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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ug 10. 2018

장강명 작가, 반갑습니다.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오늘은 쓰기보다 읽고 싶었다. 균형감은 중요하다. 최근에 쓰는데 시간을 많이 썼기 때문에, 상응하는 읽기가 필요했다. 3 시간 동안 책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손에 쥐고 있었다. 기자 출신답게, 간결 명쾌한 문체가 빠른 독서를 가능케 했다. 읽고 몇 가지 느낀 점을 정리한다. 



1. 감정 기복

그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책에서 한 말이 공감을 불렀다. 특히 그의 무던함. 나는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 사건에 따라 변하지만 폭이 얕다. 그게 비슷하다. 그런 사람의 특징이라면,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해외여행 계획을 마지막까지 막는 요소다. 고민의 끝은 그냥 집에 있자로 귀결된다. 감정 에너지의 쓰임을 도식화해서 효율을 따진다는 문장에서도 나를 발견했다. 



2. 여행과 친하지 않아

그는 여행과 친하지 않다. 나도 그렇다.

 해외에 살면서 멀리 가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생활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유 1. 멀리 안 가도 만족스럽다. 

이유 2. 돈 쓰는 게 싫다. 한 번에 큰돈을 쓰면 죄책감까지 느낀다. 100불 넘는 옷을 살 때면 대상 없는 사과를 한다. 내가 번 돈인데도 송구스러워 어쩔 수 없다. 

이유 3. 장거리 이동은 피로를 불러온다. 물리적 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 관념의 거리를 이동할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관념의 여행은 물론 책과 글쓰기, 도서 팟캐스트를 통한다. 



3. 와이프

장강명은 와이프를 좋아한다. 최근에 인상 깊었던 영화 대사가 있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소녀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나 좋아해? 사랑하는 거 말고." 여기서 사랑은 가족으로서, 혹은 어떤 관계가 부여하는 당위를 상징한다. 좋아하는 게 항상 책임감에 종속되지는 것은 않는다. 함께 있어 행복하고, 기껍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마음 상태가 호감이다. 문장 사이에서 와이프를 대하는 그의 호감이 선명히 보였다. 나도 내 와이프가 좋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여서 좋고, 귀가할 때 함께여서 좋고, 맛있는 거 함께 먹어서 좋고, 영화 보고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고, 전시회를 같이 갈 수 있어 좋고, 함께 프로듀스 48을 진지한 자세로 볼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영원을 확신하지 않는다. 그 또한 장강명과 나의 공통점이다. 언제고 예정 없는 이별이 찾아올 수 있다. 그 불안을 품에 안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태도를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4. 유치함

와이프는 가방끈이 길다. 직함도 힙하기 그지없다. 직함은 '나 정말 공부 많이 했어! 아는 것 참 많지. 전문성은 어떻고!'라는 말을 대신한다. 학창 시절엔 독서왕이었다. 일주일에 3,4 권씩 책을 읽었단다. 누구누구 작가 아냐고 물어보면 대표 저작을 나열한다. 나는 가방끈은 길지 않지만 고상하려고 노력한다. 지적 허영 채우는 데 열중하는 인물이다. 

우리의 일상 대화의 과반은 쓸데없는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난 6개월 나는 지드래곤 놀이에 빠졌다. 내가 만든 놀이다. 어미가 ~지로 끝나는 문장을 말하면 뒤에 드래곤을 붙이는 간단한 방식이다. 예를 들면,

"오늘 10시에 자면 내일 새벽에 일어나도 안 피곤하겠지드래곤?"

와이프는 의미 없는 의성, 의태어를 주로 말한다. "끼잉? 끼잉 꾸잉 꾸잉 삥? 삥 삥" 

제대로 된 말을 해도 크게 영양가 있는 대화를 하는 건 아니다.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주리라는 믿음으로 헛소리를 뱉는다. 유치해진다. 시답잖은 일로 감정이 상하고 툭툭 뱉는다. 내가 설거지 반 했으니까 오빠가 나머지 반 해. 뭐가 반이야 2/3 정도인데. 1/2 맞춰서 더 해줘.라는 식이다. 책을 통해 다른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5. 글감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다. 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소 놀란 건 그의 글감과 나의 글감의 교집합 때문이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했고, 결론도 비슷했다. 와이프와의 관계와 자살을 연관 지어 글을 쓴 부분이 비슷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되면 와이프에게 귀찮게 될 게 싫어 자살하겠다는 점.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하며 살겠다는 점. 다만 다른 결론도 있었다. 장강명은 글을 못 쓰게 되면 시원섭섭하게 인정할 거라는 점이다. 나는 시각을 잃어 글을 못 쓰고, 읽지도 못하는 상황이 오면 시원은 없을 거라고 했다. 

이 외에도 내가 전에 다룬 내용이 많았다. 그냥 시시콜콜한 가족 얘기나 여행 단상에서 의견이 합쳐지는 빈도가 높았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 생각이 비슷했다. 공학도->기자->작가 테크트리를 탄 그와 망한 사업가-> 취미가 글쓰기인 입체 풀칠하는 사업가 테크를 탄 나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나 보다. 읽고 쓰기란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 직업보다 취미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게 더 정확하다란 합리적 가설을 세웠다. 물론 반대 사례가 무수히 나올 것이므로 찾지 않는다. 지금은 가설을 세운 나를 칭찬하고 싶다.



6. 바람

그의 바람과 결혼이란 제도를 보는 시선은 흥미로웠다. 2+2란 수식을 결혼 제도를 설명하는 상징으로 풀어냈다. 

조지 오웰은 '자유란 둘에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2 더하기 2가 4일 수밖에 없는 사실은 구속이고 족쇄다.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벽 앞에서 그 벽과 타협하지도 않을 것이다.'

운동가나 페미니스트 중엔 식을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결혼 제도가 인간을 억압한다는 믿음으로 한 일일 터이다. 실제 구속받는 이들도 있으나 결혼 제도를 통으로 적패라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다. 구속과 억압이 필연적이다. 결혼은 한눈팔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인간이 열정을 잃고, 섹스 가능성 있는 상대에게 수시로 한눈팔고, 오래도록 하나에 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결혼은 그 본연의 충동을 억압해서 가치를 만든다. 운명적 사랑과 백년해로. 운명을 구속해 운명을 만든다. 어려운 약속이 핵심이다. 구속을 받아들이겠다 약속하고 지키겠다 선언하고, 타인에게 이를 알리는 것. 거기에서 의미가 탄생한다. 이것이 장강명의 2+2=4다. 모든 억압에서 해제된 인간은 동물이다. 이를 근거로 비독점 다자 연애를 비판한다.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맘껏 섹스하고 싶거나 비난을 돌리려는 시도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본성을 억압하는 결혼 제도에 어떤 가치 판단을 할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주장이라 생각했다. 



7. 시시콜콜

에세이집이라 그런지, 짧은 기간을 다뤄서 그런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정 브랜드의 특정 맥주를 얼마 주고 샀고, 무슨 음식을 먹었는데 시큼한 생선 맛이 일품이었고, 망고가 덜 신선했는데 얼마였고, 한국인 꼬마 관광객과 드래곤볼 캐릭터 트랭크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기는 초반이 좋았는데 아이는 마인부우 편을 재밌게 봐서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았다 등등. 이게 에세이에 필요한 내용인가라고 되물었다. TMI 아닌가 싶었지만, 서서히 부부 동반으로 여행 간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음식값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돈 쓰는 여행에 의미를 강요하는 편이며 거기서 지치는 타입이다. 동행인 듯 그들의 옆에서 맞다고 맞장구치고 있었다. 성찰을 요구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한결 부담 없이, 담백하게 읽었다. 


한마디로 총평을 한다면, 좋았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이었다. 직업인으로서 작가가 습관적 글쓰기란 이런 것이라며 한 수 보여준 기분이었다.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를 버렸다. 과장 없는 일상적 고민과 공감 가는 여행 단상을 글로 옮겼다. 글을 쓰면서 종종 느낀다. 있는 그대로를 글로 옮기려면 많은 습작을 거쳐야 한다. 펜에 무게를 더는 연습이 필요하단 뜻이다. 5년 만에 신혼여행은 딱 필요한 만큼의 무게로 쓴 괜찮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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