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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l 08. 2018

두 번째 독서모임 후기

방금 집에 왔다. 모임 후기를 남겨볼까 한다.


발제 책

미치 앨봄의 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언급했지만, 만족스런 작품은 아니었다. 발제자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좋은 이야기만 할 예정이었으나, 몇몇 참여자(7년 콤비)와 오늘 첫 참여한 치과의사의 가감없는 피드백에 용기를 얻어 내 생각을 전달했다. 시간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없었다. 작가는 동화처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장을 통해 상투적인 결론을 내렸다. 행복의 모범 답을 몸소 보여줘, 반골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 사용법이 정답인 양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연성도 떨어졌다. 예로 

1.'정해진 수명'의 자의적 해석  

2.도르가 벌을 받은 이유가 시간을 규정했기 때문인지, 시간을 멈추려 했기 때문인지 모호한 부분  

3.신체는 나이를 먹지 않는데 모발이 자라는 부분

4. 이야기를 위해 이건희급 재벌과 서민이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판타지 보다 더 판타지 같은 설정 등. 

전부 쏟아냈다. 


책 이야기 후

아무래도 결론을 정해놔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은 작품이라 그런지, 이야기 할 게 상대적으로 적었다. 전에 선정 도서였던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의 경우, 완벽한 모습을 규정짓지 않았다. 우리에게 문제 의식을 던져 주고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글이었다. 덕분에 넓은 책의 울타리 안에서 실컷 뛰놀 수 있었다. 도르는 그 반대의 경우다. 결국 책 이야기는 한 시간 반 가량 이어졌고, 그 후에는 자유 주제로 토론했다. 


이번 참여 인원은 10 명이었다. 다행히(?) 내쪽에 독서 경력과 인문학 소양이 상당한 독서 모임 경력 7년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폭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극좌빨'이라고 부르는 진보주의자였다. 나는 최근 다수의 네티즌과 첨예하게 대립하게 만든 주제인 예멘 난민 이야기를 꺼냈다. 기본 예멘 난민을 향한 스텐스는 찬성으로 동일했으나, 솔루션이나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였다. 일전에 읽은 미셸 옹프레의 '이슬람에 대하여'란 책 내용을 발췌해 판단 근거를 내세웠다. 그들도 자신의 생각을 나름의 근거를 갖고 말했다. 


그 이후엔 정치, 여성 인권, 종교, 철학,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문학의 유기적 특성 덕분에 다양한 분야로 생각 확장이 가능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의 지적 유희는 형언할 수 업는 기쁨이었다. 


7년 콤비 여성

7년 콤비 중 여성 분은 예술을 전공했다. 서울대 예술 학사, 한예종 예술 석사이고 졸업 후 경력도 있었다. 예술계 흐름을 깊게 이해했다. 내 와이프는 예술 학사지만 문화재, 건축으로 갈아탄 예술 변절자다. 아무래도 필드 지식과 이해는 정통 예술인인 7년 콤비 여성분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순수 예술에 관심이 많고 자주 소비를 하지만 다소 평가절하한다. 페인터나 조각가는 철학가나 소설가에 비해 깊이가 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학이 닦아 놓은 길을 예술이 답습한다. 예술 무식자임을 자처하고 예술인에게 예술의 가벼움을 논했다. 그녀는 현대 예술은 철학을 앞섰다 말했다. 지난 세기, 예술 작품이 선행되고 철학적 담론은 그 뒤를 따르는 경향이 생겼다 덧붙였다. 


나는 그것은 비평가의 위업이라 생각했다. 비평가가 예술을 만든다는 입장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로 아방가르드를 외치는 이들이 많다. 작품을 관람할 때 전위를 위한 전위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성적인 주제가 많고, 누군가의 파격을 답습한 작품들. 파격의 선구자가 가졌던 깊이 역시 흉내내는 정도. 예술 소비자지만 회의적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이야기를 건넸을 때,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은 그렇다, 어떤 부분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식의 합리적인 피드백이 온다. 예술 분야 인간 지식인이 나의 갈증을 해소했다. 


식사 자리 (영화)

식사 자리에선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식당 상차림과 음식 맛을 예찬하며 전반부를 보낸 후의 일이다. 배가 부르니 음식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영화가 주제로 나왔다. 최근 흥미롭게 본 곡성, 박하사탕의 연기와 연출, 상징, 미장센, 작가의 필모 등을 이야기했다. 공교롭게 1차와 비슷하게 자리 배치가 됐다. 7년 콤비와 치과의사, 서베이 리서치 회사원, 간호사와 가까이 앉았다. 나를 제외한 절반이 '독전'이란 최신 한국 영화를 봤다. 영화는 해석할 여지가 많은 것 같았다. 조만간 볼 것 같다.



다음 책

모임 말미에 나는 다음 책을 선정하란 권유를 받았다. 내 독서 바운더리 너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 이유로 거절했다. 이럴 때 아니면 관심 밖의 장르를 읽을 기회가 없다. 몇 번의 권유와 거절을 반복했다. 책 선정은 안 하지만, 대략적인 방향을 정했다. 많은 이야기거리를 주는 책이 좋다. 통념을 반박하거나,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은 책이 그렇다. 그런 책은 보통 '고전'이라 불린다. 고전이지만, 모두가 읽다 포기하지 않을 분량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7년 콤비는 카프카의 단편을 추천했다. 카프카 대표작인 '변신'이었다. 변신은 중단편으로 분량이 적다. 민음사의 카프카 단편집을 골랐다. 변신을 중심으로 읽되, 다른 단편도 능력이 되면 읽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내 바운더리의 책이었다.


몇몇 실존주의 작가의 작품을 인상깊게 읽었다. 카뮈, 사르트르, 밀란 쿤데라가 그렇다. 그들의 공통점은 카프카를 인용하고, 실존주의의 시초로 여긴다는 점이다. 동양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루키의 경우 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으로 대놓고 존경을 표했다. 카프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좋은 기회였다. 이참에 카프카의 정수를 이해하리라 마음 먹었다. 지적 허영을 채우기에 카프카 만큼 적합한 작가가 없다. 그의 대표작을 총망라한 단편집이 나의 문학인 이미지를 공고히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위키를 통해 카프카의 생애와 작품, 사상들을 찾았다. 


집에 도착해서 이북을 결제했다. 이 글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독서에 착수할 예정이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 액정을 탭하며 '카프카를 읽은이'로 거듭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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