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사소한 우울과 싸우고 있다.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새로운 경험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보낸다. 이런 와중에 소비는 일시적 해방구가 된다. 인간의 욕망에 절대적 충족은 없다. (있다면 죽음뿐) 구원은 1.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한 것처럼 무욕의 삶을 추구하는 것 2. 물질적 욕망을 충족 시킬 대상을 소비하는 것으로 짧게나마 얻는다. 나는 전자의 방법론에 공감하는 타입이지만, 요즘엔 새로운(2) 방법론을 적극 취하고 있다.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도전의식이 고취된다. 새로운 도전은 책이란 매개를 통해서 이뤄지고 삶에선 '일상'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왔다. 먹어본 것 먹고 가봤던 곳 가고, 만났던 이들을 만나는 삶의 연속이다. 바운더리 밖의 존재들과 만날 기회가 적었다. 카메라가 일상의 틀에서 한 발짝 내딛게 돕는다. 생각없이 지나쳤던 낯선 이들과 공간에 관심을 보내게 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 디지털 언어로 변환되어 다시 이미지 언어로 재현된 화면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덕분에 관념적으로도, 실제로도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게 가능하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은 흥미롭다. 일상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미학 재료가 산재했다. 재료인즉슨 주변인들이 소유한 기계다. 그러나 5분가량의 조물딱 거림으로 카메라를 이해하긴 어렵다. 사서 제한없이 써보는 게 도움된다. 다양한 카메라와 렌즈를 구매한 이유다(돈과 비례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자본주의의 마음가짐을 장착했다) 새로운 카메라(후지필름 x100f)를 구매한지 3 주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또 다른 구원을 얻었다. 리코 GR iii가 구원의 발상지다. 이베이 어카운트에 결제 완료 사인이 떴고, 카메라는 택배 상자에 쌓여 이름 모를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리코 GR3의 스펙
리코 GR iii(이제부터 부르기 쉽게 그냥 리코로 칭하겠다)와 후지필름 x100f(이 친구는 후지)는 포지션이 비슷하다. 비슷한 화각에 비슷한 화소 수, 비슷한 용도(스냅 사진에 최적화)를 갖고 출시됐다. 한국에서 흔히 똑딱이라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의 대표주자다. 후지는 작년에 출시됐고, 리코는 올해 3월에 출시됐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최신 기술을 탑재했다. 결론적으로 둘 다 최신이고 둘 다 잘났다(굳이 둘 다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 리코'까지' 구매한 나는 어리석다. 사소한 차이 - 후지의 특유의 색감과 셔터 누를 때 느낌, 리코의 상대적으로 더 작음이 커다란 공통점을 무시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다. 나는 아파트 신화에 종속된 다른 이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이라는 수식에 취해버렸다. 기생충에서 아들 기우가 입에 달고 살았던 그 말 - '상징적이네'가 향하는 지점이다. 실제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시간이 많을 것같지 않다. 후지는 무겁거나 크지 않다. 후지에 비해 리코의 기술력과 기능과 가격에 매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구매는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카메라를 가져라'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현명하지 못하다. 리코 구매를 축하하는 피드 밑으로 배우자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정말 틀림이 없는 그녀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소비에서 구원을 받았다. 스냅 최고의 카메라라는 이미지를 구매했다. 나는 스냅 사진(스트리트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이고, 카메라의 성능이 아닌 나의 시선의 가치를 평가받고자 한다. (물론 크기 대비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지만) 이 작은 카메라로 대단한(모호한 표현임을 인정) 작품을 남겨 나의 시선의 무게감을 인정받으려는 목적이다. 작가주의 작품을 찍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스냅의 최고봉, 일상에서 사진을'이란 프레이즈와 하나가 됐다. 나의 욕망을 채워줄 것이란 믿음이 내게 구원이 된 셈이다. 그러나 라캉이 정신분석학에서 말했듯 인간은 욕망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는 물건을 갖게 됐을 때 결여를 느낀다. 내가 원한 이미지의 모든 것을 실체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사용하는 순간부터 사라질 만족이다. 손에 쥐어지는 그 순간까지의 일시적 구원을 즐겨보자.
아래는 후지 x100f로 찍은 사진들. 약간의 설명을 더한다.
흑백 -
자본주의의 상징인 대량 복제품 아래서 압도당한 인간. 위계가 전복됐다.
경계 밖의 인간. 피사체의 암부를 내려 네거티브로만 존재하는 상징을 나타냄. 그러나 내가 권력의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인지 상대가 갇힌 나를 바라보는 것인지 모호하다.
컬러 -
드라마 안에 약간의 유머. 유머가 우리를 구원하리
거리의 정경에 어울리는 자전거 탄 커플. 여성의 자전거 색과 남성의 헬맷의 색이 비슷해 조화롭다. 상대의 어떤 부분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