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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7. 2020

대장암 걸린 꿈



 대장임에 걸린 꿈을 꿨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눌까한다. 꿈에서 길을 걷다가 체력적 부담을 느꼈다. 문제의 출처가 병인지 병을 의식하는 내 정신인지 궁금했다. 많은 경우 언어는 현실을 앞서니까. 문뜩 대장암이 병세가 진행되면 가장 고통스러운 암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떠올랐다. 출처는 명확치 않다. 미래의 고난이 예상돼 고통스러웠다.



의사의 진단에 내가 보인 반응은 왜 나에게!가 아니라 올게 왔구나!였다. 자라면서 죽음은 언젠가 찾아온다는 진리를 깨달았디.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믿었던 일이 몇 번인가 발생하며 나도 예외가 아니란 것을 실감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죽음은 찾아올 것이란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그래서 죽음과 가장 가까운 병인 ‘암’이 꿈에서 찾아왔을 때 곧바로 받아들였다. 환자의 순응 절차 5단계였나 4단계에서 첫 번째 반응은 부정이다.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으니, 꿈에서 나는 부정 단계를 넘겼다.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만나는 모임의 일원이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했다. 우리의 만남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통증이 심할 땐 모임 중간중간 휴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병세가 심해져 모임 중간중간 카메라를 껐다. 양해를 구하기 위해 최근 모임 말미에 본인의 병을 밝혔다. 놀랐다. 그에게 힘들면 기꺼이 휴식 시간을 가지라 말했다. 꿈은 최근 발생한 일을 토대로 구성된다. 아무래도 이 기억이 작용한 듯하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명은 뇌종양이다. 다르게 말하면 뇌암이다. 암세포가 여기저기로 전이돼 예후가 좋지 않았다. 선고일로 부터 일년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어머니 병세는 계단식으로 악화됐다. 괜찮다가 확 나빠지길 반복했다. 그 ‘확’ 부분마다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마지막엔 비행기를 굉장히 자주 탔다. 바로 옆에서 그녀의 투쟁의 역사를 지켜봤다. 고통에 몸부림 치는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아닐 줄 알았다. 병은 예외 없이 찾아온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나는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불행해지진 않았다. 되려 힘껏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됐다. 꿈에선 공교롭게 내 차례가 일찍 온 것 뿐이었다. 무섭고 고통스럽지만 운명을 부정하진 않았다.



눈을 뜨고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감사의 대상은 누구일까? 운명을 관장하는 초월자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고, 그 모두일 수도 있다. 주어 없이 무작정 감사했다.



현실로 돌아와 짧게 꿈을 리뷰했다. 그러던 중 한달 쯤 전에 꿨던 다른 꿈이 떠올랐다. 너무 강렬한 꿈이라 평생 기억할 꿈 목록에 추가됐다. 그 꿈을 포함해 목록엔 3개의 꿈이 있다. 초등학생 때 꾼 어머니가 죽는 꿈, 전지현이 등장한 첫 몽정에 더해졌다. 새로 목록에 오른 꿈은 비행기가 불시착해 죽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굉장히 짧은 꿈이었는데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을 대하는 내 태도를 엿볼 수 있어 의미 깊었다. 기내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꿈 속 나는 비행기의 추락 사실을 인지하며 깬다. 10초 가량 추락했다. 짧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나지 비행기가 지면에 충돌해 한 순간에 소멸했다.



비행기 추락사 꿈에서 3가지 큰 생각이 있었다. 우선 ‘잘 살았다’ 여기서 좋고 나쁨을 나누는 기준은 행복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지금 돌아가서 살라고 하면 못 살겠지만 (군대 2년과 왕따 당했던 중학교 1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 만족했다. 다음으로 혼자 남을 와이프 걱정. 전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해야 할 그녀의 당혹감이 떠올랐다. 다만 내가 벌어둔 돈과 한국에 있는 주식을 정리하면, 경제적으로는 큰 문제 없을 거다. 상속받은 자산 일부를 약속대로 아버지에게 보내줄 것도 믿었다. 와이프를 한마디로 정리하니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10초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여기에 한가지 큰 생각 카테고리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즉사 기원이었다. 궤도에 오른 비행기 추락하면 생존 확률이 희박하다.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했다. 죽는 게 디폴트 값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통에 신음하지 않게, 순식간에 죽고 싶었다. 사고사는 고통과 신음과 뒤틀리고 분리된 신체 확인하는 절차를 불러온다. 이런 부산물을 수령하길 거부했다. 지면에 충돌할 때 터지는 불꽃이 나를 한 입에 꿀꺽 삼켜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바라던 대로 이뤄졌다.



추락하는 꿈과 대장암 걸린 꿈을 병치시켰다. 한쪽은 인생의 단물만 쪽 빼먹고 가장 힘든 파트를 생략했다. 다른 한쪽은 죽음을 비교적 오랫동안 실감하고 관찰하는 시기를 남겨뒀다. 물론 암도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내 꿈 세계관에서 죽음이 내정된 상태였다. 꿈은 많은 경우 ‘아무튼 그래’라는 전제를 두는데, 나는 곧잘 그 세계를 받아 들인다. 두 가지 죽음을 번갈아가며 비교했다. 역시 나는 고통 적은 순식간에 이뤄지는 죽음에 끌린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이어진다. 만일 죽음이 확실한 대장암에 걸렸다면 나는 쉽고 빠른 죽음을 위해 존엄사(가능한 경우)를 택하겠는가? 죽는 게 확정이고 점진적으로 커지는 고통이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나의 존엄(이라기 보다 편안함)을 위해 죽음을 앞당기겠는가? 내 답은 ‘거의 아니다’다. 그런 선택지가 있다 해도 죽음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유보할 것같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정신이 온전치 못해 존엄사를 요청할 가능성을 염두해서 앞에 거의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 세상이 내게 준 소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구조가 주입식으로 정보를 넣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내 고통의 여정을 마지막까지 목격하고 기록할 의무를 느낀다. 기록은 실제 종이나 컴퓨터 화면 위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내가 배우고 써온 한글이란 언어를 통해 이성 위에서 이뤄질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 (내 이름) 000의 인생 일지의 후반부를 조금 더 세련되고 무게감 있는 어조로 채워야 한다. 세상에서 배운 사상과 경험이 이를 가능케 하리라. 가장 중요한 경험인 죽음의 경험(실제 이벤트로서 발생하는 죽음은 경험의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을테지만)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제일 중요한 내용이 담길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가하는 인생이 명작은 못 되도 수작으로 남기길 바라는 욕심이  끝까지 남길 요구한다. 물론 찰나의 죽음이 온다면 더 기쁘겠지만. 그 경우에 나는 맡은 바 소임도 다 하고, 죽음의 부산물도 피할 수 있다.



꿈은 꾼 직후가 가장 강렬하다. 시간이 지나면 곧 잊혀진다. 아주 예외의 경우엔 기억에 남아 평생의 꿈 리스트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강렬함과 거기서 배운 교훈을 잊지 않으려면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 5시 30분에 꿈에서 깼다. 이를 위해 나는 침대 위 자리를 고수한채 핸드폰을 켜고 기록한다. 7시 14분에 글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오타와 지저분한 문장이 많다. 이해 바란다.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퇴고하지 않았다. 점점 잠에서 깨 또렷해지는 모습이 보여 재밌다. 글은 ‘대장임’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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