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May 29. 2019

일간 이슬아 + TMI 집 청소 [합본]


나는 일간 이슬아의 둘째 달 구독자의 남편이다. 와이프가 받은 원고를 몇 편인가 읽었다. 그녀는 돈 내고 보는 창작물을 공유하는 것이 영 찜찜한 눈치였다. 몇 편 보고 더 이상 글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슬아의 블로그를 방문해 전에 쓴 글을 읽는 것으로 대체했다. A4 20장 분량의 글을 만 원 내고 볼 정도로 관심이 생기진 않았다. 읽지 않은 300 페이지 넘는 명작이 시중에 수두룩하다. 같은 돈으로 분량 길고 내밀한 글을 읽는 합리적 사람이 되자.





그녀는 작년 말에 에피소드 100 편을 모아 독립출판사(창업자: 본인)를 통해 책을 냈다. 오프라인 매장까지 판매 영역을 넓혔단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국외배송을 통해 실물 책을 구할 수 있었으나, 번거로운 절차와 배보다 큰 배꼽(배송비)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슬아 SNS에 책관련한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일간 이슬아가 리디북스에 입고됐다. 합리적 소비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으로 거듭났다. 이북을 12,000 원을 주고 결제했다. 





카페에 앉아 몇 편 읽었다. 전문 비평가(희망)로서 날카롭게 글의 점수를 매겼다. 일상 언어를 사용해 짧은 호흡으로 글을 풀었다. 가독성도 재미도 준수했다. 글 말미에 생각할만한 화두를 던지는 부분도 가점의 요소가 됐다. 합계- 본전생각 안 나는 점수 달성. 축하한다. 




재밌거나 슬프거나 열받거나 놀라운 감정이 일정치를 넘으면, 내 글도 영향을 받는다(감정을 움직인다는 게 대단한 거다). 이번엔 그녀의 TMI 화술이 영향의 원천이 됐다. TMI는 Too much info의 약어로, 말 그대로 정도를 넘는 정보를 뜻한다. 한국말로 의역하자면 군살 정도가 되겠다. 군살 없어도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러나 군살이 재미를 자아낸다. 이슬아의 주목할만한 군살은 '말'이다. 상당한 기억력의 소유자인지, 혹은 각색 능력의 발현인지 모르지만, 먼- 과거의 대화 내용을 기억해 지면에 옮긴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 10의 이 장면.





응?

서재 구경해도 돼?

그럼




이런 문체가 에세이와 픽션의 경계를 허문다. 나였다면 이렇게 썼을 터이다. 


'나는 상대에게 허락을 받고 서재를 구경했다.' 





차이가 흥미롭다. 말 이외의 상대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얼굴 어디에 점이 있고, 엉덩이가 어떻고 키스할 때 혀가 어떻고)도 TMI다. 나도 그녀의 방식을 차용해 오늘의 짧은 단면을 화면에 옮길까 한다. (이슬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TMI 집 청소- 



 아침 10시 52분경, 직원 이기은 씨(가명)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나는 청소 프랜차이즈 업체의 사장이자,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이다. 고객이 되는 시점은 2주에 한 번이다.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격주 수요일에 내 집 청소를 고정 스케쥴로 넣었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 내가 청결한 것을 좋아해서. 둘째, 직원에게 일감을 더 주려고. 두 번째 이유를 짧게 설명한다. 나는 조금 일하고 많이 노는 주의다. 나 때문에 직원도 조금 일한다. 자연히 돈도 덜 받는다. 그녀의 생계 유지를 돕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우리집은 70년대에 만들어진 빌라다. 벽에 금이 살짝 가 있다. 현관문은 살짝 톤 다운된 초록색으로 칠해졌다. 칠할 때부터 이 색인지, 바랜 탓인지 알 수는 없다. 차 키에 딸려있는 집 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신발을 신고 집안 곳곳을 움직였다. 신발을 신고 벗고 여부가 집의 존재 이유를 말한다. 벗고 있으면 집은 사적 영역이 되고, 신고 있으면 집은 공적 영역이 된다. 이렇게라도 차이를 만들어야 긴장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사적인 나'의 청소는 대충대충과 적당히로 일관한다. '공적인 나'의 청소는 '돈 받는 값어치는 하자'란 모토 아래 있다. 






사적인 나(안의 나)는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과 설거지, 먼지 닦는 일과 빨래와... 나열하기 귀찮다. 숨쉬는 것 이외의 활동을 기피한다. 한마디로 만사가 귀찮다. 비생산의 극단이라는 관념의 실재를 목격할 수 있다.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은 음악이고, 집이 내게 허락한 일은 유튜브 감상, 모바일 게임하기, 먹고 자기다. 집청소라는 굉장한 일은 공적인 나(밖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청소를 아무렇지 않게(귀찮은 내색 없이) 할 수 있는 능력자다. 






이기은 씨는 키친으로 향했다. 보통 싱크에 쌓여있는 그릇을 닦고, 가스레인지에 눌어붙은 음식물을 닦는 것으로 일은 시작된다. 요리 직후에 했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에너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미루고 미뤄 나와 배우자의 일은 우리 직원 이기은 씨(가명)의 몫이 된다. 돈을 주는 입장이지만 매번 민망하다. 오늘은 유독 꺼림직해 잠시 다른 일을 맡기고 내가 설거지를 했다. 전날 저녁에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 옆에 있던 이기은 씨는 알게 됐다. 음식물이 눌어붙은 프라이팬을 닦기 위해 살짝 가열하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러자 동면 중이던 돼지고기 냄새와 돼지기름에 볶은 김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기은 씨(가명)은 맛있었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랬다고 인정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키친의 일을 직원에게 넘겼다. 나는 작은방으로 향했다. 안의 난 밖의 나에게 빨랫감을 줬어(빨랫감은 빨래를 할 옷을 말하지만, 여기선 이미 빨래가 끝나 널려진 옷을 지칭한다) 옷을 접어 서랍에 정리했다. 배우자 옷은 바구니에 담았다. 그녀가 본인 물건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나도 귀찮다. 





이기은 씨(가명)는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고, 나는 먼지털이를 끝내고 청소기를 어깨에 멨다. 보통은 가명 씨(이기은)가 청소기를 담당한다. 우리집에선 사생활 보호 목적을 위해 내가 청소기 파트를 맡는다. 청소기를 든 자는 집안 곳곳을 누빌 권한을 얻기 때문이다. 일로 만난 사람에게 일 외의 자신을 노출하는 것은 꺼림직하다. 공간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 하지만 2주에 한 번씩 사생활의 극단을 노출하고 있다) 이런 수저로 밥을 먹겠군. 이런 접시에 음식을 담는군. 이런 간식을 식사 사이에 먹는군 등의 상상 근거를 제공하는 게 여간 잔망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가 잔망스러움을 극복하게 한다. 







와이프 화장대 위에 널브러진 브랜드 화장품들을 한곳에 몰았다. 화장대의 먼지를 털고 닦노라면 자본주의 세계가 제공하는 잉여를 실감한다. (이는 노동 소외를 촉진해 세상을 전복시킬 것이다) 배우자의 입술은 하나인데(위아래 쌍으로) 립스틱은 20 개가 넘는다. 거기엔 샤넬, 디올, 맥, 바비브라운 등의 백화점 1층에서 보이는 이름들이 박혀있다. 과시적 소비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제지하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그녀는 일시적으로 구원받는다(배우자 피셜) 화장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주일 전에 그녀가 한 번 화장할 때 사용하는 제품의 개수를 말한 게 기억난다. 이 글은 TMI라는 컨셉으로 진행되기에 적절한 곁가지다. 외출 전 배우자 얼굴에 발린 제품은 15종에서 20 종 사이다. 기초는 제외라고 못 박았다. 나는 미샤 BB크림(어두운 톤)을 바른다. 화장대에서 17 대 1의 레파토리가 재현된다.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마치고 직원에게 2 분 정도 걸리는 일을 줬다. 그 2분 사이에 안방 문의 경계 안에서 나는 환복을 끝내고 BB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짐을 쌌다. 가방에 랩톱과 충전기, 책을 넣었고 부피가 커서 안 들어 가는 카메라를 오른손(굳이 왼, 오 언급하는 걸로 TMI 달성+ 괄호 사용으로 버프 중첩)에 들고 다시 톤 다운된 초록문을 나섰다. 






TMI답게 본문과 관계없는 사진을 올린다. 지난 주말에 길가다가 찍었다. 티파니에서 아침 보내는 사람 연상 시켜서. 

작가의 이전글 문화비평 적성검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