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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un 12. 2019

멜버른 이민자의 하루

2019년 6월 10일 (Queen's Birthday) 기록


(사진은 같은 날 찍은 레스토랑 Brunetti의 정경)



 잠이 깼다. 배우자가 한 발을 내 배 위에 올리고 있다. 그 무게가 나를 깨웠다. 핸드폰은 지금이 5시라고 알려줬다. 더는 오지 않는 잠에게 사정하지 않는다. 잠들기를 포기했다고 침대를 빠져나간다는 뜻은 아니다. 전기장판과 이불 사이의 공간이 주는 포근함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눈 뜨자마자 초겨울의 쌀쌀함과 상대할 배짱도 없다. 리디북스 앱을 켜서 독서를 시작한다.




지난 며칠 이북 3 권을 구매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초연결,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제목 더럽게 길다. 요즘 트렌드라고 한다)이 그것이다. 이슬아 수필집은 내 의사로, 다른 두 권은 타의로 구매했다. 트렌드에 편승해 이득 보려는 책에 안 좋은 인상을 가진 내가 사기에 '나는..... 아니라고'는 너무 긴 제목이다. 독서모임의 다음, 다다음 발제 도서여서 돈을 썼다.





식사할 때 어머니가 뭐라 하는가(어머니 보고 싶다)? 골고루 먹어라. 맞다. 영양실조를 피하기 위해선 균형 잡힌 식단이 요구된다. 독서 모임을 통해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책을 접하게 된다. 연 150 권의 독서량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출근까지 한 시간가량 시간이 남아서, 책마다 20분씩 시간을 분배했다. 이슬아의 재기 발랄한 문체와 일상, (IoT로 대변되는) 4차 산업 혁명이 가져올 삶의 변화와 그에 걸맞은 태도, 시의성에 걸맞은 젠더 감수성을 한 시간 동안 머리에 넣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6시 무렵 양치를 하고 차 키를 챙겼다. 몇 년 동안 도로 위에서 발이 되어주는 내 친구 요다(내 차는 도요타 캠리인데 애칭이다)와 인사했다. 리모컨의 열림 버튼을 누르자 그는 윙크로 화답했다. 자리에 앉아 내비게이션을 켜고(네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다운로드한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재생했다. 즐기는 팟캐스트는 주로 도서, 철학, 주식 카테고리 안에 있다. 오늘 들을 것은 라캉의 정신분석 7부작 에피소드다. 라캉 평론과 슬라보예 지젝의 주석서, 각종 논문을 몇 편인가 읽었는데도 그 사람이 그 사람 맞나 의문을 갖게 된다. (나는 충분히 똑똑하지만, 그 양반이 여기저기서 말을 많이 해서 복잡하게 만든 탓에 이해를 못 하는 것뿐이다) 20분가량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일터에 도착한다.




퀸즈 버스데이(여왕 생일)은 멜버른이 속한 빅토리아 주의 공휴일이다. 가정집 스케줄은 전부 취소되어 일과 시간 전에 오피스 두 곳을 청소하면 오늘의 청소 일정은 끝이 난다. 직원분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한다. 나는 디테일이 중요한 키친과 화장실을 담당하고, 직원분은 먼지 털이와 바닥 청소를 담당한다.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이어서 듣는다. 라캉 탓에 수도꼭지를 닦으면서 성기를 연상시킨다. 근무지가 깨끗하길 바라는 오피스 워커들의 팔루스는 내게 전이된다. 그의 욕망을 내 욕망인 양 수용한다. 수도꼭지가 반짝이자 주이상스의 찬란함을 반사한다. 뻥이고, 돈 주니까 청소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청소는 깨끗함과 개선할 수 있는 더러움 사이에 존재한다. 오피스의 청결도는 수용할 수 있는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 그 이상은 내 직업윤리의 영역에 있다. 굳이 안 해도 계약 상태는 유지되나, 직업윤리는 하길 종용한다. 행동은 내 기분이 따라 갈린다. 나는 오피스 워커들에게 약간의 결핍을 주기로 한다. 결핍은 쾌락과 타협하는 연습이 된다. 나도 편하고 그들도 얻어 가는 게 있고. 상부상조다.




여왕님의 자비로 도로가 뻥뻥 뚫렸다. 2시간 만에 오늘의 일이 끝났다. 오전 9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현관문이 다시 움직였다. 출근에 어울리는 시간이지만 퇴근이란 이름 아래 문이 열렸다. 격무로(+ 새벽까지의 도시 건설 게임으로) 시달렸던 배우자는 아직 침대 위에 있다.




아침을 준비하고 배우자를 깨웠다. 한인 마트에서 산 국물 떡볶이를 만들었다. 국물에 떡국 떡과 라면 사리를 넣어 변주했다. 음악도 리믹스 버전이 주는 흥이 있듯, 음식도 조리법 밖에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떡의 쫄깃함과 면의 부드러움을 한 데 모았다. 식사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배우자는 호주 최고의 명문 멜버른 대학교에서 서양 예술사와 동북아시아 역사(학사), 문화재 보존(석사)을 전공한 인재다. 인문+ 예술 = 취업난(종착지, 한국= 치킨집, 호주= 슈퍼마켓 캐셔)이란 공식을 갖고 있다. 호주라고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힘들게 들어온 회사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다. 주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배우자는 풀메를 했다. 풀메는 풀 메이크업의 준말이다. 외출로 활력을 얻고자 하는 그녀의 최고의 조력자는 남편이다. 외출 동반자가 된다. 공휴일(나는 일했지만)을 서로의 취향을 반반 섞어 즐기기로 한다. 와이프의 휴일 플랜 = 갤러리 방문, 펍에서 맥주 한 잔 / 나의 휴일 플랜 = 사진 촬영, 카페에서 독서. 이상적 휴일의 짬짜면이다.




 귀여운 소니 a7m2 바디와 E마운트 풀프레임 삼양 f1.4 50mm 렌즈를 챙겨 멜버른 시티에 위치한 차이니즈 뮤지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사진을 찍는다. 도시는 우리 부부에게 최적의 촬영지다. 나는 최근에 AASP (Australian Association of Steer photographers)의 멤버가 됐다. 스트릿 포토그래퍼로서(거리 사진가보다 멋스러운 수식이다. 나는 사대주의자) 거리와 인물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셔터를 누른다. 피사체가 흘러넘치는 시티가 제격이다. 와이프는 문화재 전문가답게 역사적 가치를 가진 건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이란 공통의 취미를 가진 우리는 같은 공간의 다른 장면을 프레임에 담는다. 건물 많은 시티가 그녀에게도 좋은 사냥터다.




이런 이런, 공휴일이라 그런지 차이니즈 뮤지엄이 문을 닫았다. 나는 책 읽을 시간이 늘어 속으로 만세를 외쳤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배우자의 기분을 존중하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책 도매상에 들려 가격 할인 폭에 감탄만 하다 나왔다. 헤비 이북 유저이자 (자칭) 미니멀리스트로서 실물 책을 자주 사지 않는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에 꽂혀 구매를 해도 괜찮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픽션의 B 섹션을 뒤적였다. 긴 독서 역사 중 가장 인상적이라 말할 수 있는 책을 찾기 위함이다. B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첫 글자다(영어 표기론 V라는 사실을 후에 알았다). 윗니를 3번 툭툭 치는 그 이름 롤리타를 찾았으나 없었다. 부부는 30분 죽치고 빈손으로 나왔다. 크지 않은 매장이어서 점원이 분명 욕했을 것이다.




독서를 위해 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Brunetti에 왔다. 모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자, 카페였다. 300석 규모의 대형 식당인데, 브런치, 커피, 화덕피자, 젤라또 전문점이다(김밥 천국식 메뉴 레인지지만 각자의 세션에 담당자가 따로 있다). 와이프는 롱블랙을, 나는 3 스쿱을 담은 젤라또를(망고, 피스타치오, 하나는 기억 안 남) 주문했다. 커다란 원탁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엔 우리 말고 손님 3명이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다. 한 명은 독서를, 한 명은 필사를, 한 명(작가 추정)은 글을 쓰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문학인 모임이 됐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쿠(theqoo.net)를 봤다. 2,30대 청년층이 시사에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리서치를 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게시물과 댓글이 가리키는 기표를 역으로 추적해 한국 사회를 덮는 프레임과 기득권의 논리를 찾기 위한 작업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 안에서 개체들의 상호작용(언어를 통한)은 사회의 작동 논리를 순간적으로 비춘다. 나는 그것을 캐치하기 위해 아이즈원의 사진과 안무 영상을 봤다. 그러다 인터넷이 잘 안 터져 카페를 벗어났다.





배우자의 즐거운 주말을 위해 펍으로 향했다. Lost and Found라는 펍인데, 어둡고 조용한 실내 분위기가 대화를 종용한다(는 이유보다 그루폰 바우처로 싸게 맥주 먹기 위해 갔다) 배우자는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자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6월 안에 사용해야 할 1500불의 커리어 지원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상의했다. 와이프는 조만간 큰 프로젝트가 끝나는데, 이후에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포토그래머트리(드론으로 건물을 스캔해서 3D 모델을 구현하는 기술)를 배우고 싶어 했다. 컬처럴해리티지이미징이란 단체에서 주관하는 워크숍으로, 7월에 열린다고 한다. 6월 중에 부킹하면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 휴가를 내서 다녀오고 싶다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회사 지원금 1500 불을 받아도, 2500불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비싸서가 아니고) 배우자가 긴 항공 시간에 피곤할까 걱정되어 호주 내에서 할 수 있는 워크숍을 알아보길 종용했다. 포토그래머트리는 언젠가 호주에서도 열릴 것이다. 다행히 배우자가 설득당했다.





펍을 나와 귀가했다. 나는 오사카에서 1년 동안 셰프로 살았다. 일본 관서 음식을 좋아하는데, 타코야끼가 대표적이다. 최근 마트에서 냉동 타코야끼와 타코야끼 소스를 구매했다. 타코야끼를 튀기고 전용 소스와 마요네즈를 뿌렸다. 배우자와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배우자의 어린 시절 관심사가 화제가 됐다. 그녀는 별과 공룡에 심취했었다. 공룡 도감을 읽고 읽어서 200 종의 공룡의 이름을 외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공룡 이름 10가지를 대보라고 말했다. 그녀가 나열한 10 마리 중 내가 아는 공룡은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뿐이었다(이마저도 파워레인저 덕분이다) 그중 그녀의 최애 공룡은 파라사우롤로푸스였다. 나는 이름이 터무니없이 길고 어감이 요상해 소리 내서 웃음을 터트렸다. 참고로 좋아하는 이유는 두개골이 멋지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와이프는 컴퓨터 앞에 앉았고, 나는 침대에 누워 못 읽은 책을 읽었다. 터무니없이 긴 제목의 책의 구절을 보다 의문이 들었다. '여성이 국가, 종교, 제도, 관습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독립된 자아로 존엄 있게 존재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었다. 잠시 딴 이야기를 한다. 내가 활동하는 독서 모임의 고정(이자 전부일지 모르는) 구성원은 4명이다. (전) 고등학교 국어교사, (전) 서울대 출신 공무원, (현) 치과의사, (현) 한량(나다). 그중 곧잘 모임을 주도하는 게 국어교사와 공무원인데, 그들은 페미니즘에 지대한 관심을(한 명은 인터넷 인플루엔서로서 활동까지) 갖고 있다. 덕분에 페미니즘 관련 서적은 이미 수차례 다뤘다. 덕분에 이번에 제목이 긴 책의 저자가 하는 말에서 특별한 감흥을 얻을 수 없었다(나의 젠더 감수성이 모자란 탓일 수 있다) 이 사실이 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몰두한 질문은


 어느 누가 과연 국가, 종교, 제도, 관습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을까?


인류가 집단을 이뤄 살게 된 이후, 모두는 문화의 테두리 내에서 나고 자라고 죽는다. 언어라는 체계를 사용하고 인류란 종으로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여성을 향한 억압과 폭력은 더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의 관습이 여성에게 객체로 존재하길 강요한다는 사실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국가와 종교, 제도에서 분리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 채널이 다르다. 저자의 말은 잘못된 점을 바로잡자는 취지인데, 나는 국가, 제도, 관습의 총칭(문화) 밖에서는 판단 근거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읽다 말고 갑분구(갑자기 분위기 구조주의)가 됐다. 관념의 장에서 보낸 시간 또한 하루에 속한다. 하루의 마무리답게 하루를 되돌아 보고 온갖 잡생각으로 나머지 시간을 채웠다. 존재에 대해 생각이 이어지고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사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그럼 즐거운 일이 없어지면 자살할 것인가? 재미없어도 자살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즐거움은 답이 되지 않는다. 죽는 게 무서워서인가? 그럼 누가, 왜 죽음에 두려움의 이미지를 넣었는가? 죽음 뒤에 세계가 있는가? 죽음 뒤에 지옥불, 혹은 너무나 무서운 세계가 있다는 불확실성이 죽음을 연기하는가? 질문은 늘어가는데 대답은 없다. 그러는 와중에 만사가 다 귀찮아졌다. 컴퓨터하고 있는 와이프 옆에 가서 말장난 몇 번 주고받고 웃은 다음에 침대에 와서 잠을 청했다. 침두침미(침대에서 시작, 침대에서 끝)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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