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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05. 2022

죽도록 즐겼고, 더 죽도록 즐길 예정

죽도록 즐기기 독후감




닐 포스트먼이 1985년 쓴 미디어 비평 서적이다. 사회학 모임의 3월 발제 도서다. 수준 높은 모임 덕에 수준 높은 책을 읽게 됐다. 책의 핵심을 정리하자면 형식(form)은 내용(contents)를 규정한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분명한 책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단점이라는 말 대신 사용했다.



좋은 점은 명쾌한 비교다. 초기 인쇄물과 80년대 TV 영상물의 영향과 세간의 인식을 병치시켜 이해가 쉽다. 저자가 분명한 인식을 갖고 쓴 책이어서 주장이 상시 직진한다. 사례가 나와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을 이해하기 용이하다. 



매체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근대와 현재(1980년대)를 비교하며 설명한다. 정보 전달의 주요한 수단이 인쇄물에서 영상물로 바뀌었다. 초기 인쇄물의 특징은 글이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인쇄 기술과 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기 전이라 그렇다. 초기 인쇄물은 논증에 충실하다. 사진이나 영상처럼 본질을 호도하고 유야무야 넘어갈 건덕지가 없다. 글은 말보다 책임감이 있어 주장에 근거를 붙인다. 



글은 말보다 책임감 있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휘발되는 말과 다르게 글은 남는다. 한번 지면에 실린 글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논리 구조를 갖춘 완성성을 전제한다. 말은 쉽게 바뀐다. 행동 경제학자 리처드 카너먼은 우리의 기억력이 얼마나 약한 토대 위에 위치한지 알려준다. 우리의 기억 자아는 주위 환경에 쉽게 영향받는다. 내가 봤어요. 범인은 180 정도의 40대 남성입니다. 실제 범인은 170의 20대 대머리 남성-이라는 예시가 쉽게 눈에 띈다. 우리의 기억력은 너무 험블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절차가 단순하다. 반면 글은 아니다. 더 많은 제약과 절차를 따라야만 세상에 등장한다.



 아쉬운 점은 비교 대상이 너무 옛날이란 사실이다. 요즘, 현재, 우리가 가리키는 지점은 TV와 케이블 네트워크에 중독된 1980년대 미국인이다. TV 없이 산 지 10년이 지났다. TV는 우리 삶에 없어선 안 될 친구가 아니다. TV 없어도 사는데 문제없다.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날로달로 약해진다. 1985년은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다. 37년 동안 미디어는 큰 두 가지 혁명을 맞이했다. 인터넷과 스마트 디바이스. 그 거대한 변화가 지면에 등장하지 않아 안타깝다. 



안타까운 지점(2번의 미디어 혁명의 부재)은 나의 모자란 머리와 사회학 모임원들의 눈부신 지성으로 채울까 한다. 



책을 읽고 떠오른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구조주의와 돈 룩 업(Don't Look Up)이다. 우선 닐 포스트먼의 대전제 -형식은 내용에 영향을 끼친다-에 동의한다. 이것은 내게 영향을 준 큰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몇 가지 질문 후에 나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했다. 같은 맥락에서 구조주의와 행동경제학, 기본소득에 동의한다. 큰형님(high-따거)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다. 형식이 본질을 앞선다는 개념이 같다. 또한 행동경제학은 이성의 판단 토대의 가변성을 언급한다. 우리는 다 소중한 사람이지만 환경에 따라 펼칠 수 있는 날개의 각도가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보장하자는 게 기본소득이다. 


닐 포스트먼이 중간에 언급한 위대한 관찰자 루이스 멈포트가 멋진 문장으로 형식의 위력을 지적했다. 


"시계는 분과 초라는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계장치와 같다"


인간이란 종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 위에서 산다. 우리의 사고는 이 두 교차점 밖에선 존재할 수 없다. 아 인간으로 태어나 너무 답답해. 불만 있으면 뒤지시든가. 시간은 흐르고 있다. 138억 년 전부터 시간은 쉼 없이 달려왔다. 고생 많았다. 인간이 시간의 노예가 된 시점은 시간이란 개념이 생긴 이후다. 그 단위가 짧아질수록 시간의 위력은 강해졌다. 우리가 만든 개념이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루이스 멈포드의 저 한 마디가 이 사실을 잘 보여줬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두 번째 단어는 돈 룩 업(Don't Look Up)이다. 영화는 '죽도록 즐기기'의 영화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는 닐 포스트먼의 논조를 담고 있다. 미디어 세계의 언어는 현실과 어긋나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세상의 말(현실을 자각하라!)을 하는 제니퍼 로렌스를 지적한다.


 "미디어 트레이닝이 필요하겠네요" 


전신의 발명은 관련 있는 것을 관련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지구촌은 글로벌 이웃이란  피상적 존재를 만들었다. 뉴스는 쓸모없는 정보 집합체로 전락했다. 포스트먼 말처럼 삶에 무관한 뉴스가 '정보 대비 행동비율'을 극적으로 낮췄다. TV 이후 시대(닐 포스트먼은 TV 시대로 말하지만 이후 시대에 패턴은 강화됐다)에 오락은 모든 담론을 압도하는 지배이념이 됐다. 우리는 즐겨라, 경험해라 이데올로기에 산다. 새로 생긴 카페에 아인슈패너 마시고, 일본 료칸에서 가이세키 먹고, 호캉스 가서 인피니티풀에서 비키니 사진 찍어 올려야 할 것만 같다. 멜버른 버전으론 Her 5층 루프탑 펍 가서 한잔하고, 몬스터 피자에서 코리안 피자 먹고, Tori's 카페에서 맛차 케이크 먹어야 한다. 낭만주의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SNS란 확성기를 타고 귀에 박힌다.



미디어는 모든 비극과 참상을 주마등처럼 비춘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찰나의 공감을 보내 본인의 인간다움을 자각한다. 미디어 언어에 따른 대부분의 비극은 이런 맥락에서 불행 포르노다. 정보 대홍수 속에 행동은 가뭄이다. 정보 대비 행동비율은 0에 수렴한다. 영화 돈 룩 업이 이런 세태를 영화의 언어로 잘 설명한다.



과잉순응이란 해결책을 취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의 창시자다. 미디어 이미지가 현실을 전복함을 지적했다. 책의 핵심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복제품의 가치 전복의 해결책으로 과잉 순응을 꼽았다. 과하게 순응해서 어색함을 만들라. 어색함이 우회적으로 현실을 보게 만든다는 전략이다. 전쟁 얘기 뒤에 자넷 잭슨 젖꼭지 얘기가 등장한다. 가치의 일관성을 없애고 정신적 병리 현상을 유발한다. 자넷 잭슨 젖꼭지같은 마무리가 필요하다.



띤떵훈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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