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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4. 2018

군대 어디 나왔어?

 남자들이 모이면 몇 가지 고정 질문을 한다. 어디 출신이야? 군대 어디 나왔어? 군대는 고향과 비슷한 무게를 갖고 있다. 질문을 주고받을 때마다 군생활을 떠올린다. 2011년 이후 의경 내무부조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티오가 없어서 못 가는 곳이 됐다. 의경은 상대적 편함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개땡보 군대라 불린다. 2008 군번인 나는 젖과 꿀을 찾을 수 없었다.



잠 못 자고, 물 못 먹고, 화장실 못 가는 것에 더해 눈동자도 맘대로 못 굴렸다. 군대는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려준다.이경 시절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앉아서 천장에 있는 방패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합니까?라는 질문은 폭력과 욕설, 나아가서는 꼬인 군생활을 불러오므로 함구해야 했다. '까라면 까'의 문화가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곳.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한곳만 응시하고 있노라면 잠이 쏟아진다. 손가락 두 개를 사용해 선임들에게 보이지 않게 허벅지를 꼬집었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나 효과는 길지 않았다. 눈이 스르륵 감기면 타이밍 맞춰 욕설이 날라왔다. 이래서 시선은 권력이라고 하나 보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상호작용 없이 일방적으로 상대 시선에 나를 노출한다. 사자 우리에 던져진 토끼가 됐다. 시선이 언제 머물고 머물지 않는지 알 수가 없기에, 항상 긴장해야 했다. 먹이사슬 하위에 있는 동물은 안위를 위해 사주 경계를 한다. 최소한의 방어도 못하는 이가 맛보는 것은 압도적 무력감이다. 선임은 돋보기로 검정 종이 태우듯, 눈빛으로 방패를 뚫라 지시했다. 목을 움직이고, 눈도 좀 감고 싶었다. 그러나 맵핵 켠 상대 앞에서 앞마당 러시를 할 수 없다.



부조리의 사각지대는 없다.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막내는 가장 늦게 배식을 받고, 가장 빨리 식사를 끝내야 한다. 하늘같은 선임들이 식사를 끝내면, 식판을 받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모든 밥과 반찬을 국에 넣고 씹지 않고 넘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 물 마시듯 건더기와 국물을 삼켰다. 3주 빨리 입대한 윗 기수 선임이 나보다 밥을 빨리 먹고 군생활 편하냐고 물을 때 아연했다. 머지않아 그는 A급 부대원이 됐다.




무엇보다 군생활의 대단한 점은, 인간을 뿌리째 바꾼단 사실이다. 방패 쳐다보며 이 부조리의 고리를 내 대에서 끊고 이 손으로 선진 병영을 이룩하리라 다짐한다. 그 1년 후, 나는 나를 괴롭히던 이들보다 더 악랄한 선임이 됐다. 그 짧은 시간 온갖 악습을 체화하고 자연스레 재생산했다. 후임을 때리고 괴롭힐수록 나의 평판은 올라갔다. 왜? 군기가 빡셀수록 고참의 생활은 편하니까. 후임을 괴롭혀야 내가 편하게 잘 수 있다. 남을 때릴 때 나는 맞지 않는다. 군대 폭력엔 절대치가 있었다. 내가 하거나 받거나 상관없이 100이란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덜 때리고자 하면 그만큼 맞아야 했다. 나는 맞기 싫어 온 정성을 다해 후임을 구타했다.



언젠가 불 꺼진 내무실에서 그날의 희생양 내가 나란히 누워 훌륭한 군생활을 위한 가르침을 주고받았다. 선임들이 깨지 않을 정도의 볼륨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위엄을 갖춘 어투로 말했다. 상대가 배움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충실하지만 나의 권위를 높여야겠다 판단했을 때, 내 주먹을 상대의 옆구리나 명치에 빠르게 갖다 댔다. 나지막한 단말마가 나오고 상대는 내 말에 더 집중했다. 끔찍한 시간을 보낸 상대는 자신의 동기에게 바통을 넘겼다. 동기를 통해 내 악명을 들은 다른 상대는 자리에 눕자마자 사색이 됐다. 2번째 상대는 긴장한 탓에 배움이 느렸다. 나는 질문했다.


"너 병신이야?"


사실 질문이 아닌 다그침이었다. 상대는 대답했다.


"네"


허우대 멀쩡히 사회에서 잘 살던 청년이 눈앞에 폭력이 두려워 정상인이길 포기했다. 자신은 어딘가 모자란, 폭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구제불능이니 인정을 부탁드립니다. 부디 불쌍히 봐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1년 차, 흔히 쫄짱이라 불리는 보직을 받고 최선을 다해 역할을 수행했다. 보직이 바뀌고 후임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내무 생활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냥 방관자가 되어 내 할 일 하다 집에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적당히 후임들에게 잔심부름 시키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구타 피해자들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전역했다.




사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죄책감도 커진다. 나도 싫고, 나를 그렇게 만든 그 사회도 싫다. 자연히 군대가 맺어준 인연을 하나씩 정리했다. 유일하게 평등했던 동기 한 명만 남았다. 그 시절은 내 인간성의 밑바닥을 상기시킨다. 폭력과 절대적 권력에서 오는 우월감에 심취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무지하고, 나약하고, 비겁한 군상들. 그 선봉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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