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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10. 2018

돈 받고 쓰는 글




 일하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소소하다 단톡방에 안 읽은 메시지가 있었다. 매니저가 쓴 글이었다. 타 글

쓰기 플랫폼에서 에세이 청탁이 왔는데, 같이 투고할 사람을 찾는단 요지였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에세이를 쓰면, 15만 원을 받을 수 있다란 말을 덧붙였다. 이는 내가 기다려온 이벤트다.

 이유 1. 많은 이들에게 내 글을 선보일 수 있어서. 이유 2.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이유 3. 인정욕을 채울 수 있어서. 사실 첫 번째, 두 번째 이유는 속물근성을 희석시키는 용매 같은 거다. 이번 글은 이유 3을 설명하는 사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생의 목적에 동의한다. 사람은 행복하려 산다. 나도 행복하기 위해 산다. 3가지 방법으로 행복을 만끽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행복해서 웃는지 웃어서 행복한지 모르는 뇌를 희롱하는 의식적 웃기. 잘하는 것을 찾아 칭찬하기. 칭찬 멘트는 이렇다. 너는 친절하구나. 너는 대화를 잘하는구나. 너는 돈을 잘 버는구나. 너는 인생을 즐길 줄 아는구나. 너는 책을 많이 읽는구나. 너는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구나 등. 그중에서도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복잡한 관념을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때 오는 기쁨이 있다. 이런 문장을 쓰다니! 그 기쁨을 칭찬으로 치환해서 더 쓰기를 종용한다. 

나는 자랑거리가 많지 않다. 얼마 없는 장점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한다. 그리고 입 안팎으로 감사를 표한다. 돈 잘 벌어주는 직업에 감사하고, 현명한 와이프에 감사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고, 마음껏 책 살 수 있는 은행 잔고에 감사하고, 돈으로 돈 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감사하고, 효율적으로 생각을 표현하게 해주는 언어 능력에 감사하다. 문제는 감사하는 마음이 너무 자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대단함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인생을 돌아보면, 박수받고자 하는 장르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물건일 수도 있고, 물건이 아닐 수도 있다. 능력일 수도 있고, 능력이 아닐 수도 있다. 초등학생 때에는 리니지 캐릭터의 레벨과 장비가 나를 대표했다. 레벨이 30이 넘었으며, 광전사의 도끼를 구매했다. 친구들이 우와-란 감탄사를 내뱉은 횟수만큼 나의 가치는 올라갔다. 고등학교 때에는 옷이 나였다. 일본 옥션에서 구매한 한정판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학교를 갔다. 한국에서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옷은 내가 특별하고 멋진 학생임을 선포했다. 그 후엔 '22세 온라인 쇼핑몰 사장'이란 직함이 나를 대변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물으면 쇼핑몰 사장님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외의 나는 크게 잘난 점이 없었으므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그때 가장 멋진 나의 일부, 혹은 나의 소유물이 내가 됐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냐 물으면, 글 쓰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왜? '글 좀 쓰는 나'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취미입니다.'라는 문장은 함의를 품고 있다. 
독서를 좋아하고, 지적이며, 사유를 즐기고, 생각이 깊고, 인문학적 소양이 있고, 예술을 사랑하며, 물질보다 정신이 더 가치 있다 믿으며, 세심한 관찰력을 갖고 있고, 핵심을 꿰뚫는 통찰이 있는 접니다.
이 설명들이 지금 내겐 옷 잘 입는, 돈 많은, 와이프가 잘난, 경제관념이 뛰어난, 
게임을 잘하는 등의 수식보다 가치 있다.



먼 길을 돌아왔다. 그러니까 핵심은 현재 나를 대변하는 것이 글쓰기였으면 하고, 거기에 어느 정도 권위가 더해지길 바란다. 블로그에 글 씁니다. 브런치에 글 씁니다. 글쓰기 동호회 소속입니다. 호주 글쓰기 모임장입니다 등의 문장은 권위가 없다. 글을 못써도 위의 타이틀은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돈 받고 글 쓴 적이 있습니다.'란 설명은 다르다. 글을 못 쓰면 돈을 못 받는다. 누구도 못 쓴 글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돈의 크기에 따라 권위의 크기도 커진다. 내가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다. 얼마든지 간에 돈을 받았단 사실만으로도 설명에 무게가 실린다. 그럼 모든 수식의 앞에 '정말로'란 부사가 붙는다. 

저는 '정말로' 독서를 좋아하고, 지적이며, 사유를 즐기고, 생각이 깊고, 인문학적 소양이 있고, 예술을 사랑하며, 물질보다 정신이 더 가치 있다 믿으며, 세심한 관찰력을 갖고 있고, 핵심을 꿰뚫는 통찰이 있습니다.



매니저를 통해 담당자에게 일전에 쓴 글 3 편과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그쪽에서 검토 후에 연락을 줄 것이다. 만약 내게 청탁이 온다면 난 이 글을 보낼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투고를 생각하고 썼다. 나는 할 말 많은 글이 좋다. 할 말이 많다는 뜻은 그 주제에 생각하는 게 많다는 뜻이며, 온전한 나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주제가 그렇다. 사설의 의의에 맞게 솔직하고 무척이나 개인적인 글을 썼다. 이 정도 노력했다. 
15 만원의 수신인은 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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