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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Apr 02. 2019

배우자의 연봉 인상과 행복






 배우자(와이프가 지면에서 다른 표현으로 자신을 불러주길 원했다. 이를테면 배우자)가 카톡을 보냈다. 나는 일하는 중이었고 내 핸드폰은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약간 시간이 지나서 문자를 확인했다. 맛있는 밥을 하는 방법은? 뜸을 들이는 것이다. 그녀의 문자는 아주 맛있게 뜸이 들었다. 본인의 연봉이 올랐다고 했다. 구체적 금액을 언급했는데, 인상 폭에 동공이 떨렸다. 연봉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불타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표현해야 했다. 그녀는 업무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 각자의 템포에 맞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메시지와 다르게, 전화는 당장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반강제적 소통 수단이다. 전화벨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고 독촉한다. 연봉이 올라 더욱 소중한 배우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기쁨의 표현을 메시지로 전했다. 행복하다, 좋다는 표현을 몇 번 하고 이모티콘을 두 개나 보냈다. (1. 신나서 방방 뛰는 것 2. 엉엉 우는 것) 사람은 감정의 크기가 일정 범위를 넘으면 눈물이라는 과잉 감정의 상징을 내보인다. 슬퍼도 울고, 억울하거나 화가 나도 울고, 기뻐도 운다. 나는 기쁨의 눈물을 이모티콘을 통해 발산했다. 오오 시뮬라시옹!




 1이 없어지고부터 60 초가 지나기 전까지 메시지 투하를 끝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청소 약품을 집었다. 청소는 내게 돈은 물론, 명상의 시간도 준다. 단순 반복 노동(물론 매번 가는 집이 다르고, 집마다 조금씩 청소 방식이 다르지만)을 하는 입장에선 신경 쓸 게 별로 없다. 사람은 사물이 본질을 잃었을 때 인식하게 된다. 내 업무의 본질은 깨끗함과 처리할 수 있는 더러움 사이에 있다. '적당히' 더러워진 고객 집을 청소하며 그녀의 연봉 인상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생각했다. 생계유지 활동에 메모리의 10%, (물건 파손을 막기 위한) 전후방 주시에 메모리의 10%, 연봉 인상의 의미 분석에 메모리의 90% 이상을 썼다. 도합 110%+의 사나이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거쳤다. 




전제 1. 나와 배우자는 경제 공동체다. 

전제 2. 그녀는 나보다 적은 돈을 공용 통장에 넣는다. 

전제 3. 그녀는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쓴다.

전제 4. 나는 부조리를 경험한다.

전제 5. 전제 4를 인식하면 자신의 쪼잔함도 인식한다.

전제 6. 전제 5가 싫어서 폭주한다. 폭주는 과소비, 저축 포기, 집 장만 태업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전제 7. 배우자의 연봉 인상은 전제 2를 바꾼다. 

전제 8. 전제 7이 발생하면 전제 3은 내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며, 전제 4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리한다. 그녀의 연봉 인상은 원만한 부부생활에 단비가 될 것이다. 또한 자가 장만의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결국 연봉 인상은 마음의 풍요를 이룩한다. 기호를 사용해 연봉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그녀의 연봉 인상 소식을 들었다. -> 직감적으로 행복의 신호라 여겼다. -> 기쁨의 표현을 했다. -> 뭉뚱그렸던 의식을 언어화해서 기쁨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완벽한 기쁨인가?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3% 정도의 불안이 있었다. 97%는 상당해서 3%의 존재를 가렸다. 시간이 지나니 3%에 관심을 줄 여유가 생겼다. 3%의 이유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행복은 준거집단과의 비교에서 이뤄진다. (다른 요소도 있지만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의도적 비약이다) 가족도 준거집단에 속한다. 왜? 접근성이 뛰어나 비교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와이프에 비해 많이 번다. 그것도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며 말이다. 시간당 수입을 비교하면 감히 압도적이란 표현을 쓸 수 있다. 부부 사이에 우열을 나누는 것은 유치하다. 하지만 머리는 알아도 멈추지 않는다. 조건반사같은 것이다. 나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그녀가 우등하다.(똑똑하고 예쁜데 웃기기까지 하다) 그나마 이기는 게 수입이다. 이 속도라면 몇 년 안 돼 수입도 열등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연봉의 기준은 한국 돈 1억, 호주 달러 10만 불*이다. 호주 돈 10만 불은 한국 돈 8천만 원이지만, 무시한다. 0 하나 더 붙는 게 중요하다. 자릿수로 대외적 평판이 갈린다. (아는 형님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기준을 넘지 못했다. 또 다른 형님이 만든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나는 토끼다. 전력질주하다 멈춘다. 배우자는 거북이다. 토끼는 결승선 앞에서 멈춰서  커지는 거북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내 노동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노동 시간을 늘리거나 직원을 더 써야 한다. 나는 지금 이상으로 일할 의지가 없으며, 직원 관리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래야 연 150~ 200 권이라는 독서량을 유지할 수 있다. (독서는 나의 행복도와 밀접하다) 소득은 평행선을 만들어 미래로 미래로 향할 것이다. 배우자는 다르다. 노동의 가치가 변한다. 몇 년 안으로 결승선을 넘을 것이다. 소득의 우열이 바뀌는 시점이다. 





여기서 다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불안함이 3%라고 한 지점이다. 불안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와이프가 더 많이 벌어서 느낄 행복이 불안을 압도한다. 와이프는 남편의 조건으로 경제력을 우선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나다. 내 와이프의 남편은 물려받을 재산 없고,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고, 못생기기까지 했다. (조금 웃기긴 하다) 귀납법을 사용해서 호주 평균 수입을 유지하는 한, 돈 때문에 쫓겨날 염려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잘난척할 내용이 하나 줄어드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 점을 제외한 모든 것이 행복으로 치환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소득과 행복의 비례도를 보면, 연봉 8500만 원까지는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 앞으로 몇 년간 더 행복해지겠다.**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문단이다. 그래서 별표란 뜬금없는 기호를 써서 따로 뺐다. 같은 소득이라도 만족도나 저축량은 천차만별이다. 생활 패턴과 취향에 따라 10만 불은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수 있다. 호주 지식in 사이트인 Quora에서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10만 불이면 괜찮은 연봉인가요?'라는 질문에 달린 답이다. 

So in Sydney you will you have to watch what you spend and how much you spend. You certainly won’t be buying brand new cars every 4 or 5 years that is for sure, you would be driving a normal car, probably a 2010 Honda Civic or something. A 7 year old car. You also would not be living in Sydney’s most expensive suburb either but you probably wouldn’t have to live in the most slummy suburb either.

시드니에 살 경우, 5년 동안은 새 차를 살 수 없다. 7년 묵은 혼다 시빅 중고차 정도를 타고 다닐 수 있으며, (월세 기준) 아주 잘사는 동네에선 못 살지만, 아주 못 사는 동네는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 기준으론, 배우자 취미와 취향에 타협 없이 살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지금은 다소 타협하며 산다)





**지난 12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했다. 2010년 프린스턴대 동료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함께 미국 과학학술원지(PNAS)에 소논문을 발표했다. 2008~2009년 미국 전역 45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설문조사를 토대로 통계를 돌려봤더니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계속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만5000달러(8500만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연봉이 5000만원에서 6000만원, 6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높아질 때는 돈의 액수와 비례해 행복감도 높아진다. 하지만 연 8500만원 이상을 벌게 되면 연봉이 9500만원, 1억원이 돼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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