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하고 세련된 화장실이 좋다. 걸음을 내디뎠을 때, 은은한 향기가 풍겨온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낮은 채도의 조명과 그 빛을 반사시키는 잘 다듬어진 타일, 전문 관리인의 손길에 얼룩 없이 반짝이는 유리, 휴지 조각 없는 바닥, 풍부하게 거품이 나는 액체 비누, 젖은 손을 말려주는 강풍 건조기. 좋은 화장실의 조건이다. 작은 볼 일을 위한 화장실 방문엔 까다롭지 않지만, 큰 일은 다르다. 체류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살갗이 맞닿기 때문이다. 큰 용무가 있을 때, 좌변기에 오래 앉는 편이다. 최소 10분에서 길면 20분까지 자리를 지킨다. 몸에 쌓인 노폐물을 소거하는 작업이므로, 용무는 정화이다. 또한 장을 비워, 맛 좋은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일련의 생각들로 인해,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즐겁다.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알기에 느긋해진다. 한 도승이 명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2,3 초의 명상도 명상다. 특별한 프레임을 씌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의 말처럼 명상의 기준을 낮춘다면, 내게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다. 복식 호흡으로 길게 숨을 내뱉지 않아도, 몸의 템포가 느려지고 차분해진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항문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핸드폰을 켜서 SNS를 확인하거나, 기사나 에세이 등을 읽는다. 흥미로운 내용이 있을 땐, 볼 일이 끝났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또 다른 하나의 좋은 화장실의 조건은 방문객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화와 명상을 위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므로 복잡한 것보다 한가한 것이 좋으며,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땐 행위의 숭고함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소중한 시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화장실을 찾을 때마다 사람이 없거나 적길 바란다. 최악의 상황은 누군가 노크할 때 찾아온다. 똑똑- 소리가 들리면, 타인이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낀다. 빨리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억지로 배에 힘을 준다. 얼마 남지 않은 치약을 짜는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낸다. 곧 여유는 사라진다. 압박을 피해 적당히 끊고 나온다. 다시 화장실을 찾을 때까지 불쾌한 잔변감이 길을 함께 한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다. 보람찬 노동이 이뤄져야 할 시간이지만, 직원에게 모든 육체 부담을 맡기고 정신적 풍요를 위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여기선 학생 비자를 갖고 호주에 머무는 공식적인 학생이다. 다니는 학교는 작은 규모에 비해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튜터의 사명감이나 열정은 높지만, 한정된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해서 덜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다. '우리 학교'라는 생각은 없다. 대신 석사 계절 학기 수업을 듣는 친구를 따라 그녀의 모교인 멜번대를 찾았다. 호주 제일의 학교는 돈도 제일 많이 버는지 시설을 잘 갖췄다. 강의실이 도서관 건물 안에 있어, 실내에서 인사를 나누고 빈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매주 오는 곳으로 익숙하게 가방을 펼치고 랩탑의 코드를 연결했다.
아침에 스테이크를 먹었다. 버터와 다진 마늘, 통후추를 갈아 시즈닝 하고, 잘 손질된 버섯도 곁들였다. 언젠가 본 고든 램지의 스테이크 만들기 비법을 차용했다. 무겁게 아침을 먹은 탓에, 자리를 잡고 얼마 되지 않아 배에서 신호가 왔다. 방학 기간 중이라 유동 인구는 거의 없지만, 안전을 위해 짐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자주 찾은 건물이지만, 화장실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화장실 입구에 실망을 했지만, 두 개의 문을 열고 마주한 화장실은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깔끔하게 정리된 실내, 아늑한 조명, 빛나는 유리와 청결한 무취의 향. 아무도 없어 귀중한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
볼 일을 보기 전에 꼭 대변기의 앉는 부분을 휴지로 닦았다. 변기 오른쪽에 구비된 휴지 케이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뽑았다. 화장지를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는지, 케이스 안에서 꽉 찬 휴지의 무게가 느껴졌다. 휴지의 소재는 중요하다. 질 나쁜 휴지를 사용하면 만져선 안 될 것을 만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툼하지만 부드러운 휴지의 질감이 손 끝으로 전해졌을 때, 안심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품격 있는 좌변기와 질 좋은 휴지의 하모니였다. 좌변기는 첼로, 휴지는 바이올린, 현악 이중주가 울려 퍼졌다. 명상은 환경이 중요한데, 멜번대 신축 도서관 3층 화장실은 최고의 환경을 제공했다. 핸드폰을 꺼내고 10분 간 값진 시간을 가졌다.
고민과 대사산물을 비워내고 향이 좋은 액체 비누에 손을 씻었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스스로 좋은 화장실의 조건은 무엇인가 물었다. 이내 조금 전의 경험한 훌륭한 시설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아름다운 시간을 제공한 곳에 대한 예의였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조책의 문장이다.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는, 나의 시간을 존중한 이 화장실을 위해 짧은 에세이를 써야 하지 않을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