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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Dec 04. 2019

덜 우울한 이유



 주변에 우울한 이가 몇 있다. 타국 생활의 영향일까. 정신과 상담은 더이상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친구를 만나도 다른 감정을 느낀다. 같은 자극에 반응이 갈린다. 나는 쾌락에 열려있다. 설명이 필요하다. 사소한 쾌락에 쉽게 만족한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와이프가 맥도날드에서 빅맥세트를 먹고 깊은 분노를 느낀다면, 나는 행복을 느낀다. (분노의 이유는 영양가 없는 음식을 먹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서라고. 나는 맛있는 음식 먹어서 좋다) 




 합리적 삶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동일한 자극에 더 행복을 느끼도록 프로세싱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쾌락의 디폴트값을 낮추기. 감사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의식해서 지금 향유하는 것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낮에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맥도날드를 먹으러 운전하고 갈 수 있어서, 100불짜리 신발을 신을 수 있어서, 야경이 예쁜 집에 살아서, 예쁘고 똑똑한 와이프와 매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의식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매끼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책 읽을 시간이 많아서, 건강해서 등. 돈 쓰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문제없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행복하다. 




 여기에 위험이 존재한다. '다들 나처럼 생각하면 행복할 텐데. 너도 이렇게 해봐'- 라며 주제넘게 권유하거나, 상대의 우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어불성설이다. 내 긍정의 출처는 연습만이 아니다. 천성도 한몫한다. 타인의 발언에 무던하고, 불쾌한 감정을 쉽게 털어버리는 것은 타고난 성향 덕이다. 반대로 남보다 부정적 자극에 예민한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우울은 예상 범위 밖에 존재한다. 간헐적으로 느끼는 우울이 알려준 교훈이다. 남의 우울을 개선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을 지양한다. 





가끔 알 수 없는 이유로 우울이 감정의 절반을 점거한다. 대체로 이런 증상은 아침에 온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나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다 2. 어제와 같은 오늘이 흥미롭지 않다  3. 오늘 일이 끝나도 내일 또 일해야 한다  4. 나는 (불의의 사고 탓이던, 내 행동이 원인이 된 사고 탓이던) 언제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5. 나는 점점 늙어가고 종래엔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긍정 회로를 풀가동해도 극복할 수 없다. 여태 껏처럼 곧 우울이 사라질 것을 믿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대체로 몇 시간 뒤엔 긍정 전도사로 돌아온다. 우울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공고히 한다.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은 내게 또 다른 긍정의 이유로 자리한다. 찾아오는 빈도가 적고, 요란하게 오지도 않는다.  





우울한 감정이 덜 찾아오는 이유를 반추했다. 아산 병원 아무개 선생님 말에 따르면 몇 가지 원인이 우울을 불러온다.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 구체적으로 풀어 말하자면, 이혼 등의 충격적 사건, 낮은 자존감, 질병, 경제적 문제, 스트레스, 생체 리듬 등이다. 일단 경제 문제는 해당 사항 없다. 벌어서 먹고 쓰고 조금 남길 정도다. 자영업자다 보니 갈굼 당할 일이 없어 자존감 유지에 유리하다. 대체로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난다. 이혼 등의 충격적 사건이 없고, 우울증에 한해 가족력도 안심할 만하다. 남은 원인은 스트레스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또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접적 요소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간접적 요소도 있다. 내 경우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다. 누구보다(비교는 우울에 큰 역할을 한다) 똑똑해지고 싶고, 많이 벌고, 명예롭고 싶다. 당장 그런 위치에 올라갈 길이 안 보이기에 장기적이며 탈출 불가능한 스트레스를 얻게 된다. 여기에 글쓰기와 독서가 도움이 된다. 막연한 '대단함'과 가까워지기 위해 도움이 되는 유일한 활동이다. 유시민이 글쓰기 특강에서 말한 내용이 내 상황을 정확히 짚어준다. '아무리 해도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활동은 읽고 쓰기다.' 그의 주장에는 읽고 쓰기가 인생 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있다. 읽고 쓰며 얻은 배움은 쓸모가 많다. 막연함 속에도 그것만은 분명하다. 읽고 쓰는 시간은 내가 우울에 빠지지 않게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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