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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2. 2021

두 번째 오 박사



좋아하는 오 박사가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 내 인생에 오 박사는 한 명이었다. 그 분은 파이리 꼬부기 이상해씨 중 하나고르라 했다. 덕분에 포켓몬 월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은사님은 여정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스승의 날도 안 챙기고, 심지어 오 박사님 이름도 모른다. 불량학생은 웁니다. 다행히 두 번째 오 박사님의 이름은 외웠다. 오 은영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전 주주로서, 엔터 업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큼직한 연예계 사건에 관심이 생긴다. 한 뉴스 기사를 통해 최근에 전 동방신기 멤버 김 준수 씨가 한 방송에 등장했음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출연한 방송에서 SM과의 관계를 털어놨다고 한다. 계약금과 계약 내용, 소속사 효력금지 처분 이후의 경제 상황 등에 대해 언급했다. 방송 시청은 업계의 섭리와 수익 분배 방식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계기다. 그간 JYP, SM을 투자해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이런 정보는 추후 수익에 도움이 되리라- 하고 본 영상이었는데, 목적을 잊고 상담사의 상담에 감탄하느라 정신없었다. 오며 가며 봤던 이름이 머리에 각인됐다. 오 박사님의 상담은 인상적이었다.

우선 그녀는 달변가다. 적절한 어휘로, 적절한 속도로,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달변가를 좋아한다. 달변이 가능하려면 안건에 대한 지식이 전제된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낼 순 없는 노릇이다. 물론 깊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1이 2라는 사실은 당연하다.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미묘한 인간 심리와 예시에 상응하는 학계 용어를 레퍼런스 하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할 수 없다. 전문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막힘없이 말하는 능력은 귀하다. 내 시간도 귀하다. 본인도 모르는 이야기 두서없이 하는 사람에게 쓸 시간 없다. 그럴 바엔 전설의 주먹 92년생 제갈 건의 싸움 썰 듣겠다.

오 박사님은 말을 잘하는데, 듣기는 더 잘한다. 이는 더욱 귀한 능력이다. 내겐 이치에 맞는 행위기도 하다.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전문 대중 강연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대중'이란 단어가 가진 가벼움, 비전문성 때문이다. 내 곁엔 밀도와 깊이를 가진 '책'이란 대안이 상존한다. 이는 오 박사님도 피해 갈 수 없는 영역이다. 내용과 별개로 대중 강연의 말하는 방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 대체로 교조적이다. 그들은 판단이 빠르다. 대니얼 카너먼의 말을 빌리자면 시스템 1의 강연이다. 본인의 경험으로 표본을 수집한다. 몇 가지 단어나, 행위 등을 통해 전문가 특유의 직관이 발현된다.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준다. 시스템 1의 결론은 타인의 문제에서 더 쉽게 등장한다. 훈수는 책임과 부담이 덜하고, 잘 듣지 않는다. 다른 판단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단 뜻이다. 한정된 자료에서 한정된 결론이 도출된다. 그 과정에서 청자는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여기지 못한다. 들어야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오 박사님은 말을 덜 하고 듣는다. 경청은 도움이란 목표에 부합한다.

듣기 능력만큼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를 주로 사용한다.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분명히 힘들었을 거예요. 애썼다. 잘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공감의 말이 나오자 패널은 눈물을 보인다. 오 박사님은 철저히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청자가 이해받고 있다는 인식,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을 얻게 된다. 반면 개인의 영역에 대해선 확실히 짚는다. 내가 응당 누려야 하는 올바른 의사 표현과 감정 표현의 기준과 범위를 언급한다. 이런 기준은 그녀 말에 따르면 트루 셀프(내가 보는 나)와 펄스 셀프(대외적 나)의 괴리가 커지지 않게 돕는다. 내가 응당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하고, 타인이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을 설명한다.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례하지 않음을, 건강한 일임을 설파한다. 공감이 먼저 자리를 잡아 따끔한 이야기가 들어갈 공간을 마련한다.

내게 좋은 책과 영화를 나누는 큰 기준 하나가 있다. '작품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가?'란 질문이다. 시청, 독서하며 얻은 즐거움을 무시할 순 없다. 경험자아도 소중하다. 다만 그 이후에 즐거움에서 확장되는 어떤 것이 있는 지도 중요하다. 기억에 남아 내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유익한 질문이다. 오 박사님 강연을 보고 질문에 그렇다 답했다. 나의 정신은 건강한지, 인간관계에서 내가 응당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이며, 상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생각했다. 넷플릭스가 시리즈를 통째로 공개하는 이유는 몰아보기(Binge watching)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통계적으로 몰아보기 이후에 주변 지인에게 작품 시청을 권유할 확률이 높아진단다. 유튜브를 통해 그녀의 프로그램 '금쪽 상담소' 세 편과 '금쪽 수업' 한 편을 몰아봤다. 덕분에 이렇게 타인에 권유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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