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Jun 11. 2019

브런치(여기, 이 플랫폼) 조회수로 본 단상

나는 메이저야



전날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렸다. 블로그에 쓴 글 그대로를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친구의 사소한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쓴 글이다. 몇 시간 뒤에 알림이 떴다. 알림 홍수의 시작이다.

oo 글의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브런치에서 몇 시간만에 조회수 1000을 돌파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 경우 추천글로 선정됐을 확률이 높다(실제로 그랬다). 경로를 보니 모바일 다음 메인 페이지가 99%였다. 다음 메인에 글이 올라갔다. 몇 분 뒤에 2000 돌파, 또 몇 분 뒤에 3000 돌파 알림이 떴다. 덕분에 어제 하루 5만 명에게 나의 훌륭한 글(반어법)을 선보였다. 오늘은 (한국 시간 오후 4시 기준) 3만 명 정도가 읽었다. 24시간 동안 8만 명이 내 글로 향하는 링크를 눌렀다(5+3 =8)

출판계의 불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판매부수 2만 넘기면 성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회수 8만은 대단하다(분량 차이가 있는데 이런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이번에 올린 글을 읽는 데 5분이 걸린다고 생각하면, 40만 분이 내 글을 읽는데 쓰였다. 400,000 분은 다른 유닛으로 계산하면,


277일 18시간 40분 0초

6666시간 40분 0초

400000분 0초

24000000초

이렇다. 온라인의 공유, 확산 능력에 혀를 내두를 차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굳이 말하면 잣밥) 남의 시간을 이렇게 뺏어도 되는가. 알림이 뜨는 것에 반응해 글을 몇 번 다시 읽었다. 열 명, 스무 명에게 보이기에 문제없는 글이지만, 8만 명에게 보여주기엔 부적합하다. 277일을 뺏어 송구스럽다. 염치 있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염치없는 나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관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가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귀가 얼얼하다. '그래 이거지. 더 읽어, 구독하고, 다른 글도 찾아봐.'

그제까지 브런치 총 조회수는 30만을 살짝 넘었었다. 그중 절반이 하나의 글에서 나왔다. 조회수 폭발한 글 몇 개 빼면 별거 없다. 내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힘이 부족하다. 적은 고정 팬(구독자라 불린다)이 이를 시사한다. 잘 나가는 브런치 글쓴이들은 몇천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비교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봅시다-라는 칸트의 정의의 슬로건에 반하는 생각을 풀어보겠다.(나는 아무래도 공리주의자인가보다. 결과가 중요하다) 꾸준히 내 글을 소비하는 이들(없다고 봐도 무방)의 수를 기준으로 볼 때, 내 계정의 조회수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몇 천의 구독자를 보유한 행간읽기(내가 필진으로 활동하는 곳)의 총 조회수가 50만이다. 구독자는 10배 이상 차이 나는데 조회수는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어카운트를 포장할까 한다. '구독자 160의'라는 품위 떨어지는 수식은 우리 어머니가 나를 줏어 왔다던 다리 밑으로 버린다. 이제 나는 '조회수 40만+@의' 브런치 어카운트 보유자다. 이제부터 메이저.


균형감을 찾을 때가 왔다. 균형은 중요하다. 나는 모두가 Yes할 때 No를 외쳐야 한다는 정의관을 갖고 있다. 장 자끄 루소(아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다)의 자유론 4회독 한 나다. 루소 형님이 반박 의도가 없어도 만들랬다. 잘 따르고 있다. 또한 나는 논리충으로, 반증 가능성이 있는 주장을 아낀다. 헤겔 형님이 정반합 정반합 노래 부른 이유가 있다(동방신기도 나랑 생각이 같다 오! 정반합이라는 찬가를 부른 이력이 있다). 다른 의견이 왔다갔다 해야 합리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노래 10분 면 랩도 10분 한다. 지금 짜장면 먹으면 다음엔 짬뽕이다.


높은 조회수가 무슨 의미가 있나? 흠, 별 의미 없다. 밖에 나가면 누가 나를 알아보나? 아니. 돈 주나? 아니. 알량한 만족감 얻는 정도다. '알량한'이란 형용사는 아주 적합하다. 왜냐면 조회수와 글의 퀄리티는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런치나 다음 메인에 걸린 브런치 글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자신을 작가라 규정한다면 뺨을 후려칠 것이다. 조회수는 다음의 몇 가지 단어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어그로
화제
논란
트렌드
자극

단어의 생김새만 다르지, 핵심은 같다. 문장력 개같아도 상관없다. 일단 눈에 띄는 제목과 사진이 인기의 비결이 된다. 독자들 또한 문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재미 추구다. 앎과, 촘촘한 짜임새에서 오는 고상한 재미는 책과 논문에서 찾아라. 다소 정돈된 커뮤니티 인기글, 판 글이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 문장력을 0에서 10으로 놓고 봤을 때, 커뮤니티 썰의 평균은 1, 대형 출판사 출판물의 평균은 7, 브런치의 평균은 2 정도다. 대체로 못 쓴다. (브런치 글쓴이들 미안. 가끔 사실은 따끔하다)

커뮤니티 인기글의 유형,
-야, 씨발 사장이랑 싸운 썰 푼다.-
- 빌려준 3000만 원 안 갚는 친구, 손절해야 하냐?-


현재 브런치 메인 글의 유형,
-연봉 8천만 원 받는 친구의 푸념-
-남편의 늦은 귀가, 아내의 혼자 여행-
-저 관리직인데요?-

내용상 큰 차이 없다.

내용은 어떨까. 가장 눈에 띄는 글( -연봉 8천만 원 받는 친구의 푸념-)을 읽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대학 동기들은 전공 살려 대기업에 취직하고 본인은 전공과 관계없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친구랑 얘기하고 깨달았다. 고연봉자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핵심이 없다. 이 글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됐는가? 무언갈 배웠나? 노노. 그가 말했다.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한 명이 다방면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부품 취급받지 않는다. 대기업 사원은 부품, 중소기업 사원은 기계다'. 대기업의 세밀한 파트 구분과 전문화를 중소기업의 이것저것 하는 양상을 비교하는 비유로 부품과 기계를 택했다. 마르크스 차용한 건가? 뭐가 됐든 비유가 적합하지 않다. 기업이라는 형태는 분업이 디폴트며 본질적으로 부품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총평: 글이 별로다. 다시 한번 교훈을 얻는다. 뭔가를 배우고, 깨닫고, 써먹고 싶으면 고전이나 실용 서적을 읽자.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입장이지만, 브런치 글을 읽지 않는다. 괜찮은 글 찾기 어렵다. 성공 확률 낮은 도박에 참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내 글? 비슷하다. 별거 없다. 삶의 통찰도, 변주를 통한 기가 막힌 비유도, 유머도 기대하지 마라. 나는 내 글을 읽고 시간 낭비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다른 브런치 글을 읽으면 미안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아~ 이 정도 퀄리티를 기대하고 온 이들이군. 그렇다면 나도 문제없다.

작가의 이전글 외국 간 게 신의 한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