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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10. 2020

엄밀한 사람


나는 '엄밀한'이란 표현을 좋아한다. 엄밀한 논증, 엄밀한 합리성, 엄밀한 이치 등. 논리와 잘 어울리는 수식이기 때문이다. 주장할 때 하나의 찜찜함도 남기지 않고, 적합한 근거를 제시하는 엄밀한 철학자가 나의 이상이다. 나는 논리를 사랑하는 논리충이다. 논리에 '충'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1.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 2. 유머를 표현하기 위해 3. 논리를 추구한 나머지 감정적 이해가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논리충은 TPO에 안 맞는 단어인가? 아니다. 블로그나 브런치는 자유롭다. 비문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규정에 반하지 않는다. 저번에 글 제목을 '씨발'이라고 적었다. 논리충은 적합한 단어 선정이었다. 엄밀하지? 




나는 엄밀한 사람이고자 하지만 엄밀하지 않다. 그래서 속상하다. 논리적인 글쓰기에서 피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다. 왜? 문장의 맛이 덜 살고, 글쓰기 문법과 상충된다. 우회적으로 표현해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글이 고상하다. 선동이나 정치 연설 등, 직접적 표현이 필요한 곳도 있다. 이 글은 아니다. 또한 감정은 논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속상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왜? 2가지 이유가 있다. 1. 금기를 깨는 것은 재밌고 2. 속상함을 강조할 수 있어서. 아는 데도 사용했다? 절실히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엄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내가 생각하는 엄밀함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엄밀함은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한다. 생각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완결성이 떨어진다. 엄밀함은 완벽함, 혹은 완벽에 가까운 상태를 뜻한다. 내게 엄밀한 사람은 생각이 지극히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람,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모순과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칸트다. 나는 생각만 있고 행동이 없다. 내 안에 올바름은 분명한데, 여러 핑계를 대며 올바름을 거부한다. 고쳐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고치지 않는다. 여기서 고칠 것을 나열할 순 없다. 내게 신체적, 금전적 불이익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에서 이유를 찾는다.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리를 지나며 저 물건이 저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에서 누군가의 행동을 전해들을 때 행동의 기저엔 무엇이 있을까? 논쟁에선 평가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사실문제에선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나의 감정을 상대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가?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세상을, 자신을, 남을 더 잘 알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말 중, 듣기 싫은 2가지 부류의 말이 있다. 대분류로 나누자면, 1. 실체 없는 거창한 감정 표현 2.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말. 1번은 일전에도 여러 번 적었다. 블로거나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에서 종종 발견된다. 불필요하게 심오하고 진지하다. 불필요한 진지함은 겉멋+ 글쓰기 경험의 부재 + 노력의 부재+ 사유의 부재를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1. 우유나 설탕으로 혈관 깊숙이 자리한 본질을 흐리게 하지 않는 커피의 그 단도직입적이며 정면도전적이고, 본질적인 맛을 나는 사랑한다.

2. 심연의 고독에 대한 집착을 아마도 우리는 놓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3. 10월의 독일은 언제나 침침한 무채색의 열정의 고갈을 통해 들여다 보는 근원적 냉철함을 준다. 사람들은 온통 형형색색의 욕망의 덩어리로 표현되는 색상이란 괴물을 거부한 차림새이다.



위의 글이 그렇다. 명쾌하게 바꿔쓸 필요가 있다. 1. 블랙커피가 좋다. 2. 고독이 좋다. 혹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3. 이런 글을 써서는 안 된다. 내용이 없다.



겉멋으로 주제 없음을 가리려는 비겁함이 싫다. 그런 비겁함을 지양한다. 비겁함은 엄밀함을 공격한다.


2번째 부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경험상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의 99%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생각하기 귀찮고, 어휘가 적고, 있어 보이고 싶고, 표현하는 대상을 신비롭게 만들려는 의지가 불러온 못난 수식이다. 설명하면 만 원 줄게.라고 하면 설명할 것이다. 귀찮음을 꾸미지 마라. 


나는 글 밖에서 엄밀히 살고 있지 않다. 부조리한 인간이다. 인지부조화 지린다. 현실의 엄밀함은 여러 불이익과 귀찮음을 동반한다. 게으른 인간이라 현실의 엄밀함을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글에서만큼은 엄밀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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