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Feb 14. 2020

와이프가 답답해요




 일하다 문득 생각했다(글감의 70%는 이렇게 나온다). 와이프는 왜 나를 만났나? 나는 잘생겼다. 하지만 정도에 지나침이 없다. 와이프는 지나치게 예쁘다. 외모를 보고 느끼는 감정은 주관적이다. 주관이 말하길 와이프는 너무 예쁘다. 도식화하면 내 외모는 상위 30%(자기애 버프가 반영된 수치일 확률이 높다), 와이프 외모는 상위 10%. 요즘 시국에 안 맞는 표현이지만 숫자만큼 직관적인 게 없다. 내 SNS 계정에 와이프 사진이 많다. 몇 가지 이유로 배우자의 못 나온 사진을 올릴 수 없다. 사진에서 그녀는 현실보다 예쁘다. 가끔 그녀의 얼굴을 사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일하다 숨돌리며 본 사진 속 와이프는 또 너무 예뻤다.




주변을 둘러보면 외모 수준이 비슷한 이들끼리 만난다. 원빈은 이나영 만나고, 장동건은 고소영 만나는 것처럼. 이효리와 이상순 사례를 들고 오면 잠시 말을 멈추겠지만, 일부 사례임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들의 만남과 생활이 이례적이니 화제가 된 것이다.




외모도 유유상종이라면, 와이프는 나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다. 그녀는 10프로, 나는 30프로이므로. 그렇다고 20%의 갭이 이상하진 않다. 70과 90의 만남, 10과 30의 만남 30과 50의 만남은 드물지 않다. 내 얼굴이 너무 후달린 나머지, '저렇게 생긴 애 왜 만나?'라고 들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나는 얼굴 빼면 볼 게 없고, 와이프는 얼굴 빼도 볼 게 있다. 무수히 써서 입 아픈, 다소 지겹기까지 한 내용을 가져온다. 나는 가난했고(지금은 살만하다), 노동자 계급의 아비투스를 이어받아 취향이란 게 없었고(지금은 좀 고상하다), 학벌도 별로고(여전히 별로다), 영어도 못했고(still bad, but better than before), 신분도 안정적이지 않고(지금은 영주권자다), 직업도 쿨하지 않다(사업가냐 청소부냐에 따라 갈리지만, 청소부에 마음이 쏠린다). 도대체 왜 만난 건가? 심지어 괄호에 들어간 항변의 근거도 와이프다. 평강공주세요?




인스타그램 보기를 멈췄다. 핸드폰 대신 약품 통을 들고 일터로 돌아갔다. 약품을 오염 지역에 도포하다 부조리에 마주했다. 노동도 멈췄다.

'일에 집중할 수 없군. 00(와이프 이름)이는 왜 나랑 결혼했지? 어리석다 어리석어. 나였으면 나랑 결혼 안 했다.'



합리의 화신인 나는 와이프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이건 손해 보는 결혼이다. 상대(나)는 별 볼일 없다. 와이프가 내 딸이었다면 결혼해선 안 되는 이유로 벌스 3개를 써서 노래를 만들 것이다. 가사는 대충 이렇다.

-

그놈은 등신이고, 그놈은 문신충이고, 그놈은 비자 상태도 안정적이지 않은, 언제 한국으로 쫓겨날지 모르는 부랑자 같은 자식이야. 벌스 2는 영어로 간다. He is suck, He is poor, He is a dirt spoon. He is whatever meaning negative. 벌스 3는 일본어로. 카레와 바카야로 카레와 카레.




나는 자기애 넘치지만, 최소한 염치는 있다. 그래서 와이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발렌타인 데이다. 연인들이 초코렛을 주고 받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화이트데이가 없는 호주에선 쌍방이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그녀의 압도적으로 비이성적인 결정은 사랑 이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초코렛 안 받아도 충분하다.




나도 이제 잘났다. 보톡스 맞고 눈썹문신해서 외모도 20%까지 올라 갔다. 와이프를 위한 내 나름의 보은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자란 감이 있다. 와이프에게 꽃과 초코렛을 주기로 한다. 와이프가 달달한 편지 써달라고 했는데, 이게 내 한계다.


작가의 이전글 가장 가치 없는 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