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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r 14. 2022

적당히 즐기는 모임

사회학 모임 비전




 사회학 모임 비전은 유익하다. 한달에 한 번 네이버 웨일에 토론의 장이 열린다. 모임원은 발제 도서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 모임에 임한다. 반년 가량 참석했다. 고정 모임원은 넷이고, 읽고 쓰는데 진심인 사람들이다. 양질의 대화가 오간다. 모임은 지적 만족감을 채워준다. 독서 모임의 목적은 교양 획득이다. 비전은 합목적적이다.




고정 멤버들은 모임에 적합하다. 세 가지 이유다. 우선 읽고 온다. 모두가 책 내용을 숙지한 상태다. 따로 시간 내 책 설명할 필요가 없다. 독서 모임 3군데 참여하고 있다. 각각 매주, 격주, 매달 이뤄진다. 홍철 없는 홍철팀이다. 의외로 독서 없이 독서 모임에 오는 사람이 많다. 독서 모임의 기본은 책을 읽고 오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기본을 지키기 어렵다. 참여에 감사할 판이다. 읽고 오는 사람이 반가울 수밖에.




두 번째 이유는 대화 매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의견과 나를 동일시한다면 반대 의견에 상처받기 쉽다. 의견과 자신을 나누는 연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독서 모임을 만끽할 수 없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다. 타인과 의견 차이는 필연적이다. 다름을 능숙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모임 분위기를 좌우한다. 지금까지 소란은 없었다.




마지막 이유는 독서 실력이다. 읽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많이 읽는다고 장땡이 아니다. 나처럼 도장깨기 식으로 읽고 바로 잊어버리는 이는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다. 기술적 책 읽기는 읽는 과정에서 질문하며, 자신이 가진 지식과 비교하고, 교차 검증하고, 마지막으로 글로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기술적으로 독서했음을 깨닫는다. 통찰은 충실한 독서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내가 미처 보지 못 한 영역을 가리킨다. 그들의 의견이 생각을 확장한다.




전날 중심이 된 책은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다. 미디어 비평 서적이다.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담론을 만드는 중심이다. 저자 말마따나 형식은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미디어의 형식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를 조망할 수 있다. 20세기 말 담론 형성의 중심이 된 TV 방송이 중심 미디어다. 반세기 전의 문자 매체와 비교를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했고, 매체가 사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힌다.




모임에서 나온 중심 토픽은 '책'이다. 사람은 각자 관심사를 말한다. 독서에 진지한 이들이 책 얘기 나눈 건 당연한 일이다. 활자가 세상의 중심 미디엄이었던 시기와 영상이 중심이었던 시기의 아젠다 처리법이 다르다. 자연히 수용자의 태도도 다르다. 읽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입장을 달리한다. 글은 책임감을 요구한다. 지식이 글로 거듭나기 위해 문장, 문단이랑 틀과 논증이란 형식이 필요하다. 인쇄된 글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반면 브라운관(관습적 표현 죄송) 위 지식은 다른 형식을 따른다. 물론 그 안에서도 나름의 논리가 있고 인사이트가 있다. 다만 방송 위 모든 내용은 재미라는 최고 가치 아래 종속된다. 영리단체인 방송국은 돈을 벌어야 한다. 시청률은 돈이다. 재미가 모든 가치의 정점에 선다. 논증과 토론, 긴 비평은 재미와 대척점에 있다. 진지충 극혐- 이라는 신조어는 방송계에 슬로건이 된 지 오래다. 생각이란 귀찮은 일을 유발하는 방송은 방송국과 시청자의 적이다. 책이 완벽하며 올바른 매체란 뜻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진지한 담론이 오갈 수 있는 형식이다.




구성원들의 결론은 조금씩 달랐다. 각 매체의 장점을 인정하고 병행하자라는 투 트랙 전략, 어릴 때부터 책 읽기 훈련을 시켜 책 읽는 사회를 만들자는 독자 육성 전략,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달관 전략. 미디어의 미래, 출판계의 미래를 보는 관점도 조금씩 달랐다. 나는 독서 기피 현상이 심화될 거라 보는 입장이다. 인간은 재밌는 것에 끌린다.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개인이 느끼는 재미의 강도는 저마다 다르다.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소양이 필요하다. 상징체계 이해, 독서를 통한 인문학적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아는 만큼의 기준이 책은 높고, TV나 유튜브 등의 영상매체는 낮다(나도 잘 모른다) 독서에서 재미를 얻으려면 필요한 게 많고 귀찮다. 큰 재미를 위해 귀찮음을 유예할 사람은 많지 않다. 즐길 것을 요구하는 우리 시대 낭만주의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독서 기피를 타파할 유일한(그렇게 보이는) 방식은 활자의 수준 낮추기다. 순간의 재미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책 말이다. 나 혼자만 레벨 업하거나 김치녀 조롱하고 시댁 흉보는 판춘문예의 날것의 재미를 담는 것이다. 미디어 훈련- 다르게 말하면 예쁘고 잘생기고, 쿨하고 너무 진지하지 않은 인간을 다듬는-을 거친 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이 심화되리라 본다. 우리 시대는 진지병 환자와 재미를 유예하는 매체에 관심이 없다.




2022년, 닐 포스트먼의 주장은 신뢰를 얻는다. 우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세상에 산다. 즐길 것이 넘치는, 쾌락에 무제한적으로 노출된 사회. 쾌락은 오웰의 빅 브라더보다 효과적으로 체제를 유지한다. 즐거울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를 통제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울과 좌절은 우리의 탓이다. 쾌락 제공자라는 타이틀은 취하고, 좌절된 쾌락의 발원지란 사실은 은폐한다. 영상이란 메타포가 이 현상에 앞장선다. 모든 미디어가 현실이 아니다. 그래도 책은 실재와 더 가깝다. 돈 룩 업!을 외치는 세상에 룩 업!을 말하는 매체가 책인 셈이다.




우린 죽도록 즐기라 명령하는 사회에 산다. 이 사회엔 위를 보는(Look up), 그러니까 책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 영상은 수동성을 강요한다. 시청자가 그들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 빠르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고, 다뤄진 안건은 증발한다.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죄책감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영상의 본질적 구조다. 독서는 능동적이다. 자신의 흥미와 이해력에 따른 페이스 조절이 가능하다. 원하면 한 안건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 통제권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



독서모임은 눈돌리기를 돕는다. 스펙타클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트루먼이 자신의 인생이었던 쇼를 벗어나는 것만큼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기간 한정으로 스펙타클을 이탈하고 조망한다. 이것이 사회학 독서 모임의 의의다. 모임 중에는 한시적으로 통제권을 되찾는다. 쉽게 표현하자면 적당히 즐기기일까? 즐거움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았다 실감한다. 적당한 즐거움 위해 모이고 생각을 나눠야 한다.






비전 모임원들의 책 리뷰



리나 님

https://blog.naver.com/animus98/222671748882



햇살아래 님

https://blog.naver.com/dreame2000/222671715287



자판 님

https://blog.naver.com/musangbaesu/22266904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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