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전부터 운동하고 있다. 계기는 이사다. 이사한 아파트에 헬스장과 수영장이 딸려 있다. 아파트 관리비로 매달 500불 청구된다. 외국 생활 10년이 됐지만 한화로 생각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50만 원 가까운 돈을 관리 사무소에 주는 셈이다. 나는 노동자 아비투스 풀장착한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므로 소비에 비례한 서비스를 원한다. 공용 운동 시설엔 3대의 에어컨이 가동 중이다. 주기적으로 담당 업체가 청소, 관리한다. 다 내 돈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돈이다. 돈 아까워서 출석 도장 찍는다.
이사 과정에 5kg이 빠졌다. 고생 다이어트가 가장 효과적이다. 체중 감소와 운동이 더해지니 군살 제거가 수월하다. 배우자는 지난 몇 년 내게 핸들 제거하라 요구했다. 영미권에선 뱃살을 러브 핸들이라 부른다. 앞, 옆, 뒤로 나온 뱃살이 보기 싫단다. 가까운 타인의 행복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 백기사신드롬까진 아니지만 나로인해 남이 기쁘면 나도 기쁘다. 한 달 반 사이에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게 됐다. 너도 행복 나도 행복하다.
환경은 중요하다. 갑자기?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능력주의를 비평한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고 있다. 제정임의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능력주의 신화가 어떻게 반지성주의와 포퓰리즘을 불러오는지 말한다. 능력주의가 정말 평등한 것인가? 란 의문에 대한 답이다. 두 저자와 내 답은 '아니다'다. 노오오력이 모든 것을 가능케할까? 정말 기성세대의 지적처럼 젊은 세대의 불행과 곤란이 노오오오오력의 부족 때문일까? 아니다. 환경의 위력을 간과했다.
전역 계획 중 하나는 꾸준한 운동이다. 군 시절 운동에 눈을 떴다. 운동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활력을 제공했다. 운동에 진심인 선임들 옆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몸이었다. 그들이 운동장을 떠나면 거울 앞에 섰다. 흡! 기합을 넣었다. 배에 王 자가 채셔 캣의 미소처럼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다. 흐뭇하게 잔영을 바라봤다. 흐뭇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에 나오니 운동은 시간 내서 작정해야 가능한 행동이었다. 똘기떵이호치새초미, 열 두 간지의 이름이 호명되고 다시 똘기의 시기가 됐다. 12년 뒤 볼륨감 넘치는 러브 핸들이 생겼다.
운동은 안 했지만, 의욕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해야 하는데..."가 입버릇이었다. 문제는 의욕의 불꽃이 몇 분 거리 동네 헬스장 오가는 귀찮음과 회원비 부담할 정도로 뜨겁지 않았단 사실이다. 입으로 의욕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따름이었다.
의욕의 불꽃이 역할을 할 환경이 조성됐다. 녹슨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운동의 톱니바퀴가 돌고 있다. 30분 운동 기구 깨작이고 돌아오는 정도지만 출석 도장은 찍는다. 30분 운동하려고 헬스장 15분 다녀오는 일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선 아니다. 현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 누르면 헬스장이다. 소요 시간 1분은 30분 운동이 길게 느끼게 돕는다. '어렵게 왔으니 상응하는 노력해야지'라는 생각이 헬스장 방문을 귀찮은 일로 만들어버렸다. 쉽게 왔으니 대충 하고 가도 된다. 그 생각이 헬스장 방문 허들을 더 낮춘다. 일단 가니 뭐라도 한다. 안 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 결과도 달라진다.
서울대 진학생의 70%가 경제력 상위 20% 집안 출신이다. 타 대학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다. 샌델의 책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재학생의 대다수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그 경제력을 통한 인프라 활용이 성공 등용문으로 이끈다. 좋은 엄마 아빠 두는 데 노력이 필요한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워런 버핏이 우리 아빠일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길병원 길 여사님이 엄마일 수 없다. 그 지적, 경제적 자원 획득에 노력은 없다.
물론 실력주의, 한국명 노오오오력 이데올로기에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참된 개천용이 존재한다.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성공을 향한 무서운 집착이 모든 장애를 박살 낸 경우다. 이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실력주의의 토대를 단단히 만든다. 소수의 표본이 혜택받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난의 근거가 된다. 야, 얘 봤지? 너도 할 수 있어. 네가 이보다 힘든 상황에 처했어? 아니지? 불만 갖지 말고 하기나 해. 안 되면 네 탓이야.
노력이란 게 수치화하기 어려운 무형의 형질이다. 다만 구체적 상황을 가정할 때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도는 있다. 대입뿐만이 아니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나 대신 공채 알아주고, 전략 세워주고, 가르쳐주고, 스케줄 조율하고, 학교 옆에 집 구해준 부모 밑에서 자라는 학생 vs 본인이 혼자 찾아서 준비하는데 생활비 없어서 알바 뛰고 통학에 3시간 걸리는 학생. 취업이라는 목표까지 같은 노력이 필요할까? 오래 생각할 것도 없다. 자본은 계급을 형성한다. 실력주의는 계급 유지를 공고히 돕는다.
논문 '공정성 이론의 다차원성'에 따르면, 공정성은 분배와 절차 공정성으로 구분된다. 분배는 형평, 평등, 필요의 원칙으로 나뉜다. 한국과 미국은 형평 원칙이 중심에 있다. 형평 원칙은 능력주의의 다른 말이다. 성과에 따라 분배하는 게 공정하다 보는 입장이다. 평등은 절대적 균등 분배, 필요 원칙은 필요한 정도에 따른 차등 분배를 말한다. 각각 원칙이 발원하는 토대와 목표는 아래와 같다.
-형평 원칙: 개인의 성과가 중요한 경쟁 상황. 생산성 향상이 최대의 과제.
-평등 원칙: 집단 내 연대와 협력 의식이 강한 상황. 조화와 화합이 최대의 과제.
-필요 원칙: 집단 구성원 사이에 친밀감과 상호의존성이 높은 상황. 개인의 행복이 최대의 과제.
분단 이후로 성장 제일주의 노선을 택한 한국엔 자연히 형평 원칙이 국가 원칙으로 자리했다. 자본에 따른 계급이 생기고 누릴 수 있는 인프라의 범위가 달라진다. 돈이 전부냐! 경제적 자원과 더불어 지적 자원도 있다는 반론이 예상된다. 몇 번 파고들면 지적 자원은 경제 자원 없이 온전히 성립할 수 없다. 경험의 전승은 경험을 가능케 할 돈과 여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같은 한 달 전 나와 지금 나는 운동을 향해 비슷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한 손과 아름다운 곡선의 러브 핸들은 손가락 마디 아래 굳은살과 근육통으로 변했다. 핸들은 볼륨을 잃었다. 달라진 건 환경뿐이다. 볼품없는 열정이 활동으로 이어지는 환경이다. 적은 노오오력으로 꾸준히 운동할 수 있다. 노력을 돈으로 가정한다. 세상은 같은 성취에 다른 값을 매긴다. 그것이 정의라고 못 박는 사회에 말하고 싶다. 왜 나한테 바가지 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