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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Jan 22. 2020

주제가 없어요



 카페에 왔다. 습관적으로 랩탑을 켜고 글쓰기 창을 연다. 할 말이 없다. 충동에 주도권을 내주기로 한다. 손가락은 그 순간 기분에 맞춰 춤을 춘다. 최근에 즐겨듣는 팟캐스트 방송 일당백에서 이상의 날개를 다뤘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작품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와이프에게 생을 의탁하고 있다. 와이프가 열심히 몸을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나'는 현실을 회피한다. 마지막에 잠에서 깨 현실을 마주하고 비상한다. 소설의 '나'는 이상이다. 이상은 젊은 나이에 죽었다. 20대 중반 청년은 폐병과 함께 생명의 불씨를 소진했다.



나는 이상의 말년보다 나이가 많다. 천재는 요절한다고 한다. 미인도 박명이다. 이로써 나는 천재나 미인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내가 천재였다면, 이런 쓸모없는 글을 쓰지 않았겠지? 아니 쓸모없음의 벽을 넘어 무쓸모에 가치를 불어넣던지. 흠... 그렇다면 천재의 창작은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다. 우울해하지마. 그래도 습작은 성장에 토대가 되잖아. 말은 좋은데 결국 범인의 습작은 성장의 발판으로 존재하고 사라진다.



나는 합리주의자다. 논리적 타당성이 최우선이다. 사실의 수호자다. 아니 그건 사실 관계가 틀렸지. 자, 검색해보자. 리서치가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줄 거야. 봐봐 그건 거짓이지? 사실(나)의 승리야. 유시민은 글쓰기가 두 가지 큰 방향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예술적 글쓰기와 공학적 글쓰기. 물론 합리주의자의 글은 후자다.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지만 예술가의 자질이 없다. 인정한다. 글쓰기 위에서만큼은 공학도가 되기로 한다.



눈높이 수학으로 수학을 수학했다. 내가 천재였다면 이런 언어유희에 손뼉을 치는 사람이 있겠지. 내가 천재가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운율이 저평가 받는 거다. 똥을 싸라 박수친다 물론 네 똥은 아니야. 이 기막힌 말장난이 속한 글은 블로그 몇 천 개의 글 중 하나다. 사라질 숙명을 갖고 있다. 내가 죽으면 더는 찾아주는 사람이 없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사실 살아있는 나도 보지 않을 것이다. 쓰고 방치된 대부분의 글처럼. 글에 목적 없고, 노력도 없다. 미안하다 지금 쓰이는 글아. 너는 내가 쓰는 이 순간만 반짝이고 영원한 어둠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너는 디지털 언어로 존재하지. 실체가 없다. 하지만 인류가 지속되는 한, 아니면 인류의 대리인이 기술을 보전한다면 디지털 세상 어딘가에서 존재하겠지. 아니 네이버가, 아니면 네이버 블로그가 망하면 그마저도 사라지리라. 사라지기 전에 백업하라는 메시지를 받을 텐데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백업하지 않을 거야. 그럼 너희는 완전한 소멸. 열반. 해탈. 축하드립니다.



글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대부분이 무의미로 끝난다. 글이야 그나마 흔적을 남기지, 다른 모든 행동과 생각은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흔적 없이 소거.



나는 왜 의미에 집착하는가? 글에서 당위를 찾는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운 탓일까? 아니면 극한의 효율충으로서 사라질 것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것일까? 이 시간에 돈이라도 벌어라 이 새끼야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지도. 모든 시간과 행동과 생각에 쓸모가 있길 바라는 거부할 수 없는 아버지 법이다. 잠깐, 쓸모? 누구에게? 쓸모란 사용자를 전제로 성립하는 말이다. 누구에게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나는 이 메시지를 쏘아 보낸다. 70억 넘는 인구에게. 그러나 타깃은 한정됐다. 74억 중 한국말 하는 이로 줄이고, 네이버 블로그 하는 이로 줄이고, 그중에 나와 이웃을 맺은 이, 혹은 우연히 들린 이로 줄이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전달될 정도로 참고 읽은 이로 줄인다. 줄이고 줄이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 이 글을 읽을 사람은 100 명이 안 된다. 나는 100명이 안 되는 누군가의 독서를 기대하며 난쟁이처럼 작은 공을 쏘아 올리는 것이다~~~ 물결표나 특수 문자는 글을 급하게 가볍게 만든다. 그런 전환이 좋다^^ 회원님 ~*^_^* 우리는 $$$돈을 벌고, 그리고 대신 기호로 &, 당구장 갈래요%?



이 글의 운명은 100명의 인연을 만나고 디지털 세계를 배회하다 사라지는 것이다. 100인의 아해가 인터넷을 질주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4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5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6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7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8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지겹소. 100번 하면 의지의 한국인 인정인데, 나는 의지박약이므로 8에서 멈추오. 그 100인 중 이 글에 의미를 가질 이가 없다면 이 글은 쓸모가 없다. 무언갈 느끼는 누군가의 존재가 의미를 만드니까. 근데 나도 못 느끼는 그 무언가를 누가 느낄 수 있을까? 없지. 그러니 본질적 무의미를 가진 이 글은 비참하다.



비참하단 말 취소한다. 디폴트 값을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비참한 게 아니고 당연한 거다. 비참히란 단어는 나의 상처를, 감정의 동요를 나타낸다. 나는 불필요한 상처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 그건 비효율적이다. 그렇게 되면 글쓰기는 자기 연민으로 향한다. 여자들아 기죽지마라 당당하게 맞서라 우리들의 세상이야라고 티아라 다비치 씨야가 말했다. 나는 여자는 아니지만 주어를 바꿔 감상할 자격이 있다. 그것이 현명한 소비자, 주체가 되는 소비자다. 그러니 당당히 무의미에 맞서 웃음과 대범함과 호탕함과 아니 무엇보다 개의치 않음으로 응해주리라.




이상은 똑똑한 사람이다. 갑자기? 그래 이 새끼야. 이상하냐? 그래 이상하다. 그래서 내가 이상을 말한다. 이상이 필명을 지은 이유도 비슷하다. 다양하게 해석하고, 인상적이니. 나도 이참에 필명, 아니다 아호를 지어야겠다. 아호는 문장가의 특권이다. 지금 시스템은 모르겠으니 20년 전을 기준으로 말한다. 리니지에서 30레벨이 되면 호렙이 된다. 아이디 위에 호칭을 달 수 있다. 30레벨은 고렙의 기준이다. 되기 어렵다. 그러니 호칭을 부여하는 일은 고수의 전유물인 셈이다. 아호를 지닌 이들도 마찬가지다. 일정 성취, 혹은 문장력을 갖춰야만 아호를 가질 수 있다. 성취는 없고, 문장력은 괜찮음과 훌륭 사이에 있는 아마추어 글쓴이로서 아호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아호법 2조 3항에 의거해 아호를 가질까 한다. 2조 3항의 내용은 이렇다. '88년생에 잘생긴 사람은 아호 가질 자격을 예외적으로 부여받는다' 나는 88년생에 잘생겼으므로 아호를 갖는다.



그럼 어떤 아호가 좋을까? 아호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최고의 미덕은 유머다. 나는 유머에 모든 것을 쏟겠다. 약간의 논리가 더해지면 완벽하다. 아호는 2글자여야 한다. 3글자 이상으로 지어 틀을 깨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아호인지 모를 수 있단 리스크가 있다. 그러니 이번만은 현실과 타협해 2글자로 아호를 짓겠다. 나는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걸음 뒤에서 보길 종용한다. 그리고 언어의 위력과 그 아우라를 해체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아호를 아호로 짓겠다. 아호 OOO(글방 본명) 바질 아블로가 신발에 신발이라고 쓰고 옷에 옷이라고 쓰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의 대리인이 되어 아호 글방으로 존재하리. 아호는 일본어로 바보란 뜻이다. 굿굿~ ~~@ 회원님 장미 받으세요 ㅡㅡㅡㅡㅡㅡ@  




아호 글방으로서 글의 안과 밖을 오간다. 인상적인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인상파 작가 고흐 고갱 세잔 모네 마네 글방이네 우리 아내 89년생이네. 2020년 1월 22일 12시 40분 부터 1시 21분까지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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