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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Dec 24. 2021

겸손의 아름다움과 겸손하지 않은 나



겸손은 아름답다.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함을 드러내지 않을 때 더 대단하다. 그것은 효율적이고 합리적 행동이다. 잘남을 드러내면 적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잘남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들의 몰락을 염원한다. 누군가의 잘남은 칭찬보다 더 큰 미움을 불러온다. 잘나도 못난 듯 사는 게 인생에 리스크를 줄여준다. 또한 잘난 게 분명한 이들이 모난 부분을 드러내며 자신을 낮출 때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공감하고, 이쪽에서 숨겨진 상대의 장점을 찾게 된다. 겸손한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타인이 자신의 성취를 진심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겸손은 효율적이다.




우리가 누리는 환경과 성취의 대부분은 내 능력과 무관한 것에 기인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건강하게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중요한 행운의 도움을 받아 이룩한 결과다. 우리보다 잘나고 소양 있는 이들이 합당하지 못 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본다. 공평한 사회고 능력주의 사회라면 그런 대접을 받아선 안 된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우리의 인생은 환경과 행운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겸손은 이치에 맞는 행동, 그러니까 합리적 행동이다.




위 두 문단을 쓴 당사자는 겸손하지 않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묻는다면 송구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나는 속된 말로 '조또 없는 사람'이다. 특출나게 잘난 점이 없다. 인격적으로도 성숙하지 않다. 사회적 지표에서 내세울 게 없다.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고연봉의 대기업을 다니지도 않고, 사짜 돌림 직업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키가 180cm를 넘지 않고, 이목구비가 질서정연한 것도 아니고, 신체 비율이 좋은 것도 아니다. 외국에 10년 가까이 살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 하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자꾸 좋은 점에 눈이 간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 와우! 반이나 남았잖아. 몇 모금 마셔도 남을 정도네. 야호~~~반이나 남다니 정말 끝내주는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조또 없지만 완전 없진 않다. 무의식은 얼마 안 되는 '있는 것'에 온집중한다. 키는 한국인 평균보다 큰 편이고, 얼굴도 멜번 여신(배경 사진에 와이프)과 결혼할 커트라인은 넘겼고, 직업이 화려하진 않아도 안정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입과 여가 제공한다. 영어를 잘하진 않아도 생활할 정도는 된다. 더 큰 문제는 '반이나 남은 물'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이 만족과 즐거움을 숨길 수가 없단 사실이다.




태생이 겸손하지 않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모두에게 재능을 한 가지씩 줬다면, 나는 낙천성을 받은 게 분명하다. 다른 말로는 합리화. 내 합리화하는 능력은 끝내준다. 가지지 못한 것은 전부 신포도다. 내가 누리는 얼마 안 되는 것들은 우연과 행운의 산물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환경에 감사해 마지않는다. 와 177cm까지 크다니. 부모님 두 분 다 160cm 대인데, 나는 운이 좋군. 될 놈은 되는구나. 비율이 좋지 않아 유니클로에서 바지 살 때 수선해야 하지만 170 후반까지 컸다는 만족을 막을 순 없다. Can you 대신 Could you please를 사용하는 자신의 매너와 영어실력에 감탄한다. 이거 이거 스타벅스에 코리안 킹스맨이 등장하셨군.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내 겸손치 못한 태도는 행복한 나를 만들었다.




겸손은 아름답다. 나는 겸손하지 않다. 세상은 나를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를 아름답게 본다. 겸손하지 않은 나는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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