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Feb 23. 2019

고등학생 래퍼들


고등 래퍼 3의 첫 방송을 시청했다. 두 가지 생각을 했다. 1. 아이들이 랩을 잘한다. 2. 아이들이 걱정된다. 



힙합, 특히 랩뮤직의 인기가 늘어가면서 래퍼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아이들의 장래 희망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희망 직업에 아이돌, 유튜브 크리에이터, 그리고 래퍼의 비율이 높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많이 벌고, 여자 많이 만나고, 연예인들과 친해서.(래퍼들의 가사를 근거로)



고등학교 1학년 생들이 모인 세트에서 꿈나무 래퍼들이 대화를 나눈다. 왜 교복 넥타이를 제대로 매고 있느냐? 그것은 힙합이 아니다. 옆에 있는 학생들은 발언자의 의견에 동의했다. 물론 약간의 장난이 섞여 있는 말이겠지만, 영 빈말은 아니다. 그들이 가진 '힙합'의 이미지는 종잡을 수 없다. 뭉뚱그려 힙합의 특징을 큰 범주로 나눈다면, 1. 불량하고 2. 반항적이며 3. 멋지고 4. 부유하고 5. 향락적이다. 넥타이를 맨 학생은 힙합이 뭐냐고 반문했다. 랩 잘하면 힙합이라고 그들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들은 본인들도 잘 모르는 힙합을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인생을 건다. 




출연진의 다수가 힙합, 구체적으로 랩에 인생을 걸었다. 학교 공부를 포기하고 랩 공부에 올인한다. 랩 연습하는 것이 인생에 진정으로 중요한 공부이므로, 현재 상황은 일종의 홈스쿨링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인생에 확신이 있고,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자퇴를 하든, 유학을 가든, 똥을 싸서 조각을 만들든 문제가 없다. 다행히 그들은 확신에 가득 차 보인다. 그러나 그 확신의 근거가 모호하다. 본인이 랩에 천부적 자질이 있다고 믿고, 성공이 손에 잡힐 듯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가 아는 돈 잘 버는 래퍼는 100명 남짓이다. 그중 90% 이상이 쇼미 더 머니에서 얼굴을 알린 래퍼다. 알렸다 해도 시즌이 지나, 소위 쇼미빨이 꺼지면 다시 원점이다. 국내 랩 시장은 기이하다. 미디어를 통해 발표한 곡은 인기를 얻지만, 미디어 밖에서 발표한 곡은 나왔는지도 모르고 사라진다. 일부 쇼미 밖 코어 힙합 팬만이 소비한다. 쇼미 더 머니 시청자인 일반 대중을 제외한 코어 팬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쇼미 밖에서 곡을 차트에 진입 시키는 래퍼는 일부 유명 크루 소속에 한정되며, 손에 꼽힌다. 즉, 쇼미 더 머니로 대변되는 힙합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잃거나 더 이상 방영하지 않으면 대중적 사랑을 받기 어려워진다. 쇼미 성수기가 한쪽으로 치우친 이미지를 제공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 뒤의 현실을 보지 못한다. 





수만의 래퍼 지망생, 혹은 한물 간 래퍼들 중 돈 맛 보는 이는 1프로 전후다. 아니 성공이라는 애매한 기준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가자. 랩으로 벌어먹는 래퍼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 공연과 음원 저작권으로 랩 머니를 받는다. 공연에 불리는 래퍼는 쇼미 더 머니 최근화에 나와 활약한 친구, 쇼미빨 꺼지고 버티는 몇 명 정도다. 랩 머니의 쏠림 현상이다. 그 어떤 빈부격차보다 크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랩에 올인한 미래 랩 스타들의 청사진엔 두 번째 안이 없다. 




팟캐스트 중 매콤라라는 힙합을 주제로 한 방송이 있다. 한때 잘 나갔던 래퍼들이나 잘 나간 적이 없는 래퍼들이 나와 이야기한다. 그들의 지금은 무척이나 초라하다. 40 전후의 나이에 고시원에 살지만 랩스타의 꿈을 놓지 못한다. 일반 가요 시장도 그렇지만 트렌드가 빨리 변한다. 발라드나 댄스곡은 마켓이 상대적으로 커서 트렌드가 변해도 수요가 있다. 혹은 트렌드에 맞는 곡을 불러 억지로 맞출 수 있다. 힙합은 다르다. 트렌드에서 벗어나면 퇴물이 된다. 트렌드는 비트 뿐만 아니고, 랩 스킬과 관련 있다. 편승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다. 2000년대 활동 래퍼들은 키드밀리나 노엘 등의 요즘 래퍼가 하는 트랜디한 랩을 할 수가 없다. 입이 이미 굳었다. 노력해서 비슷하게 따라 해도 인정 대신 애처로운 시선을 받는다. 결국 지금 잘 나가는 소수의 래퍼도 곧 퇴물이 된다. 퇴물이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폭력적이다. 나이 먹고 요즘 스타일을 따라 하지 않는 래퍼에게 부여되는 단어다. 위에 언급한 이유로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99%의 래퍼는 퇴물이 된다. 퇴물로 가는 길은 급류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려 하지만, 신체적 버거움과 주위의 조롱에 금세 진이 빠진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옷을 어떻게 입든, 어떤 가사를 쓰든 그건 본인 마음이다. 요즘 것들은 쯧쯧쯧 하고 혀를 찰 생각도 없다. 다만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는 수많은 고등학생 래퍼들의 미래가 걱정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 쓰는 취미를 들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