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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27. 2021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 주는 만족


이 글은 와이프 얘기다. 그전에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식전 빵 먹는 기분으로 들어주길 바란다. 남 괴롭히는 양반 이야기다. 괴롭히기 대회가 있었다면 월드챔프는 그의 몫이다. 괴롭힘 연대기에서 가장 심각한 에피소드를 꺼내봤다. 온라인 인민재판의 위력을 맛봤다면 그럴 수 없었을텐데, 안타깝게도 네이트 판이 등장하기 전 일이다. 


한 번은 그가 다른 힘쎈 친구랑 내기를 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극단으로 몰아도 그는 나를 좋아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두고 의견 차이가 생겼다. 괴롭힘 세계 챔프는 좋아한다에 걸었다.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배팅한 그는 진정한 승부사였다. 그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력을 발휘했다. 피해자 와이프 죽이고, 자식 죽이고, 재산 몰수하고, 팔다리를 잘랐다. 그는 이겼다. 피해자는 괜찮다 말했다. 가해자 양반은 의기양양해졌다. 피해자에게 위로 명목으로 새 와이프와 새 자식 줬다.



가해자의 추종자는 그것을 글로 남겼다. '그분은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지'



일단 죽은 와이프와 죽은 자식들에겐 미안하지만, 피해자는 새 가족 꾸려서 잘 살았던 것 같다. 피해자가 행복했다니 그건 다행이다.



일단 위의 고통은 내 임계치 밖이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다. 욕 안 하고 사는데, 저 상황이었다면 시팔조팔 다 했다. 이해심이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추후 그 양반이 나를 타겟 삼아도, 괴롭힘이 저 정도로 심하진 않을 테니까.



저 양반의 괴팍한 성격과 피해자의 바다와 같은 이해심에 물음표 띄우지만, 컨셉 하나는 동의한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와이프는 내게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내게 고통을 준다. 옷 벗어서 아무 데나 놓고, 밥 먹고 설거지 안 하고,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 깨우고, 자기 소비에 간섭한다고 성질낸다. 화가 많아 쉽게 소리 지른다. 입 밖으로 문장을 꺼낼 때, 열에 하나는 남편 비난이다. 내 행동을 바꾸길 강요한다. 여기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다. 데이트 초기엔 내 카파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래 못 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5년에 걸쳐 카파가 늘었다. 살만하다.



어항에 물고기를 두면 갤갤되는데, 포식자까지 넣어주면 쌩쌩하고 건강하게 산다. 와이프 눈치 안 보고 살 수 없다. 그녀의 언사는 나를 열 받게 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 1. 욕 덜 먹기 위해 2. 그녀의 행복 레벨 올리는데 기여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행동을 한다. 흥미롭다. 내키지 않는 행동이 나를 성장시킨다. 이해와 인내를 기른다.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마주한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맞는 말이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쳐맞는 말일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할 수 있다. 정신승리 아닌가? 스트레스받으면서 왜 살아? 맞다. 합리적인 질문이다.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은 성장과 만족을 주지만, 사실 스트레스는 사양이다. 감당할 수 있든 없든 누가 시련 주려고 하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와이프는 예뻐서 예외다. 예쁘니까 용서된다. 먼저 이혼해달라 요구하지 않으면 계속 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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