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에 산다

by 띤떵훈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사진 얘기다. 어딘가에서 숨 고르기를 했던 것 같다. 지푸라기에 옮겨붙고 장작에 붙어서 이제 후끈하게 방을 데운다. 대단한 작가들의 사진집이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나도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 기준이 분명해진다. 몇몇 대가는 멋들어지게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의 경계'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있다. 대놓고 있다. 너무 잘 보여서 문제다. 그 구분이 없으면 대가가 어떻게 대가로 인정받겠나.



요즘 여가 시간이 되면 사진집에 놀러 간다. 사진집에 머물며 고된 노동(은 아니지만 문맥을 위한 과장)의 여독을 푼다. 내가 보는 작가들은 전부 거리 사진사다. 영어로 하면 스트릿 포토그래퍼. 그들의 작업 활동은 거리에서 이뤄진다. 찰나에 작품의 완성도가 정해진다. 좋은 사진과 기막히게 좋은 사진은 한 끗 차이다. 사소한 디테일이 그 두 경계를 가른다. 장인의 사진집엔 경계 너머의 기막힘이 담겨 있다. 찰나의 성공적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집을 보지 않는 시간에도 나는 사진집에 머문다. 그들이 한 수 알려준 내용을 내 거리 위에서 재현하고 싶다. 흥미로운 피사체를 발견하면 주위를 배회한다. 내 최고 장점은 invisibility다. 길에서 발에 치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인간 1을 연기한다. 어떤 포인트도 없는 단색 옷을 입고, 손바닥 보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소리 없이 셔터를 누른다. 그들의 이미지는 메모리 카드에 남지만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나의 유령이 멜버른 시티를 떠돌고 있다. 사진집이라는 유령이. 나는 그 잔상을 내 프레임에 박아 넣으려 고군분투한다.



사진집을 보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재밌어서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즐겁다. 거리 사진을 독해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거장이 왜 거장인지 알게 된다. 사진을 즐기는 법을 깨닫게 된다. 현대미술처럼 진입 장벽이 있는 장르임이 확실하다. 고급 기종으로 저세상 보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벼운 똑딱이를 사용해 평범한 화질로 이미지를 담는다. 어떨 땐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걸로 보인다. 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용이 중요하다. 전설의 레전드라 불리는 브레송이나 로버트 카파, 윌리엄 클라인 등이 풀 프레임 DSLR에 최첨단 기술을 탑재해 오토 포커스 끝내주는 렌즈를 착용했나? 아니다. 메신저가 중요하다. 메신저의 위력을 알기 위해선 이미지 언어 독해 능력이 요구된다.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면 거리 사진의 미학에 심취할 수 있다.



사진집의 교육적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즐거워서 보는 거지만, 보다 보면 구도나 콘텐츠를 이해하게 된다. 좋은 것만 보면 나쁜 걸 볼 때 눈에 걸린다. 좋은 걸 보면 본능적으로 좋다. 그러니 거리 위에서 사진기 lcd를 볼 때 자연히 좋은 구도를 만든다. 계층의 아비투스 계승과 같다. 취향의 대물림. 부모의 고상함을 내내 지켜봐왔기에 자연히 고상해진다. 좋은 사진의 기쁨을 내내 지켜봐왔기에 자연히 좋은 사진을 쫓는다.



나는 사진집 산다. 조만간 이사 갈 수 있으나 당장은 이 집 생활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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