에 끝났다. 원래대로라면 7시 정도에 자리를 정리할 계획이었다. 어렵게 찾은 낄 때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주도적으로 모임을 끝내지 말자고 주장했다. '시간 되는 분은 남아서 더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다들 아직 낄 때라고 판단했는지, 이탈자 없이 이야기를 이었다. 

낄 데와 낄 때의 교집합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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