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직업, 연봉
https://music.youtube.com/watch?v=kM-qfnr-Zpg&feature=share
글에서 이 노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사를 음미하며 들어보세요. 혼나기 싫으면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사라지는 꿈을 며칠째 반복해서 듣고 있다. 베이스 루프와 리더 나잠 수의 보컬이 귀를 사로잡는다. 가사도 노래에 빠지는데 한몫한다. 대중가요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모르겠는데요? 왜 나한테 물어보세요. 아무튼 중요하다. 사라지는 꿈의 내용은 이렇다. 화자(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프로이트도 말했다시피 꿈은 욕망의 해소가 이뤄지는 장소다. 꿈속에서 자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라지려 했으나 차마 사라질 수 없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은 애증의 관계다.
곡 하나에 꽂혀 그들의 신상을 캐내기 시작했다. 사실 누군가 캐내서 정리한 정보를 봤다. 숟가락 얹기. 나무 위키에서 그룹의 역사와 개개인의 정보를 읽었다. 디스코라는 비인기 장르의 수문장으로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뚝심 있는 인물들이었다. 펑크와 디스코와 일반 밴드 음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내게 이런 장르들이 중요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칸트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보면 나라는 인간의 세계에서 펑크나 디스코나 밴드 음악이 갖는 의미는 도긴개긴, 구분 필요 없음 딱지가 붙어 있었다. 굳이 카테고리를 나눠 분류할 필요는 여전히 못 느끼고 있다. 이걸로 아는 척할 수 있는 곳도 얼마 없다. (가성비 별로인 리서치다)
눈길이 머문 곳은 그들의 학력이다. 보컬을 담당하는 리더 나잠 수와 (밴드임에도) 랩과 댄스를 담당하는 핫산은 서울대 출신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의 레이블인 붕가붕가레코드가 서울대 음악 동아리에서부터 시작됐다. (후에 나잠 수는 같은 학교 출신의 장기하를 데려와 그를 데뷔시키기도 했다) 서울대라는 세 글자는 그들의 음악에 우리 사회가 부여하는 반짝이는 아우라를 입혔다. 나는 왜 아직도 학벌에서 자유롭지 못 한 것인가. 사라지는 꿈과 (또한 엄청 반복해서 듣는) 나잠 수의 솔로곡 사이버가수 아담의 가사를 천천히 훑어봤다. 역시 서울대라는 말이 나왔다. 서울대여서 이런 가사를 쓴 것인가 이런 가사를 쓸만한 사람이기에 서울대를 간 것인가. 가사뿐만이 아니고 비 인기 장르를 유지하는 뚝심과 생계유지를 위한 전문성을 가진 부업(대기업 직원, 편곡자, 라디오 패널, 에세이스트 등) 또한 빛난다.
이제 주제로 들어가자.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 전환이라니!) 이 글의 주제는 밴드나 가수가 아니고 감투(학벌을 위시한)에 대한 생각 정리다. 서문이 불필요하게 길었다(내 문장력 별로라는 방증이지요) 나는 나이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아우라에 저항하면서, 이렇게 아우라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았다. 예전에 학벌 콤플렉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브런치나 블로그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다른 글과 비교한 상대적 반향이다. 주제는 '사람을 만날 때 학벌이라는 껍데기에 휘둘리지 말고 직접 판단하자.' 그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향권 안에 있다.
참 재밌는 게 학벌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타이틀을 보유한 이들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짧게 말하면 나는 감투 쓴 사람들에게 후하다. 판단함에 있어 외부의 지표를 참조한다. 감투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꿈을 꾸고프다. 이런데 초연해야 더 쿨한데, 나는 쿨함을 지향하는데, 여전히 쿨하지 못해. 힝~(헉 나 참 귀여워!)
내가 감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내 주변인들의 감투를 설명할 때 대리 뿌듯함을 느낀다. 나의 성취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뿌듯함과 볼품없음이 비례함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다. 와이프는 고학력자다. 그녀 모교의 세계 대학 순위는 32등(서울대 62등)이다. 우리 처남도 동문이다(의대). 와이프의 타이틀은 어떤가. 문화재 전문 상담사. 내 와이프 감투 무거워... 어쨌든 가족의 잘난 점에 기여한 게 없음에도 내가 잘난 사람인 양 의기양양하다. 너 참 별로다. 웅... 가족만이 아니다. 나랑 친한 친구 A는 게이고, 국어 선생 & 해외 대학 강사 출신이다. 그와의 친밀함은 내게 몇 가지 만족감을 준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깨어있으며 21세기에 맞는 인권의식 함양에 가치를 두고 있다는 인식. 또한 지적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수준이 그리 낮지 않다는 사실(타이틀과 별개로 그는 여러모로 괜찮은 대화 상대이자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는 치과의사다(호주 수능 상위 0.2프로) 와이프 제외 가장 긴 호흡으로 대화하는 사람 중 하나는 서울대 출신(공무원도 함)이다.
잠깐 글을 멈추고 위 문단을 천천히 읽는다.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글쓴이(나)를 남 보듯 마주한다. 몇 가지 인상을 받는다. 1. 이거 완전 멋없는 쪼다 새끼네. 2. 친구하고 싶지 않다. 3. 자존감 졸라 낮은듯 4. 세속적이네 5. 가벼운 놈이군 등등. 괄호 사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남이 나서서 난리야. 마치 옛 트렌디 드라마에서 주인공들 주변에 있는 촉새 캐릭터와 같다. 꽃받침 역할을 저렇게까지 해? 에휴... 노답
사회가 제시한 기표에 의미를 두면 둘 수록 자신의 가치를 깎아먹는다. 왜냐! 내 인벤토리에 쓸만한 기표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굳이 꺼내자면 아마추어 작가, 젊은 사장, 스트릿 포토그래퍼, 독서광 정도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든 기표에 하자가 있다. 이거 반품 안 되나요? 네 안됩니다. 돌아가세요 손님. 나를 존중한다면 기표와 더더욱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탈피 방법은 내가 아주 쓸만한 기표를 하나 얻는 것이다. 감투 싸움에서 지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감투에서 초연해진다는 사실. 현실에서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카메라의 경우가 그렇다. 카메라가 없었을 때는 풀프레임 바디, 낮은 조리개의 고가 렌즈, 특정 브랜드 제품 등에 과하게 신경 썼다. 기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슬로건을 갖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인지부조화의 온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아우라의 회수는 재밌게도 아우라의 소비에서 나왔다. 갖고 싶던 풀프레임 바디와 낮은 조리개값의 렌즈, 특정 브랜드의 최신 카메라 등을 돈 주고 사서 써본 이후에야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워졌다. 대인의 풍모를 갖추었다. 비싼 장비가 무슨 소용이오. 자신의 깊이를 키우는데 집중하시오! 허허허..라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비싼 장비가 장비 병에서 낫는 유일한 약이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이미지 전복의 세계를 탈피하는 방법(과잉 수용)이 적용된다는 말이야!(사실 맥은 다르다)
조만간 적당한 감투들을 몇 개 얻기 위해 대학 문 넘을 계획이다. 얻을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감투가 무엇인지 찾아봤다. 몇 가지 알아봤는데 워낙 자주 바뀌기 때문에 주변에 공표하지는 않았다. 계획대로 된다면야 감투싸움에서 좀처럼 지지 않을 것이고, 그럼 감투 지옥에서 해방되리. 와중에 다행인(멋있는) 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무도 대답을 못 하는군. 내가 하겠다. 예전엔 감투 얻는데 보인 열정이 요즘엔 시들하다. 무의식이 감투가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이었으면 어렵지 않았을까. 감투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감투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말이 너무 길었다. 나는 관념의 충실한 개 역할을 한 번 더 하리라. 쓸 만큼 썼으니 글을 끝내려고 한다. '적당한 분량'이라는 기표에 따르도록 하자. 멍멍. 으르렁.... 컹컹 (리니지1에선 괴물눈 고기를 주면 도베르만을 길들일 수 있다) 적당히 교훈적인 슬로건 하나 놓고 떠나려고. 무언가를 파악할 때(특히 사람) 주관에게 더 높은 배역을 주자. 학교가 어떻다 직업이 어떻다 연봉이 어떻다 하는 것들로 그들을 규정하지 말자고.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내 인식 세계에 그들의 입지를 정하자. 자, 여기까지 인지부조화였습니다. 감사합니다(문단 끝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쓰는 것은 내 시그니처다. 뜬금없어서 재밌고, 연사가 무대를 내려오는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장소를 지면이 아닌 관념의 속 무대로 옮겨가는 것이지.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