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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Feb 21. 2020

사진 찍는 이유/ 과대 포장


1. 나는 사진이(을/를) ~서 찍는다




나는 사진이 재밌어서 찍는다. 사진가의 소명(mission)은 전무. 재미없다면 시작도 안 했다. 사명감은 내 취미 생활에 약간의 지분도 갖지 못한다. 재미는 뒤따르는 모든 이유보다 크다. 




나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오독해서 찍는다. 현실의 지킴이 혹은 관찰자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피사체를 선별하고 배치시킨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교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미를 느끼기 위한 기본 룰이다. 화각에 따라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된다. 나는 몸을 움직여 제외하고 담을 것을 고른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왜곡한다. 윌리엄 클라인이 사진을 자르고 확대시켜 인화한 것처럼 말이다. 윌리엄 클라인 New York 사진집에서 사진을 발췌한다(이 글의 배경).




나는 뽐내기 위해서 찍는다. 책 읽고 글 쓰는 것과 비슷하다. 박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흔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구입하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적이 더 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마찬가지로 스트릿 포토그라피란 다소 매니악해 보이는 취미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남과 다른 취미, 적극적 예술하기란 상징을 소비하는 셈이다.




 나는 사진이 쉬워서 찍는다. 쉽다는 말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의미다. 페인팅이나 조각의 경우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소 몇 분, 최대 몇 년이 걸린다. 사진, 특히나 거리 사진은 대체로 1/400 초 이하에 완성된다. 셔터를 누르는 즉시 이미지가 저장된다.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한 사진 작품도 있으나, 내 분야는 그렇지 않다. 






2. 포장지는 내용물을 상하게 해




최근 거리 사진가 타츠오 스즈키의 이름이 사진 마니아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특히 초상권에 예민한 한국 프로/ 아마 사진가들은 소리 높여 그의 촬영법을 비판한다. 타츠오 스즈키와 어느 정도 DNA를 공유하는 입장에서 사태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가입만 해놓고 발길을 끊었던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학개론에 다시 발도장을 찍고 있다. 애초 목적은 오가는 대화를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회원들의 사진을 보는 게 재밌어졌다.




보통 잘 찍은 사진을 보고 즐겁다 생각한다. 사진학개론엔 못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간혹 보이는 괜찮은 사진이 반갑게 느껴진다. 별로인 사진에서 저렇게 찍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기도 한다. 아마추어 작가들은(나도 아마추어지만) 구도나 색, 이야기 만드는데 이해가 부족하다. 따로 구도를 공부한 것 같지도, 사진집을 본 것 같지도 않다. 여러 문제 중에서도 가장 문제인 건 쓸데없이 진지한 캡션이다.




내용물은 보석반지(사탕)인데 포장지는 티파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고급 와인을 홀짝인다. 양복 안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반지 케이스를 꺼낸다. 티파티 케이스를 열고 보석반지를 꺼낸다. "나와 결혼해줄래?" 




캡션의 예를 들면 이렇다. 완벽히 같은 캡션은 특정인을 향한 조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워딩을 바꾼다. 




'인생....'


'내면의 고독....'


'사진 안에 또 다른 인생이 있다...'


'형태...'




게시판 이용 수칙에 명시되어 있는 것일까? 한결같이 줄임표로 캡션을 마무리한다. 캡션이 뭔가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분 나쁜 단어나 한 문장을 써서 줄임표를 붙일 뿐이다. 




과대 포장은 되려 내용물을 희화화한다. 진지할수록 희극 향이 짙어진다. 애매하게 잘 찍은 사진도 과대 포장을 거치고 나면 볼품없어진다. '이 사진은 봐줄 만하네. 캡션도 있네? '고독....'이라고? 사진이 형편없군.' 사실 어떤 사진도 과대 포장 아래서 살아남을 수 없다. 윌리엄 클라인이나 브레송이 현생 해서 본인 사진 올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전설적 사진을 올린다 해도 밑에 '삶의 수레바퀴...'라는 의미불명의 캡션이 있다면 나는 사진을 평가절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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