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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9. 2018

처남

(사진은 내용과 상관 없다)



 오늘은 20분 동안 처남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와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친하진 않지만 호감을 갖고 있는 사이'다. 기꺼이 용돈을 주고, 집에서 재워줄 수 있다. 내 말을 증명할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그는 현재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병원과 학교에 가지 않는 기간에 맞춰 멜버른에 왔다. 그는 비밀이 많다. 엄밀히 말하면, 비밀이 많다기 보다,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오기 며칠 전에 외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온다고 통보했다. 그런 의외성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사족이지만 그의 여자친구는 좋은 사람이다.)


처남은 평범과 거리가 멀다. 먼저 평범하지 않은 멀티태스킹 능력을 말하고 싶다. 장인 장모님이 한국으로 터전을 옮겼을 때, 나는 종종, 아니 거의 매일 와이프네 놀러 갔다. 당시 와이프는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처남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집에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무던함과 무거운 입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인사를 건네려 방문을 열면, 그는 대체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지저분한 방에서 4가지 일을 한 번에 했다. 학교 수업을 모니터 한편에 띄워 놓고, 하스스톤을 플레이하며, 영화를 봤다. 한 손으로 루빅큐브를 돌리며. 처남 여자친구 말에 따르면, 그 생활 패턴은 이어지고 있다. 


처남은 내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 사람 감정을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게 믿는다. 내 헛소리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는 초등학생 때 이민 온 이래로 쭉 호주에서 살고 있다. 와이프가 다소 외국인의 영어를 사용하는 반면, 처남은 현지인 영어를 구사한다. 그럼에도 처남은 우리 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가정환경이 역할을 했다. 처가 사람들은 대화가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권 등, 토픽을 폭넓게 다룬다. 쓰이는 언어는 한국말이다. 그런 환경이 한국어 사용을 종용했다. -초등 중퇴생 '치곤' 어휘가 풍부하다- 수준을 넘었다.


나야 무던한 인물이라 타인과의 동거에 개의치 않는다. 처남 커플이 시끄러운 편도 아니고, 빨빨거리며 집안을 휘젓는 편도 아니어서 더더욱. 브리즈번에서 온 커플은 조용히 일어나서 친구들을 만나고 오든지, 관광하며 시간을 보냈다. 함께 사는데 문제 될 일이 없다. 반면 득 되는 부분은 많다. 처남에 대한 호의로 여타 이득 없이도 기꺼이 보살펴주겠지만, 그에게 친절할수록 장인 장모의 신뢰를 얻는다. 자기 자식 챙겨주는데 싫어하는 부모는 없다. 나는 장인 장모와 친하지 않지만, 그들을 '많이' 좋아한다. 그들의 박식함과 닫혀있지 않음, 무엇보다 나를 가족의 일부로 받아줬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사함이 그 이유다. 챙겨주면 챙김을 받는 이 신기한 메커니즘! 처남에 호감을 표하며, 가족의 유대도 단단히 한다.


두 번째 득의 출처는 그의 영어실력에 있다. 나는 종종 영어 에세이를 쓴다. 아쉽게도 학원을 쉬는 중이라 써도 교정 받을 수 없다. 와이프는 내가 가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므로, 옵션에 없다. 처남이 오기 전, 와이프는 집세를 안 받는 대신 영어라도 배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처남이 자진해서 에세이를 봐줬다. 그는 영어도 한국어도 능숙하게 다루는, 마검사 같은 존재다. 나는 검술만 죽어라 해온 모태 검사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 그만한 스승이 없다. 검술에는 이런 방식의 공격 법이 있는데, 혹시 마법도 비슷한 게 있을까? 질문하면 적절한 마법을 선보인다. 며칠 전에 작성한 교정본이란 제목의 에세이 2 편은 그의 검수를 받았다. 마법도 검법도, 가르치는 일도 능숙해서 임시 선생님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끼는 요즘, 처가에 감사한다. 훌륭한 결혼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장인, 장모, 처남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인격적으로, 지적으로 훌륭하다. 그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하다. 내겐 결혼을 허락한 장인 장모의 노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채감 비슷한 게 있다. 처남은 졸업하면 병원에 취업할 거고, 몇 년 버티면 독립도 가능하다. 분야에 따라 차등은 있으나, 의사란 직업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입을 보장한다. 부채를 나눠들 처남의 존재가 든든하다. 그는 만수무강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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