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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03. 2019

외국 간 게 신의 한 수

 

비극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론 '너무 슬퍼 비참한 상태'다. 비극의 예라면, 좋아하는 일을 타고난 능력 때문에 못하는 경우다. 굳이 경우를 보면 노래가 그렇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실력이 없다. 노래 부르는데 쓴 시간만 합치면 아이돌 연습생 두어 명 불러서 뺨칠 정도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사실이었다면 나는 노래방에서 김경호 노래를 메들리로 불렀을 것이다.




너무 많이 말해서 또 말하기 민망하지만, 굳이 다시 말하면 나는 시간이 많다. 여유가 넘친다. 일을 조금 하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을 채우는데 여러 활동을 한다. 쓰고 읽고 찍고 본다. 배우자가 집에 없을 때는 조심스럽게 '부른다'를 추가한다. 단순한 많이 하기는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지 못 한다. '잘'하기 위한 방법이 존재한다. 노래의 경우 호흡과 공명이 그 방법이다. 십수 년 전에 락타운에서 김명기 보컬 강좌를 보며 예-써-를 외쳤다. 이것이 비강을 두드리는 강하고 날카로운 고음, 비성이다!라고 생각했으나 그냥 콧소리 섞은 쌩목 창법이었다. 소질이 있었다면 보컬리스트의 길에 적을 뒀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부르는 취미 생활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1. 방문을 닫는다. 2. 컴퓨터에 마이크를 연결한다 3. 유튜브 노래방을 켠다 3. 녹음한다. 4. 보컬을 전공한 친구 A에게 피드백을 받는다. 여기서 친구 A의 역할을 중요하다. 전공자로서 내게 정도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잘못된 발성법과 불쾌감을 조장하는 쿠세(겉멋)이 쌓이고 쌓였다. A가 완곡하게 쿠세를 지적하고 소리 내는 법을 알려준다. 두 달에 한 번씩 그에게 평가를 받는다. 평가 후에 단계별 맞춤 솔루션을 얻는다. 성대를 움직이지 않고 스케일을 해보라, 배에 호흡을 보관해라, 일정한 압력을 가해라 등등. 가장 최근엔 코로 숨 쉬는 길을 통해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예-써- 보다 나은 방식이다.





그와의 보컬 레슨이 끝나고 사담을 나눴다. 그의 지금에 대해서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실력을 소유했었다. 다른 길을 택했다 20대 중반에 보컬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김나박이A 였지만, 전공자들 사이에선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최대한 꿈을 좇았고, 끝에서 미련 없이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은 스타벅스라는 글로벌 커피 체인의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성실함이 평가받았는지, 점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매장을 진두지휘한다. 노래는 안 한다고 한다.




나를 시작으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한다. 시의성을 갖춘 문화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질문이지만, 친하다는 이유로 다소 무례를 범했다. '너 결혼 언제 할 거야?' 그는 준비가 안 돼서 못 한다고 했다. 어느 누가 준비돼서 결혼하겠냐 반문하려 타이핑하다 쓴 글을 지웠다. 그는 내가 외국에 나간 게 신의 한 수라는 말을 했다. 나는 어떤 점이 그런지 되물었다. '한국에선 다들 바쁘거든.'





일상을 돌아봤다. 느긋하고 여유롭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번다. 잘난 와이프를 만나 30년 동안 부재했던 고상한 취향이란 카테고리를 채우고 있다. 다들 너무 바빠서, 혹은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에 하루 시간 내야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매일 영유한다. 취미의 영역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통용된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찍고 부르고 (뭐가 됐던) 하면 더 요령껏, 깊게 즐길 수 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여가도 즐겨본 놈이 잘 즐긴다. 특히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은연중에 풍기는 나의 치열하지 않음이 너무 치열한 이들에게 맥빠지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국 간 게 신의 한 수라는 말을 곱씹었다. 내가 누리는 안락함의 원천은 나의 잘남이 아니다. 한 번의 선택이 삶의 양상을 바꾼다. 한국에 머무른 다중우주의 나를 상상한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끔찍하다. 이내 상상을 멈춘다. 그(한국에 머무른 다중 우주의 나)는 책을 읽고 글 쓸 시간도, 전시회나 아트 갤러리 방문할 이유도, 기념일에 와규 스테이크 썰 돈도, 인권과 환경, 사회 전반에 걸친 대화를 나눌 인문학 소양도 없다. 사회가 제공한 시스템에 비판 없이 삶을 소모하다 부품으로 산화하리라. 나라는 인간의 능력이 미천해서, 그리고 그 미천함을 전복시킬 가능성이 너무 작은 사회라서, 먼 우주에 서 있는 그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막막함뿐이다. 처음의 화두를 갖고 온다면, 이게 비극이다.





신의 한 수라는 말에 반응하는 의식의 기저엔 이런 말이 있다. '네가 갖고 있는 것은 온전한 네 것이 아니야'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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