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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Dec 13. 2021

합리라는 환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합리'다. 합리의 사전적 정의는 '이치에 맞음'이다. 타성과 거리를 두고, 주체적으로 살겠단 의지가 담겼다. 합리와 수좌를 다투는 단어는 '논리'다. 같은 이유다. 논리와 합리로 모든 오류와 편향과 어림짐작을 타파하리라. 일명 부조리 브레이커. 합리의 정점, 합리의 집합, 합리의 화신이 지향이었다.



2021년은 부조리 브레이커의 토대가 무너진 한 해다. 행동경제학과 만남 덕분이다. 탓, 때문이 아닌 '덕분'다. 부실공사 인지는 삶에 도움이 다. 불가능을 가능이라 주장하는 억지를 멈췄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은 데서 오는 기쁨도 누린다. 다르게 말하면 무지의 지를 깨닫는 즐거움이랄까. 테스형! 보고 있지?



내 삶의 관점을 가장 크게 바꾼 책은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일전에도 블로그에 관련 글을 수차례 작성했다. 영제는 Thinking fast and slow다. 빠른 생각과 느린 생각이란 제목인데, 직관적으로 책의 내용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빠른 생각은 시스템 1, 느린 생각은 시스템 2다. 우리 행동의 99.999%는 시스템 1의 영향 아래 놓인다. 인간은 무한에 가까운 정보에 노출된다. 모든 정보를 해석할 수 없다. 뇌가 과부하로 사망할지 모른다. 뇌는 인식할 정보를 선별한다. 대다수의 정보는 휴리스틱(어림짐작)과 편향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뇌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오랜 사고가 필요한 일부 정보가 시스템2로 간다. 시스템2는 게으름쟁이다. 그마저도 귀찮다고 일감을 반려한다.  결과 인간은 합리적 판단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책에선 다양한 편향을 알려준다. 나무위키 편향에 관한 문서가 이를 포함한 다양한 편향을 알려준다. 사후 판단 편향, 선택 지지 편향, 기억 자아 편향, 자기 본위 편향, 생존자 편향, 확증 편향, 기준선 편향 등이 있다. 특히 재밌는 편향은 기준점 편향이다. 질문과 전혀 무관한 기준점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대답이 바뀐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실험장 오는 길에 숫자 85를 적어놓는다. 피실험자는 그 숫자를 본다. 실험자는 역사적 인물의 사망 나이를 묻는다. 85에 가까운 답을 내린다. 편향은 인간의 합리성이 휘둘리기 쉬움을 알려준다.



책을 읽고 나의 일과를 돌아본다. 일상 전반에 비합리가 산개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우리집 초가집이었구나! 합리의 신화가 붕괴한다. 눈이 벌떡 뜨였다. 그 후에 넛지, 넛지의 천재들 등의 행동경제학 서적을 연달아 읽었다.



오늘은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를 읽었다. 그는 블랙 스완의 저자로 유명하다. 이 책 역시 행동경제학을 적극 인용한다.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국부론, 꿈의 해석과 같은 고전에 오를 것이다"란 그의 말이 행동경제학을 향한 신뢰를 보여준다. 카너먼의 회상 용이성, 대표성 휴리스틱이 책에 등장한다. 행동경제학에 대한 감동이 잊힐 무렵이었다. 카너먼의 통찰이 전해준 경이로움이 되살아났다.



합리적 삶, 절대 진리는 환상이다. 나는 그 신화를 품고 살아왔다. 좋은 책의 역할은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데 있고,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정도가 대단했다. 나 또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종의 기원 같은 고전이 되리라 믿는다. 태지 형 말대로 환상 속에 내가 있었다. 책은 빨간약이다. 나는 더이상 환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합리적 삶이 신화로 밝혀졌을지언정 합리와 논리를 향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강해진다. 인간 합리의 토대가 얼마나 부실한지 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 꽃피우는 합리성은 귀하다. 99.999%의 정보를 관장하는 시스템 1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한편, 나머지 0.0001%의 결정과 판단을 하는 시스템 2가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여러 편향을 인지하고, 요령껏 피하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행동경제학과 논리학 책을 통해 편향과 논리적 오류를 학습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탐구해야 한다. 그러면 시스템 2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행운과 감정이 성취 대부분을 관장하는 삶 속에서도 내 몫을 주장하게 말이다.



인용문으로 마지막 문단을 채울까 한다. '행운의 속지 마라' 속 나심 탈레브의 말이다.



- 단지 내가 운에 속기 쉽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감성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만큼만 똑똑하다. 나는 감정에 지배받는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기 때문에 기쁘다. 나도 이 책에서 내가 조롱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뿐만 아니다. 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다. 더 나쁜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조롱한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스스로 이 사실을 의식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 확률을 공부하고 이해하려고 애썼어도, 나의 어리석은 유전자 탓에 감정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두뇌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한다고 해도, 나의 가슴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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