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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7. 2019

비싼 거 마음껏 사렴






와이프가 비싼 가방(워딩 그대로 '비싼 가방')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비싼 게 비싼 값을 한다는 이유였다. 그게 한 달쯤 전이었다. 내 안에 무언가가 균열을 일으켰다.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사" 그녀는 본인이 살 수 있는 금액대를 물었다. "700불" 그녀는 되물었다. 정말? 정말로? 700불은 기존 기준의 5배를 웃도는 금액이다. 동생이 백화점 본사에 취직하게 돼서 직원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할인 제품에 중복 적용되므로, 소매가 1000불 이상의 제품도 후보다. 안타깝게도 호주 최대 규모의 백화점엔 와이프 입맛에 맞는 가방이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다.




오늘은 와이프가 가방에 더해 코트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플리마켓에서 돌어오는 길이었다. 마켓에 참여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중산층 백인이다. 판매는 그들 나름의 놀이다. 따뜻한 가격 정책의 수혜를 입은 와이프는 돈 꺼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녀의 가방엔 앤티크 꽃병, 실크 블라우스, 치노팬츠, 니트, 티셔츠가 담겨 있었다. 그 중 3개는 택 달린 새제품이었다. 제품은 하나같이 브랜드다. 옷을 한 보따리 들고 오며 그녀는 말했다. '입을 옷이 없어. 들 가방이 없어.' 그녀의 옷장과 랙은 만석이 된 지 오래다.  여성복이 어느새 나의 공간을 침범했다.




라면을 먹으며 그녀는 코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코트를 산 게 벌써 2년 전이다. 새로운 코트를 살 때가 됐다. 봐둔 게 있다며 나를 본인의 랩탑으로 이끌었다.  400불 ~600불 사이의 제품들 4,5 개를 보여줬다. 한달 전에 생긴 균열이 더 커졌다. 나는 원한다면 다 사도 좋다고 했다. 그녀는 흠칫했다. 그녀는 결제 버튼을 누르려는 내 손을 막고, 생각할 시간을 구했다.




이어서 그녀는 백화점에 가방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얼마까지 쓸 수 있냐고 묻자 나는 1500불이라고 답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1500불엔 의미가 있다. 더 이상 그녀의 소비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저축과 자가 장만 노력에 태업을 선언한 것이다. 가계부를 신경 쓰는 것은 나다. 불필요한, 혹은 대안이 존재하는 소비를 줄여 예금액의 수치를 올리려 한다. 경제 공동체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이는 그렇지 않다. 저축은 혼자 노력하고 아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절약을 입에 올리면 짜증과 힐난 돌아온다. 힐난엔 궁상맞다, 테이스트(취향)가 없다, 멋없다, 본인을 억압한다, 배려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종종 그녀와 소비 성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의 취향에 이끌려 내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와인바로 향한다. 80불 짜리 와인 한 병을 산다. 입을 한 번 적시면 와인병은 빈병이 된다. 다른 병을 주문한다. 와인만 마실 수 없으니 와인의 품격에 어울리는 이름도 외울 수 없는 안주를 시킨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접시에 고기 몇 덩어리가 올라가 있다. 가격표를 보니 30불이다. 고기 한 덩어리가 맥도날드 햄버거 셋트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와인바를 나와 다시 펍으로 향한다. 바에서 맥주를 주문한다. 리쿼샵에서 6 병에 13불하는 제품이다. 자리세 명목으로 10불 주고 한 병을 받는다. 알콜 파티가 끝나고 펍을 나선다. 걸어서 5분 거리의 지하철 역을 외면하고 택시를 부른다.




노력과 희생이 인정받지 않은 상황에서 절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절약엔 불편함이 따른다. 이전까지는 집을 사겠다는 목표가 불편함을 이겼다. 이제는 아니다. 짜증을 감수하며까지 노력하고 싶지 않다. 해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와이프는 저번 플리마켓 방문에서 산드로 레더 재킷을 구매했다. 블랙 핑크가 주로 입는 브랜드며, 마니아 층이 확실한 고급 브랜드다. 바이커 재킷의 경우 소매가가 800불이 넘는다. 최근에 구매해 몇 번 입지 않았다는 판매자의 말에 동의했다. 제품은 중고임에도 비쌌다. 구매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1. 전에 비싼 브랜드의 질 좋은 가죽 재킷이 갖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고, 2. 적당히 입고 팔아도 구매한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3 주 전 일이다.




내 언행이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을 심었다. 구매를 종용하니 적극성을 잃는다. 나의 경제관념이 그녀의 울타리였던 셈이다. 본인이 사치하고 낭비할 때 배우자가 잡아주리라는 믿음이 그녀에게 자유를 줬다. 역설 같지만 인간은 제약 속에서 자유롭다. 나는 그 제약을 풀어버렸다. 울타리는 허물어졌고, 그녀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내게 그래선 안 된다고 정신 차리라고 한다. 경제 파수꾼직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다. 나는 한 번 낸 사표를 돌려받을 의향이 없다.




상징계는 나의 상상계를 철저히 전복하고 억압한다. 미래를 보고, 문명 속에서 가치의 영속성을 띠는 행위가 저축과 절약이다. 그간 상징계의 룰에 맞춰 살았다. 이제 반발한다. 내게 집중해서 보면, 이는 죽음 충동과 같다. 보상 없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팔루스를 추구하게 만든다. 대책 없으며, 불행한 노후의 지름길인 '욜로'의 멋없음을 비난해 왔다. 나는 이제 욜로족이다. 어 그래 원하면 사야지. 이것도 사고, 그것도 사고, 저것도 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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