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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1. 2020

내 나이 33, 첫 집 사며 느낀것

 집을 보고 있다. 모호한 문장이다. 왜 모호하게 썼나? 읽는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내가 집을 보고 있다는 말을 어떤 의미일까?




1. 이 순간 현존하는 집(한국어로 집은 모호하다)을 보고 있다.


2.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를 통해 집을 보고 있다.


3. 임대를 위한 거주용 집을 찾고 있다.


4. 구매를 위한 거주용 집을 찾고 있다.


5.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용 집을 찾고 있다.


6. 물건 판매를 위한 집(가게) 찾고 있다.


7. 물건 보관을 위한 집(창고) 찾고 있다.




정답은 4번이다. 내 나이 33(호주 나이 32, 액면가 23)에 드디어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 배 밖으로 나온 이후 가장 큰 소비다. 돈 많이 쓰는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변호사, 법무사, 모기지 브로커(대출 전문가), 부동산, 건물주 등과 쉼없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구매가 결정되면 카펫 업자, 페인터, 아파트 관리소 등의 차례다. 돈 나갈 곳도 많다. 부동산 구매의 장점 중 하나는 웬만한 부가 금액이 자잘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돈에 대범해진다. 매일 관련된 일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드디어 파이널 오퍼(매매 금액)을 정리해서 부동산에 보냈다.





부동산 구매 절차를 거치며 느낀 점을 몇 가지 정리할까 한다. 우선 부동산 금액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집값은 58만 불에서 최대 60만 불이다. 한국 돈으로 5억 정도다. 서울 집값의 악명은 인터넷 바다를 건너 내 귀로 들어온다. 최근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가 8억 전후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서울에서도 평균 이하의 집을 사고, 호주에서도 평균 이하의 집을 산다. 금액 그 자체로 보면 어마어마한데, 준거 집단을 보면 아주 겸손하다.





이런 겸손한 집을 사는데도 내가 부담할 수 있는 금액은 최대 20%다. 내가 지난 6년 동안 비즈니스 해서 모은 돈을 전부 넣고, 와이프가 도와주는데도 말이다. 왜 이렇게 돈을 못 모았나 생각했다. 이게 다 와이프 탓이다.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행복하고, 결혼 생활에 만족한다. 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와이프는 나와 반대 성향을 지닌다. 나는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현실에서 얼마간의 타협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외식 몇 번 참고, 돈 많이 드는 문화생활 줄이고, 쇼핑 몇 번 안 하고, 월세 등의 큰 고정 지출을 줄인다면 내 집 마련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 년을 빨랐을 터다. 와이프는 아니다. 지금을 사는 사람으로 지금의 행복이 중요하다.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위해 그녀의 기준에 내 삶을 맞췄다. 몇 년 늦게 첫 발을 내딛게 된 배경이다.




나는 나를 규정하는 몇 가지 단어에 '투자자'를 넣는다. 나는 투자에 관심이 많다. 호주는 첫 집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대단한 편의를 제공한다. 각종 세제 혜택과 지원금, 낮은 금리 등이다. 한국 굴지 대기업들의 CFO를 역임한 친구 아버지는 말했다. 호주에 살고, 자기 집이 없는 사람 중에 디파짓(예치금 혹은 착수금 = 매매 금액에서 대출금을 제외한 투자 원금)이 마련됐는데 집을 안 사는 사람이 가장 멍청하다. 그런 사람은 정말 멍청하다. 왜냐면 대출 원금과 이자가 대체로 임대 월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15년 정도면 모든 대출금을 변제한다. 같은 돈을 내는데 남는 게 다르다. 월세 살면 남는 게 없고, 구매하면 집이 남는다. 투자자로서 최대한 빨리 불필요하고 거대한 고정 지출을 없애야 했다. 그때그때 수준에 맞는 집을 살 수 있었다. 와이프는 거절했다. 작거나, 채광이 안 좋거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선 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저렴한 집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견딜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지금까지 투자자의 자아를 버렸다.





돈을 벌려고 집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구매 자금은 현금으로 한정했다. 주식이나 연금 등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았다. 돈 버는 집은 시티 외곽의 주택을 지칭한다. 인프라 구축으로 살만한 곳으로 거듭날 때 생길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이다. 나는 시티 근방 아파트를 구매할 계획이다. 실거주 용이다. 한국 주식, 호주 주식 등을 인출해서 사용하면 대출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거기서 나온 여유자금으로 재투자를 하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있으면 쓰는 가정환경이기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투자금은 손대지 않고, 현금만 쓰기로 정했다.




어른이 된 기분이다. 막연했던 일을 하나 둘 클리어하면서 자각이 생긴다. 어른의 일 카테고리에 있던 일들을 하고, 경험 항목에 넣는다. 어른의 일은 대체로 별일 아니다. 실행할 땐 생각 못 한다. 언어가 행위를 규정할 때 놀란다. 보드리야르를 끌고 와 부산떨자면. 실재보다 행위가 가진 이미지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대출 대리인과 대화한다. "아... 그렇군요. A는 뭐죠? 그럼 B는 뭐죠?"라고 말한다. 압도적 지식의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수동성 끝에 가까스로 짜내는 행동(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올리는 '결정'이란 행위)이 일을 끝맺는다. 결과만 보면 어른의 일을 한 셈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 집을 샀어? 사업을 했어? 결혼을 했어? 이민을 왔어? 누구?




지금도 HOT의 위 아 더 퓨처를 즐겨 부른다. 반항심을 담아 노래한다. 우리를 억압하는 어른 아웃. 와이프에게 종종 말한다. "우리 결혼 생활은 소꿉장난이야" 모자란 애들 둘이 어른 흉내 내며 산다. 집사는 것도 그렇다. 남에 옷 입은듯 어색하다. 어색함을 없애려면 몇 번 더 사야할 것같다.



*결국 집 못 삼. 3월 1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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