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를 준거 집단에 놓으면 인생 고달파진다. 유튜브엔 대단한 사람, 혹은 대단한 성취가 모여 있다. 아침엔 '초봉 1억, 미국 대기업 취업했어요'란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연봉 1억 벌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회사 연봉+ 본인의 유튜브 수입을 합쳤을 때 1억이란다. 의대생 남자친구와 밤새며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 유튜버는 일과 사랑 다 잡았다. 이 영상을 보니 심술보가 나왔다.
일전엔 구김살 없고, 예의바른데, 영리하고 노래 잘하고 돈까지 많은 오뚜기 딸이 유튜버로 데뷔했다. 영상 퀄리티도 훌륭했다. 그는 열등감을 유발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내 안에 전과 1범이다. 기분상해죄다. 유튜브 보며 속 좁은 사람이 된다. 인정하기 싫어 구독과 좋아요 누르고 종종 응원 댓글 남긴다.
왜 유튜브를 보면 기분이 나쁜가? 영상은 내가 열정 없다는 사실을 환기 시킨다. 뭔가를 강하게 원하고, 밤 새워가며 노력한 적이 언젠가? 까마득하다. 8년 전에 사업하겠다고 투잡 하며, 짬짬이 공부했다. 분명한 계획도 있었다. -사업 성장시켜 궤도에 올린다. 그 후엔 직원들이 벌어주는 돈으로 학교 다니며 호의호식한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배가 불렀다. 완전하진 않지만 타협 가능한 시점이 왔다. 노력 안 해도 한 가지 본질적인 목표(아무튼 돈 많이)를 달성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주식 시스템이 전복되지 않는 한 나는 부자가 된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걸로 열심히 살 필요가 없어졌다. 이 와중에 밤잠 줄여가며 새로운 길을 뚫어가는 이의 모습은 내 나태함을 비춘다. 모놀로그 하는 주인공에게 직빵으로 조명 비추듯 말이다. 조명 밖에 존재하고픈 나를 방해한다.
둘째, 유튜버는 청소부란 직업이 인정투쟁 측면에서 경제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여러 유튜버가 썸네일과 제목에 직업을 강조한다. 청소는 돈 주고 재미 준다. 그와 별개로 잘난척 할만한 직업은 아니다. 의사나 데이터 분석가, 변호사, 문화재 전문가는 그 반대다. 한국보단 덜하지만, 직업은 인간의 가장 큰 기표다. 한 가지로 수입과 근무 환경, 학업 수준, 태도 등을 미루어 볼 수 있다. 나는 인정욕망 채우기 위해 다양한 행동과 증명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인정투쟁'이다. 반면 와이프는 '문화재 전문가'라는 직업으로, 처남은 '의사'라는 직업으로, 친구는 '치과 의사'란 직업으로 여러 증명을 건너뛴다. 7년 전에 사업 시작했을 땐 '젊은 사장'이란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젊은'도 '사장'도 반납했다. 30대 자영업자는 평범하고, 사장이라 하기에 사업 규모도 크지 않다. 내 양심이 정정한 내 직업은 '청소부'다. 인정욕구 채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수입을 근거로 어깨에 힘줬다. 이제 아니다. 호주에서 내 나이에 이 수입은 내세울 만한 게 아니다. 이번에 와이프가 승진한다. 승진하면 수입은 얼추 비슷해진다. 몇 년 후면 그녀 연봉은 10만 불을 돌파한다. 나는 사업 키울 욕심이 없다. 내 수입은 평행을 유지할 것이다. 와이프에게 수입이 추월 당할 예정이다. 이름 모를 사회 초년생 유튜버는 당장 1억 수입을 올린다. 어, 열받네? 잘난척할 여지를 안 준다.
여기서 2가지 대안이 나온다. 1. 열정과 밤샘을 요구하는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기표를 획득한다. 2. 이대로 살며 40대에 경제 독립하고 파이어족으로 산다. '백수입니다. 불로소득으로 먹고살고 있어요.'는 쿨하다. '(경제 독립한) 백수'는 세상 99% 직업보다 효율적 기표가 된다. 그 기표엔 끈기 있고, 영리하고, 돈 많고, 인생 즐길 줄 아는 사람 등의 맛있는 기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2번이 끌리는데, 노동하는 동안 유튜버와 비교하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아니, 비교는 노동 종료 선언 후에도 이어진다. 기표는 얻었을지언정 열정은 부재할테니. 2번 대안을 고수하는 동안 유튜브 시청을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