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Jun 28. 2019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

페미니즘 도서 비평 - 상투성과 얕음

 

 이 책은 별로다. 제목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작년부터 출판계에선 문장형 제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출판계는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업계다. 문장형 제목(대체로 자조적이고 해탈한 느낌)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비슷한 류의 책을 쏟아냈다. ~했다, ~싶어, ~있다로 끝나는 책들 사이에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이하 파이)가 꽂혀 있다. 불쾌하게 긴 제목의 책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파이도 예외는 아니) 책의 제목이 내용의 (거의)전부라는 점, 감성을 자극해 공감을 유도하는 점,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사용으로 도서의 굿즈화에 일조(인스타 셀프 홍보용)한다는 점, 활자의 음미를 막아 직관적으로 텍스트를 전달한다는 점, 독서 경험이 부재한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점이 그것이다.




젠더 감수성 고취라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페미니즘 서적이 서점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열풍이라는 말 뒤엔 자기 복제가 숨겨져 있다. 국내 인문 서적에 페미니즘은 필수 요소가 됐다. 가공식품 패키지 후면에 성분표를 보면 각종 영양소가 나와있다. 젠더 담론은 현재 한국 출판계의 탄수화물 같다. 시의성에 맞는 적절한(적절하다는 표현은 내가 페미니즘 담론에 얼마나 우호적인지 보여준다. 이 책이 별로일뿐, 안티 페미가 아니다) 흐름이다. 아쉬운 점은 내실 있는 글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파이를 필두로 한 트렌드 서적의 밀도는 도서의 제과화를 촉진한다. 질소가 반 이상이라고.





파이가 다루는 핵심은 1.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 인식 2. 여성의 협업이다.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가부장제를 고발하는 방식은 대중 친화적(나쁘게 말하면 자기 복제 서적의) 특징이다. 그나마 2번의 실질적 여성 연대가 신선한 접근이다. 그러나 여성 일감 몰아주기의 의미가 지나치게 단면적이어서 경탄을 자아내기 어렵다. 행간을 통한 패러다임의 확장이라는 책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호한 여성 우상화에 따른 여성성의 신비화보다는 안전하다. 유사 이데올로기가 보여주는 화려한 말잔치와 그 뒤에 따르는 허무와 무기력을 제공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몇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있었다. 우선 가부장제 리햅이라는 개념이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를 문학적으로 보여줬다. 그나마 틀이라도 새롭다. 물론 콘텐츠는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역할 모델의 부재를 언급하며 섹스 엔 더시티의 캐릭터들을 꼽은 점은 가산점을 주고 싶다. 백인 중산층 리버럴 판타지를 짚은 부분은 비교적 일반 서적에 한걸음 나아간 지점이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자유라는 것 또한 기득권(남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신화는 기득권이 갖는 의식을 드러낸다. 남자 중독과 꾸밈 중독은 남성 기득권의 신화를 답습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 아니다. 주체의 탈을 쓴 개체의 춤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진취성과 방향성에 꽂힌 저자는 그녀의 블룸즈버리 클럽을 인용해 울프소셜클럽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 연대가 이뤄지는 물리적 장소이다. 경제적 독립과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물리 장소의 중요성을 역설한 울프가 보면 기특해할 공간이다. 자기만의 방의 주인공(가상의 셰익스피어 동생)이 환기시킨 여성 억압 기제 탐색, 여성 담론의 발견, 신여성상 모색을 하는 공간이다. 담론 넘은 움직임은 상투성과 벗어나는 지점이다. 콘엪팅과 3분 피칭도 좋은 예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 그녀는 책 초반에 무엇에든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자아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파트에 대해 말한 부분에 본인의 주장과 상반되는 말이 나온다. '내가 갖고 싶던 건 언제나 남편이 아니라 아파트다' 아파트는 현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신화의 상징이다. 자본이 씌운 성공과 편리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코르셋의 독립만 원했던 것일까. 그녀가 지향점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 보여주는 문장이다.







정리하자면, 파이는 페미니즘 입문서로 적합한 책이다. 쉬운 말로, 본인의 경험을 되짚으며 담론을 꺼내온다. 그러나 여성학 책을 몇 차례 접한 이들에겐 동어 반복일 뿐이다. 책에서 다룬 가부장제는 단면적이다. 새로운 방식의 젠더 권력 체계는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입체적이지 못하다. 앞선 독서모임에서 다루기도 한 여성학 논문집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입문 이후의 사유할 방향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권김현영의 성폭력 피해의 공적 대화를 억압하는 기제들, 김주희의 성매매 여성에게 드리워지는 혐오, 민가영의 신자유시대의 10대 여성이 받는 위험, 김신현경의 아이유와 샤덴프로이데를 연결한 부분 등이 그렇다. 입문서가 충분한 상황에 계속 출발선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넓고 먼 곳으로 시선을 안내할 책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멜버른 이민자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