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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Dec 24. 2019

주식



나는 가치 투자자다. 저평가 된 종목을 사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때 판다. 정당한 평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가치투자는 장기투자다.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1년 묵히기를 계획했다. 3년도 기다릴 수 있겠다 싶어서, 보유 기간을 연장했다. 몇몇 책에 따르면, 주식투자는 무신경한 사람이 유리하다고 한다. 나는 그 점에 부합한다. 주가의 오르내림은 일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주식 투자를 위해 딱히 하는 일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유 자산액 확인하는 게 전부다.


최근에 처남 졸업식에 참석할 목적으로 브리즈번에 놀러 갔다. 처가 식구들도 보고, 브리즈번 관광도 했다. 노느라 정신이 없어 주가 확인하는 것도 잊었다. 멜번으로 돌아와서 한숨 돌렸다. 여행 모드를 끄고 일상 모드를 켰다. 열흘 만이었다. 열흘 동안 주가가 변했다. 변화 폭이 커서 주식 프로그램을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봤다.


열흘 동안 주식 자산 1700만 원이 늘었다. 호주 돈으로 계산하면 2만 불 정도다. 2만 불을 저축하려면 반 년 넘게 일해야 한다. 반년치 저축액에 상응하는 수익을 열흘에 번 기분은 묘했다. 물론 좋았다. 좋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지금 세상이 새삼 신비했다. 자본주의 세계는 불공평하다. 어차피 불공평한 세상이라면, 이득을 누리는 쪽이 낫지 않나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주식투자)을 했다. 그래서 불공평하게 돈을 벌었다.


그저께 즐겨 찾는 커뮤니티 더쿠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32살 경비원의 썰이었다. 제목은 -32살 경비원 개만족하는 썰 푼다-였던 것 같다. 아파트 경비원 청년이 매달 120만 원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루 6시간 근무, 편한 환경, 종신 고용, 긴 유급 휴가, 비수기 저가 해외여행 등을 이유로 본인이 개꿀 빨고 있다고 자랑했다. 120만 원은 본인에게 충분한 돈이고, 소비가 많지 않아 돈 걱정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젊은 경비원과 공통점이 있다. 1. 32살이다 2. 자랑할 만한 학벌이 없다 3. 기술도 없다 4. 인생에 대체로 만족한다. 5. 저축액이 적다. 그가 말하길 조금씩 저축해서 1년에 2회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그는 버는 대부분의 돈을 소비한다. 나도 버는 돈의 대부분을 사회로 방생한다. 하지만 내 자산은 매해 늘고 있다. 그와 나를 병치 시키자 불공평함이 실감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보험사에서 받은 돈, 어머니 병원비로 쓰고 남은 전세금을 전부 주식에 넣었다. 몇 번 위기를 겪었다. 검은 10월이라 불리는 2018년 10월엔 큰 손해를 입었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자 룰을 무시한 결과 몇 시간 만에 800만 원을 잃기도 했다. 시간은 교훈도 주고, 잃어버린 돈도 복구해줬다. 그뿐만 아니라 산신령처럼 금도끼와 은도끼도 쥐여줬다.


내가 보기에 주식은 얄궂다. 하루 종일 네이버 주식 게시판 들락거리고, 비싼 돈 주고 정보 사는 개미에게 손해를 준다. 공부 안 하고, 노력 안 쓰는 베짱이(나)에겐 수익을 준다. 이다음 하는 말은 다소 건방지다. 미안하다. 미리 사과한다. 내가 주식 투자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2가지다. 1. 한국이 망한다 2. 주식 투자 방법을 바꾼다. 나는 투자 방법을 바꿀 계획이 없다. 결국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내가 주식에서 실패할 일은 없다. 시스템을 잘 아는 이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우스울까? 돈은 있는 사람에게 더 단단히 붙는다. 이 세상 자체가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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