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 Europeans

사진집 리뷰

by 띤떵훈


판본이 다르다. 내가 본은 디자인과 기본 배치는 위와 동일하나 사진이 다르다


어제에 이어 멜버른 시티에 위치한 State Library에 왔다. 도서관은 용도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정했다. 리딩 아츠- 코너는 절대 정숙을 요하는 곳으로 도서관 중심부(대화 가능 장소)보다 쾌적하다. 책상이 상대적으로 넓고, 인문학 관련 서적들 사이에 책상이 있어 책을 고르고 읽기에 효율적이다. 테이블당 파워포인트를 2 개씩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밀집 공간에 비해 와이파이 속도도 빠르다. 이곳에서 왕이 된 기분으로 사진집을 봤다.



오늘 고른 사진집은 총 4 권이다.

1.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 Europeans

2. 안셀 애덤스 & 조지아 오키프 - Natural Affinities

3. 매그넘 포토그래퍼 팀 - New Yorkers

4. 탐스 & 허드슨 - The Great LIFE Photographers




전날 마틴 파의 Think of England를 보고 브레송의 유러피안즈를 1/5 가량 봤다. 흥미로운 책이어서 끝까지 음미하며 보고 싶었으나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온 관계로 다음을 기약했다. 24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됐다. 사진기를 들고 거리를 30분가량 방황했는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읽는 것으로 실력 향상을 도모하기로 노선을 바꿨다. 브레송은 다큐멘터리, 스트릿 포토그래피의 아버지 격인 인물로 지금도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유명 사진 블로그나 플랫폼에서 그의 사진을 중심으로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 교본으로 삼기 부족함이 없다.




글이 없는 사진집임에도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석했기 때문이다. 사진집을 보는 이유는 심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사진 실력을 향상시키는 목적이 크다. 그렇게 때문에 잘 찍은 사진(직감적으로)을 보면 '와~ 멋지네'하고 넘어가는 대신 자문자답의 시간을 갖는다. 대체로 이런 흐름이다.



사진 좋다

왜 그렇지?

1. 앵글의 위치 - 하이 앵글로 사진을 찍어 전경 중경 후경이 다 잡혔어

2. 배경 - 프레임 안에 다양한 구조물들이 있는데 중복되는 패턴을 보여서 통일감을 주네

3. 인물 - 인물의 숫자가 이렇고 그들의 행동과 포즈가 어떻다. 그들이 사진에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지?

4. 그림자 - 그림자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사진에 포인트가 되네. 그림자가 프레임이 되어서 중심 피사체에 시선이 머물게 도와주는구나

5. 반복 - 사람이 두 명인데, 뒤에 오리가 두 마리 있네. 호식이 두 마리 치킨처럼 피사체가 저마다 짝을 이루네. 개체들의 모습과 힘의 괴리에서 유머와 통일감을 갖게 되는구나

6. 시대상 - 1930년대부터 60년대의 유럽 전역의 모습이 담긴 책이어서 그런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떠올리게 만드네

7. 라인 -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이 지면에 그려지고 선이 주는 영향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네




여러 요소를 따져가며 감성을 이성으로 읽어내려 한다. 어떤 느낌을 받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는 전제 위에 성립하는 행위다. 이 느낌의 원인은 이것인가? 저것인가? 요것인가? 그것인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위에 언급한 7가지(혹은 그 이상)의 틀로 사진을 끌고 와 형태를 잡는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납득한 뒤에 다음 사진으로 넘어간다.



여러 가르침을 얻고 책장을 덮었다. 몇 십 년의 세월을 지나 후대에 영향을 주는 사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는 구도를 기가 막히게 사용하고,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다큐멘터리의 역할도 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작가들은 더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고, 정보 공유가 활성화되어 좋은 자료와 샘플을 어디에서나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결국 브레송의 기술은 대단하지만, 실력 면에서 그만큼 찍을 수 있는 사람(대체자)은 수두룩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시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 당시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 첨예한 논쟁이 이뤄질 때 기록 사진은 지금보다 더 높은 가치 평가를 받았다.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비평가와 사진가들은 찾아 헤맸고, 브레송의 사진은 거기에 적합했다. 브레송이 21세기에 태어나 비슷한 작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22세기 사진작가 지망생들이 우러러보는 거물이 됐을까? 아니다. (워낙 실력이 좋으니 적당한 유명세는 얻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이라는 개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과 우리 시대가 공유하는 미학의 개념이 존재하는 한, 그의 사진은 좋은 교본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직감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면 주변인도 그렇게 느낄 확률이 높다. 나는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기술적인 부분을 키워야 한다. 그의 사진을 보며 모자란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다만, 그와 같은 실력을 갖춘다 해도 그가 누리는 위상을 가질 순 없다. 위대한 작가가 되려면 생각의 깊이를 키우고 그것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작품(프로젝트나 연작)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취미 사진가고 원대한 포부가 없으므로 당위에 쫓기진 않을 테지만, 브레송의 유러피안즈를 보며 큰 방향성은 다시 한번 되짚었다.



20190711_134758.jpg 책상 위 - 오늘 찍은 사진 리뷰, 작가들의 사진 감상과 비교를 통한 본인 사진 비평을 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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