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다. 감사한 일이다. 단서를 붙여야 한다. 괄호 열고 미래에 괄호 닫고. 다시 쓰면, 나는 (미래에) 부자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을 들이밀며 '저 부자 맞죠?'라고 말한다면, '아니에요. 저리 가세요.'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럼 무슨 근거로 부자라는 거야?
앙드레 코스톨라니 형님의 말을 빌려올 때가 왔다. 그는 명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뤄라'에서 부자가 되는 3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1. 부자 와이프와 결혼한다.
2. 좋은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
3. 투자한다.
위 세 가지 방법 없이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월급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고액 연봉으로 취급받는 1억을 기준으로 두면 이렇다. 1억을 벌면 23프로 나라에 줘야 한다. 집세, 생활비, 교통비, 경조사비, 와이프 가방 선물, 떡볶이 배달비 빼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다. 게다가 회사 소속으로 노동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됐다. 1억을 벌든 2억을 벌든 마찬가지다. 요컨대 위 3가지 방법이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근거는 내가 위 3가지 중 하나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우선 1번, 와이프가 부자입니까? 아닙니다. 본인 월급 보드 게임 사고, 옷 사고, 비싼 식당에서 비싼 음식 비싼 와인 주문하고, 몬스타엑스 CD 10장씩 사는데 쓰는 와이프다. 자연히 저축에 서툴다. 그녀의 경제관념은 내게 몬스타 엑스다. 몬스터급으로 엑스라고. 씀씀이만큼은 부자다.
두 번째, 끝내주는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나는 청소부다. 청소해서 번 돈으로 먹고 산다. 그나마 내 사업이라 일한 시간 대비 과분한 돈을 번다. 수익의 대부분을 직접 움직여서 창출한다. 내 몸은 하나라 버는 돈도 제한적이다. 기막힌 수익 창출 모델도 없다. 혁신 없는 사업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청소기 돌려서 돈 받는 시스템은 똑같다. 끝내준다기에 부족함이 많다.
남은 건 투자뿐이다. 투자를 하는가? 그렇다. 부자가 되는 마지막 방법이다. 여기서 궁금해할 텐데, 그럼 투자만 하면 다 부자 되는가? 물론 아니다. 올바른 방식으로 투자를 해야 부자가 된다. 그 말인즉슨 나는 올바른 방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 올바른 방식이 무엇인지 얘기할까 한다.
성공적 투자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원칙과 시간이다. 올바른 원칙을 갖고 오랜 시간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복리의 마법'이 작동한다. 투자엔 눈 굴리기 비유가 적절하다. 손으로 눈 뭉치를 만든다. 이는 투자금을 마련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산을 오른다. 산타기는 공부다. 공부하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없다. 여기서 깜짝 질문, 평지에 눈 뭉치 던지면 눈 뭉치는 어떻게 될까요(정답 2개)? 정답 1-던져진 눈 뭉치, 정답 2-부서진 눈 뭉치. 부지런히 공부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손에 쥔 눈 뭉치를 굴린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피가 커져 나중엔 눈사태를 일으킨다.
2015년생 기준으로 기대 수명이 150살이라고 한다. 지겹도록 긴 시간이 남았다. 9회 말 2 아웃이어도 두 손에 배트 들고 있을 텐데, 아직 1회 초 밖에 안 됐다. 방향을 잡으면 문제없다.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그냥 내가 끌리는 대로 한다. 1루, 2루 지나 3루 베이스 밟는다. 다음 타자 나와도 큐빅 배트로 멀리멀리 날린다.
4년 전에, 나는 적당한 고도에서 눈 뭉치를 산 아래로 굴렸다. 손바닥 크기였던 눈 뭉치는 매해 30%씩 크기를 키웠다. 이제 사람 머리 크기 정도가 됐다. 데굴데굴 구르는 눈 뭉치가 이상한 곳으로 구르는지 관찰한다. 눈덩이는 크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에 한 말에 대답이다. 사람 키 정도의 눈 뭉치가 부자의 기준이라 가정한다. 그에 비하면 머리 크기 눈 뭉치는 작다. 나는 방향성과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의 크기를 계산한다. 사람 키까지 키우는데 10년도 필요하지 않다. 내 시선은 고스트 버스터즈의 눈사람 귀신 크기로 커진 눈덩이에 닿아 있다. 거대 눈사람 위에서 미끄럼틀 타고 팥빙수도 만들고, 눈싸움도 할 계획이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원칙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도대체 그 방향성이 뭔데? 한 단어로 말하면, 가치투자다. 좋은 기업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버핏의 말을 빌리면, 건정한 기업의 주식이 내재 가치 이하로 팔리고 있을 때 과감하게 투자하는 전략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기간에 걸쳐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몇몇 종목을 선정하고,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집중해 넣는 식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로 접근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투자는 주가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 아닌, 적정 주식을 적정 가격에 매수해 보유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차트나 사이클, 정치, 인기주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단지 두 가지 변수인 가격과 가치만 본다. 여기에 적당한 인내만 보이면 수입이 생긴다. 쉽고, 안정적이다.
이렇게 쉽고 확실한 방법은 그다지 인기가 없다. 가치, 장기 투자를 실천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방식이 믿을 수 없게 쉬워, 믿을 수 없다. 워렌 버핏이 쓴 몇 안 되는 글 중 가장 유명한 글이 잘 설명해준다. 그레이엄-도드 마을의 탁월한 투자자들에서 발췌했다.
'이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1달러짜리 지폐를 40센트에 사는 개념을 즉시 이해하거나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일종의 면역인 셈입니다. 이 개념을 즉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랜 기간 설명해주고 실적을 보여주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단순한 개념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감명을 준 책, 조엘 그린블라트의 '주식 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이 발제 도서였다. 돈 버는 쉽고 확실한 비법이 담겨 있다. 천기 누설 죄로 벌받을지 모른다. 이타적 마음으로 손해를 감수했다. '올바른 투자 원칙이 널리 퍼져 내 미래 수입이 줄어들겠다.' 독서 모임 회원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가치, 장기 투자의 비밀을 공유했다. 책을 읽은 대부분의 회원들은 박한 평가를 남겼고, 어떤 이는 최하점을 줬다. 주식에 관심 있는 다른 회원은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죠. 그래프나 통계도 부족해요. 이렇게 쉽게 부자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안전 마진 개념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대단한 해자임을 깨달았다. 지금 손에 쥐어진 집이나 현금보다 값지다. 안전 마진을 이해하는 사람이 적고, 실행하는 사람은 더 적다. 나는 눈덩이가 굴러가는 환경을 만들어낸데 자부심을 갖게 됐다. 눈 뭉치 굴리고 나면 딱히 할 일도 없다. 가끔 한국전력에 안부 인사 건네는 정도다. "앞으로 탄소 배출하면 안 된다며? 어쩔 수 없이 원전 가동률 올려야겠네. 연료비 연동제 실시한다며? 앞으로 큰 손실 면하겠네. 전기세 안 올린지 7년 5개월이나 됐는데, 올릴거야? 천천히 해. 나 신경쓸 거 없어." 나는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