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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0. 2018

배우자를 알려 주는 손금


인터넷에서 사주, 궁합, 타로 등의 운을 점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미래의 내게 관심이 많다. 그런 예측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즐겼다. 아직 기억나는 손금 보는 법이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의 가장 아랫마디 손금의 폭이 나와 배우자의 외모와 능력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두 손금 길이는 달랐다.

 

어떤 게 나고 어떤 게 배우자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손금은 나보다 내 미래의 배우자가 더 잘났다고 말했다. '나는 거물이 될 사람인데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미리 말하지만, 이 글은 내 와이프에 대한 글이 아니다.



20대 중반에 오래 만난 친구가 있다. 그녀는 착하고, 가정적이며, 순종적이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다른 이유로 이 수식에 긍정적 의미를 투사하지 않았다.) 그녀는 미래의 꿈이 '현모양처'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결혼하면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가족에게 매 끼니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최고의 배우자감이다. 불행히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너무 착해서 상대가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으면 내 쪽에서 먼저 말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상대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음으로 관심이 다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상대가 이별을 고해야만 이별 절차가 지진행된다. 어쨋든 그녀와의 만남이 이어지는 와중에, 나는 필연적으로 그녀와의 결혼 생활을 그려봤다. 그녀는 내게 결혼을 재촉했다. 20대 중반의 나는 마흔까지 실컷 놀고 결혼할 거란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정이 많기에 그녀의 청을 완전히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할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서른 살까지 만난다면, 예정보다 10 년 일찍 결혼해줄게.' 결혼을 '해준다'는 표현엔 내가 밑지고 결혼한다는 인식이 숨겨졌다. 조강지처 지망생 그녀는 이런 실언에 별 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서른은 너무 멀었다고 투덜거릴 뿐이었다.



정말 만남이 이어져서 서른까지 가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다. 물론 헤어지겠지만, 만약에 진짜 만남을 유지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했다. 그때 본 손금은 나를 안심 시키기도 했고, 걱정 시키기도 했다. 손금은 말했다. '배우자가 너보다 잘났을 거야.' 나는 얘보다 잘났으니까 얘랑 결혼하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걱정으로 변했다. 가정주부보다 못한 남자가 될까 두려웠다. 만남에서 나는 항상 갑이었다.

우월감으로 상대를 철저히 무시했다. 나는 책도 읽고, 일본말도 할 줄 아는 혼또니 스바라시이한 사람이라고. 너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결국 만남은 종점에 도착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해 일본행 비행기를 탔고, 그녀는 남았다. 외국에 왔는데, 외국 여자친구 못 만나는 게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몹시 착하고 의리 있는 사람이어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바쁘단 이유 + 일본 와이파이 속도가 좋지 못 하단 이유로 대화를 줄였다. 그녀가 힘듦을 토로할 때, 나는 친구의 일본 여자친구가 얼마나 친구에게 잘 해주는지 그녀에게 설명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만남의 광장의 한 가운데 있는지 그녀가 알아주길 바랐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별이 오고, 나는 일본인 여자 친구와 즐거운 일본 생활을 보냈다. 손금은 그녀와 결혼하지 못 할 것임을 예견했던 것이다. '역시 내가 실패하는 패턴은 아니었군.'



바뀐 나는 부정하지만, 그때의 나보다 못난 배우자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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