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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19. 2020

일주일 치 메모 모음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갖기로 했다'라고 적었다 지우고 '가지면 좋겠다'로 수정했다. 결심의 표현은 행위를 수반하는데 행위가 없으면 결심한 당사자가 가벼운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정한 셈이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고 있다. 갑자기 그의 텍스트 개념이 헷갈려 텍스트의 즐거움 정리 논문 두 편을 읽었다. 내가 받아들인 텍스트는 작품 그 자체가 아닌 수용자의 읽는 방식을 논한 개념이다. 저자가 가진 아우라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독자의 주체적 읽기 주이상스가 차지한다. 사진으로 말하자면 풍크툼이 아닐까. 지극히 개인적인 읽기법. 



개인적과 개별적의 차이는 뭘까. 펄스널 인디비주얼. 둘 다 독립적 하나인데. 생각해보니 펄스널이 더 위의 카테고리일 수 있겠군. 펄스널은 나라는 펄슨이 하는 모든 사고를 포함하는 것이고, 인디비주얼은 내가 하는 사고를 하나하나 나누는 것. 그 시간 그 장소의 내가 하는 텍스트 해석은 인디비주얼. 나와 일대일 매칭이 아니다.





애도 일기는 메모를 정리한 책이다. 두서없이 한 마디를 남기고 필기를 멈춘다. 내가 가진 글쓰기는 핵심을 말하기 위해 폼을 채워야 한다. 어쩌면 수필이 아닌 메모가 내가 원하는 방식의 글쓰기였을 수도 있다. 메모가 자유롭다. 메모는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복수태(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닌)가 된다.




나는 행복을 입에 달고 산다. 이 사회의 행복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걸까? 행복은 그냥 좋은데






출근 전에 유튜브에 접속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오뚜기 회장과 회장 딸의 식사 vlog를 메인 화면에 올렸다. 출근 5분 전에 영상을 클릭했고, 영상을 끝내지 못한 채로 일터로 향했다. 집에 와서 회장 딸(유튜버, 활동명 햄연지)의 영상을 이어봤다. 



'재벌가 딸'이란 단어가 주는 인상이 있다. 실제 경험하지 못하면 사람은 스테레오 타입을 정정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내가 그렇다. 영상을 몇 편 보고 그녀가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 1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벌 2세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단면을 조합한 대상일 뿐이었다. 상상계에서 대상으로서의 재벌 2세와 유튜버 햄연지는 투닥거렸다. 유튜브 영상의 보습은 온전한 그 사람의 모습은 아닐지언정(온전함은 뭘까), 페르소나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몇 편의 예능에 얼굴을 비췄는데, 유튜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재벌 2세 스테레오 타입을 깬 것은 아니다. 그녀의 모습은 구김살 없고, 공부 잘하고, 소탈하고, 사랑받고 자란 재벌 2세 스테레오 타입 2의 모습이었다. 미디어는 극적인 요소를 살리기 위해 극적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유튜버는 구김살 없는 재벌 2세(엄밀히 말하면 3세)의 유형에 놀라울 만큼 부합했다. 



전기장판 켜진 침대 위에서 조각난 그녀의 인생 여정을 불연속적으로 돌아봤다. 노력 안 해도 문제없는 삶의 주인(햄연지)은 불필요하게 열심히 살았다. 노력해도 모자란 나는 노력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척점에 서 있는 인간 하나를 알게 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 군상은 두 가지 행동으로 나를 대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라며 동아줄을 끌어올리거나, 포기하라고 동아줄을 놔버린다. 오늘은 떨어진 동아줄과 바닥에 있다.



요즘 와이프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그녀는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책상에서 보낸다. 일중독이라기보다 쉬엄쉬엄 일하길 선호하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제 이케아에서 350불짜리 의자를 샀다. 나도 약간의 지분을 보탰다. 배달 및 조립 역할도 맡았다. 삶의 질이 올랐다며 좋아했다. 나도 좋다. 




와이프는 나를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고, 누구보다 낮게 평가한다. 나는 2가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독서모임과 강독 모임인데, 현재는 둘 다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모임이 끝나면 듣고 있던 그녀가 내 이야기 방식을 지적한다. 주요 키워드는 '선민의식' '자만심' '잘난 척' '무시' '자의식 과잉' 등이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본인의 유식함에 심취한 사람처럼 보여 기분 나쁘다고 한다. 지식 자랑을 하기 위해 논의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것도 재수 없다고 한다. 나는 반론하지만 거부당한다. 


반면 그녀는 나를 대단한 재목으로 본다. 본인은 킹 메이커인데 나를 킹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간택받은 인물이다. 본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대단한(막연하다) 사람으로 만들 예정이란다. 나의 자질과 본인의 지원(어떤 지원인지 결혼 3년 차인 지금도 모른다)이 더해지면 성공(막연하다)할 수밖에 없단다. 


언제는 잘난 척하지 말라 하고, 언제는 잘났다고 한다. 잘난 척의 '척'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위장할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잘난 놈인가 잘나지 않은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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