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성애자

by 띤떵훈

어떤 게 정의일까 하루에 5 번 쯤 생각한다. 나는 정의성애자다. 그러나 행동이 항상 정의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정의와 악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의롭지 않을지언정, 악도 아닌 것이 있다. 길가다 쓰레기를 발견했을 때, 쓰레기를 줏어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다고 악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정의는 공공선을 위한 활동이다. 몇 가지 정의로운 행위에 대해 정리했다. 약한 사람을 돕는 것, 불의에 맞서는 것,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등이다. 서로 상충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지만, 거짓말이나 침묵해야 할 때이다. 정의의 우선 순위를 둠으로 가치 판단할 수 있다. 나에겐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되는 행위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높은 정의다. 후자의 경우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대단한 결정 앞에서만 정의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식당에서 과자 가루를 티셔츠에 흘렸을 때도 정의를 묻는다. 바닥에 털어도 정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터는 게 좀 더 정의로울까? 이내 되도록 청소가 쉬운 공간에 털기로 결정한다. 직원이 덜 힘들면, 긍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짜증날 일이 적어진다. 일상에서 나온 vㅏ이브가 타인에게 전달된다. 결국 모두를 위한 일이다. 고로 정의롭다.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인가 묻는다면 보통보다 정의롭다고 대답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항상 정의로운 것이 아니다. 정의를 구분짓는 것이 스트레스고,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야한다는 강박은 없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사랑받는 사람이 될 필요를 못 느낀다. 이상향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불화를 만들 사람, 나서서 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다. 실재할 수 없겠지만 완벽한 정의를 100으로 놨을 때, 70정도로 살기로 정했다. 그 위로 가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피곤한 일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훗날 여유가 생기고 도덕관이 크게 변한다면 그 때 수치를 조정할 수 있다.


진리에 맞는 도리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모순되는 말이다. 참된 진리, 논리적으로 모순될 수 없음인데, 사실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모순될 수 없다는 말 자체가 성립불가능하다. 그래서 각자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무서운 것은 상대의 기준이 나의 기준과 상충할 때인데, 가벼운 트러블로 끝날 수 있지만, 나에게 큰 상처나 해를 입힐 수 있다. 다소의 불편과 질타를 감수하면서 이뤄낸 것으로 칭찬해줘야 한다. 상대적 정의의 무서운 점이다. 큰 피해나 불편을 감수할 경우에는 굽히기로 한다. 정의롭지 않지만, 설정한 정의 기준치 70에 이를 정도는 할 터이다. 앞서 말한 큰 피해나 불편을 감수하면 수치는 100에 가까운 것이다. 인간으로 100의 삶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올바른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 100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납득할 수 있으면서, 나의 삶이 문제없이 굴러갈 수 있는 수치가 70이다. 경험으로 찾아낸 타협점이다.


왜 정의를 찾는가? 재미를 위함일 수 있고, 평가 기준, 판단 기준으로 수월하게 살기 위함일 수도 있다. 수치와나 등급화를 거치고 나면 나의 행동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 되고자 한다. 완벽한 선, 완벽한 모순의 제거를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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