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하트 티셔츠를 입을지언정 장님이 될 순 없다.

by 띤떵훈

새벽 6시부터 부산스럽게 외출 준비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벼룩시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기고, A급 상품을 차지하기 위해 도시의 어둠을 뚫고 페달을 밟았다. 찬 입김을 뱉으며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결국 모스키노 핸드폰 케이스를 시작으로 칼하트 티셔츠까지 브랜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2시간 후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오늘도 현명한 소비를 했다며 스스로 칭찬했다. 따뜻한 침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식이 찾아오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브랜드 로고가 없다면 이 옷들을 샀을까?'


구매한 제품 중 하나는 노스페이스 패딩이다. 흥정해서 42불 40센트에 구매했다. 얼핏 문제없는 제품인데, 자세히 보면 가슴 부위에 얼룩이 보인다. 소매가 20만 원의 상품을 4만 원 남짓한 돈으로 구매했으니 이 정도는 감안해야지. 그런데 만약 같은 소재의 같은 품질의 보세 옷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따뜻하고 튼튼한 옷이 아닌, 따뜻하고 튼튼한 이미지로써의 노스페이스를 산 것이다. 칼하트 티셔츠는 어떤가. 칼하트 택이 없는 보더티를 10불에 샀을까? 옷장엔 아직 개시도 안 한 새 티셔츠가 몇 장이나 있다. 답은 '안 산다'이다.


20살 때엔 중고 명품에 빠졌다. 상품이 조금 촌스러운 디자인이라고 해도, 원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올라오면 구매욕이 일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팔렸나요?'란 문자를 보냈다. 체형에 맞는 옷, 갖고 있는 옷들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게 아닌, 브랜드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우선시했다. 명품을 든 자신을 그려봤었다. 몇 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미지와 결합해, 자신의 품격이 오르는 것이었다. 현재와 비교해 단절된 과거가 아니니 '이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명품은 더 이상 사지 않지만, 여전히 대중에 각인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이미지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시뮬라크르로 표현되는 실재와 이미지의 변위가 핵심인데, 이는 21세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시뮬라크르 도식은 1. 실재를 반영 2. 실재를 왜곡 3. 실재의 부재 4. 실재와의 독립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대중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주입받고 구매한다. 결국 오늘 아침 있었던 소비는 독립된 상징성을 구매한 것이다.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실제 필요성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행한 행동이다.


나의 행동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이 시대는 소비로 자신을 표현한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나를 표현하기 위한 행위로 봐야 한다. '이미지의 지배에 벗어나 살 테다.'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침대는 과학이다. 화장은 유혹이다. 정장은 신사의 옷이다. 실재와 상징의 분리는 매 순간 일어난다. 상징은 21세기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영향을 끼친다. 결국 보드리야르가 말한 실재보다 더 실재인 하이퍼리얼리티(시뮬라크르)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결국 필요도 없는 모스키노 핸드폰 케이스와 칼하트 티셔츠를 사는 나는 이미지 사회의 노예인가? 벗어나야만 하는가? 우선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미지는 대부분 기득권을 위해 존재하는데, 사회, 정치, 역사를 보는 대중의 시선을 흐리게 한다. 한마디로 통제 수단이다.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해결책은 사진이다. 사진이라는 매체야 말로 편집되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이고 텍스트를 배제한다는 것이 그 이유고 두 번째 해결책은 책이다. 텍스트가 이미지 넘어의 진실을 보게 해준다는 것이 요점이다. 그러나 사진 역시 편집되기 쉽고, 텍스트와의 결합이 당연한 시대에서 그의 해결책은 빈약하게 느껴진다. 책 역시도 이미지를 만든다. 내가 내놓은 답은 지식인의 전위 의식과 행동, 비평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 구조의 변화이다. 왜냐하면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진실을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배움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사회에서 이미지 소비를 막을 수 없다. 19세기 초 씨도 안 먹혔던 러다이트 운동을 보라. 이미지 사회의 전복은 불가능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선별하거나 무조건 수용하는 것뿐이다. 칼하트 티셔츠를 입을지언정, 장님이 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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