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게 없다. 의지는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구글에 '글쓰기 질문'을 검색했다. 적당한 결과를 보여줬다. '글쓰기 좋은 질문 642'란 책이 있다. 책 소개문에 몇 가지 예시가 나왔다. 흥미로운 질문을 발췌한다.
1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 종종 1초는 충분히 길고, 결정적이다. 김태희 얼굴을 보고 미인이란 걸 깨닫는 데 1초도 필요하지 않다. 1초의 위력은 거대해진다. 방아쇠 당기는 데, 미사일 발사 버튼 누르는 데 1초. 한 번의 클릭으로 누군가의 목숨, 다수의 목숨이 사라진다. 금전도 마찬가지다. 클릭 한 번에 인생에서 번 모든 돈을 쓸 수 있다. 인간 생산활동의 전리품(돈)은 스크린 위에 숫자로 존재한다. 그것의 행방이 1초로 결정된다.
옛날 옛적 만났던 친구는 항상 같은 향수를 뿌렸다. 길을 걷다 문득 그 향을 맡는다. 미향이 코를 스치는 1초가 과거로 안내한다. 서툴던 연애, 성숙하지 못한 나(물론 지금도), 이내 연애를 넘어 그때 나를 구성했던 모든 것으로 확장된다. 홀로 지내던 반지하 아파트, 이천 시내, 동네 쉼터, 싸이월드 조회수 조작, 새벽부터 하던 테일즈 위버, 부모님이 주던 용돈, 쌓인 택배 상자 등. 후각 자극한 1초가 시간 여행의 동기다.
사람은 상시 할까 말까 경계에 선다. 임계점에 1초가 결정을 이끈다. 그 1초 없이 하지 않았을 선택이 무수하다. 결정적 1초는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주말 아침, 피곤하다. 외출할까 말까. 집에 머문다에 승리 판정하려는 순간, 창밖에 가죽재킷 걸친 또래 남자가 지나친다. 얼마전에 산 새 재킷이 떠오른다. 그걸 걸치고 바깥공기를 쐬고프다. 남자를 본 1초가 마지막 지푸라기다. 낙타 등 무너지듯, 귀찮음 무너진다. 그렇게 나선 집 밖에 새로운 인연, 새로운 사건이 기다린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꿀 사람, 혹은 사건일지도.
화초가 죽고 있다. 화초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 안녕 화초야. 나는 너에게 살 것을 권유하러 왔단다. 내가 좋은 설득자는 아니란 사실을 먼저 말해야겠다. 나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거든. 분명한 삶의 이유를 알았다면 너를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 논리적으로 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할 자신이 없어. 내 삶의 99%가 비논리야. 어쩔 수 없이 감성의 영역을 파고들어야겠다.
난 네가 안 죽었으면 좋겠어. 네가 죽으면 난 슬퍼. 세상에 무수히 많은 화초가 죽고 있어. 난 그 죽음을 막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 너를 위해선 노력할게. 네가 내 인식틀 안에 들어와버렸거든. 이 순간 내게 중요한 화초는 너뿐이야. 중요한 것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아. 질문은 너를 실체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 이제부터 너의 죽음은 나를 슬프게 만들 거야. 이제 나는 네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됐어. 나를 위해 살아줘. 살다 보면 이런 삶의 이유가 하나 둘 생길지 몰라.
근거 없는 소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써보라: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예언가가 있다. 그가 한 예언은 전부 이뤄진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최근에 새로운 예언을 했다.
"멜버른에 거주 중인,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880815로 시작되는 잘생긴 한국 남자가 머지않아 큰 부자가 된다"
이 예언은 현실이 될 것이다. 난 참 난처하다. 이 예언의 주인공이 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언엔 사실과 가치중립적, 그러니까 입증책임이 있는 서술이 섞여 있다. 주거지, 국적, 성별, 생년월일은 사실이다. '잘생긴'이란 수식은 잘생김의 기준을 요한다.
나는 간절히 부자가 되길 바란다. 내가 예언의 주인공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예언이 말하는 잘생김의 정의를 알 필요가 있다. 내가 기준에 부합한다면 감사하면 되고, 부합하지 않는다면 기준에 맞춰 잘생겨질 계획을 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예언가를 만났다. 예언가는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를 맞아 줬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예언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잘생김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예언가는 대답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대답을 음미했다.
당신의 부고를 작성해보라: 2129년, 띤떵훈은 1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본인 소유 우주선 Space-XBOX007을 타고 은하 여행 중, 우주 폐기물과 충돌해 생을 다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항상 행복을 분명히 인식하였고, 감사하였다. 죽는 날까지 행복이란 단어가 그의 입을 벗어난 적이 없다. 블랙박스에 담긴 마지막 메시지는 '아~ 좋은 삶이었다'였다.
생전에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재산의 90%는 그의 재단에 귀속된다. 재단을 통해 사회에 부를 환원할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로 시달리는 환자들의 병원비, 취약계층의 학비, 인권단체 활동 자금, 파괴된 자연환경을 복구하는데 쓰일 것이다. 나머지 10%는 배우자의 향락과 사치를 위해 쓰일 것이다.
그는 젊어서 적당히 근면했고, 투자를 통해 부를 일궜다. 후엔 기업을 인수해 투자회사로 성장시켰으며, 꾸준히 이익을 창출해 주주에게 환원했다. 회사 안에선 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힘썼다. 60세엔 기업 운영에서 은퇴하고 지구와 우주를 떠돌아다녔다. 그는 청소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로 꼽았다. 은퇴 전엔 통풍 잘 되는 피케 셔츠를 입고 본인 회사를 청소했다. 은퇴 후에도 가끔씩 명상과 독서, 운동 목적이라며 피케 셔츠를 입었다.
그는 독서가였다. 매일 읽고, 글로써 작가들과 이야기 나눴다. 책에서 쉽게 감명을 받았다. 작가의 인사이트에 경탄하며 이북에 하이라이트를 남겼다. 비록 문학 작품은 거의 읽지 않았으나, 문학, 비문학 구분 없이 작가를 지원했다. 국내외 유명 문학상의 스폰서가 되었다. 전업 작가를 꿈꾸는 재능 있는 젊은이, 늙은이를 위한 기관, 'check check check 책 쓸 사람 check'을 설립했다. 훌륭한 작가를 많이 배출했다.
그는 여유와 웃음을 아는 사람이었다. 타인에 화내지 않고, 비난하지 않았다. 당근 주는 방법을 잘 알았으며, 웃음으로 타인을 포용했다. 100세가 넘어선 종종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 올랐다. 재미가 없었지만 웃음 전도하겠다며 기어코 웃음보따리 풀었다. 무대는 본인 소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