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Mar 17. 2022

처갓집 밥상, 우리집 밥상



현대 사회는 각종 대물림을 긍정한다. 저마다 시작점이 다르다. 그러니까 가정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한다. 매일 다른 운동장에서 자란 비교군을 본다.



배울 점이 많은 배우자 가족(처가) 얘기다. 장인 장모님은 명문대 철학과 동문이다. 군부 독재에 맞서 운동하며 사랑을 키우셨단다. 장인 장모님, 와이프, 처남이 앉은 테이블에 가족 타이틀 달고 의자 하나를 놓았다. 그들의 식사 시간은 길다. 밥을 먹고 티타임을 갖는다.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사회 이슈를 말한다. 토론은 저마다의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주제가 확장되고 레퍼런스를 불러온다.



구경꾼이 본 이 가정의 밥상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인간 구글인 장인어른은 밥상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화제에 본인의 생각을 덧붙인다. 사실 위주의 주장이 많다. 반면 여성학자인 장모님은 인권을 중심에 놓고 가치 평가가 필요한 이슈에 의견을 낸다. 병리학 전공의인 처남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도 끝마치지 못했지만 나보다 한국말을 잘한다. 이런저런 한국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초등 자퇴생의 방대한 어휘량에 혀를 내두른다. 유창한 한국말로 지식에 무조건 수긍하는 대신, 분명히 본인의 주관을 밝힌다. 처가에서 가장 호주인이기에 호주 사정에 해박하다. 문화재 전문가인 와이프는 그중 논쟁가으로 호전적이다. 본인의 주관이 강해 반대 의견이나 불의에 뜨겁게 맞선다. 예의는 있어 장인 장모님 앞에서 욕은 삼간다.



초등학교 자퇴생 처남의 능숙한 한국말의 비밀이 풀린 날이 있다. 설악산을 가던 차에서 장인어른은 본인의 교육 방법을 말했다. 처남이 한국말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매주, 매달 한 가지 주제를 주고 한글 작문을 시켰다. 본인의 주장과 논증을 정리한 글을 적어올 것을 요구했다. 강제성은 없었고 그렇게 했을 때 처남이 원하는 선물이나 용돈을 주었다고 한다. 먹이 떠먹여주는 대신 먹이 잡는 방법을 알려줬다.




장인 장모님이 새로운 환경을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도 그들의 견문 확장에 도움이 됐다. 아직도 한국에 놀러 갈 때마다 시간 내서 전국의 관광명소, 문화재를 돌아본다. 여행 전에 조사하는지 원래 알고 있던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장인어른은 목적지와 경로 위에 있는 장소를 설명한다. 나의 랜덤 질문을 다 소화하는 걸로 봐선 후자로 추정된다. 처갓집 놀러 가면 장모님이 닭 잡아 주시지 않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우리 부모님을 떠올린다. 내게 한없는 사랑을 주신 어머니, 적당한 사랑을 주신 아버지가 그려진다. 그들에겐 사랑한단 낯간지러운 말을 기꺼이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다채로웠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다. 내 유년기 세상과 배우자의 세상은 크기가 달랐다.



우리 집 밥상에서 오간 대화는 이렇다. 어머니가 고스톱으로 얼마 땄는지 자랑하면 내가 옆에서 봤다고 어머니 대단하고 맞장구쳤다. 우리 어머니는 고스톱의 신이다. 동네 아주머니들 돈 다 땄다. 그 돈으로 과자 사주셨다고 어머니의 업적을 높였다. 혹은 강한 여성이었던 어머니가 시내에서 싸웠던 얘기를 공유했다. 아버지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공감 대신 어머니를 다그쳤다. 돈은 중요한 주제였는데 돈의 중요성을 어려서부터 깨우쳤다. 밥 먹으면 TV 앞에 모여 드라마를 시청했다. 아이구아이구 저년이 나쁜 년이네. 쟤 불쌍해서 어떡해 등의 감상을 남기셨다.



휴일엔 아버지 차를 타고 강가로 떠났다. 아버지는 투망(그물이고 불법이다)을 넓게 펼쳐 한 번에 수 십 마리의 물고기를 낚아 오셨다. 어머니는 그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같이 간 일행들과 종이컵에 다슬기를 잡았다. 나중에 된장 푼 다슬기 탕을 먹었다. 이쑤시개로 콕 찍어 다슬기 살만 쪽 발라먹었다. 강가와 친척 집 방문을 제외하면 집이었다. 디즈니 만화 동산과 타이의 대모험이 일요일을 채웠다.




유년기의 부족한 지식은 책으로 어떻게 채우겠는데, 경험은 그렇지 못하다. 장인 장모의 교육은 그들의 자녀를 명문대에 보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데 익숙한 아이들은 낯선 외국 학교에서 곧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로 자식의 배움을 도왔다. 학교 밖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표본이 없었다. 나는 노력 안 하는 게으른 아이였다. 자기주도 학습이 불가능한 타입으로, 찾아서 공부하지 않았다. 대신 테일즈위버를 열심히 했다. 경험과 지식의 대물림이 만든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도 걸릴 것 같다.




* 주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려 할 수록 불효하는 기분이 든다. 항변할 필요를 느낀다. 공부하고 생각하는 훈련은 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충분한 사랑과 유전자 덕에 낙천성을 얻었다. 속물성도 꼭 나쁘지 않다. 돈에 대한 집착은 내 삶의 동력이다. 노년에 큰 도움이 되리라. 엄마아빠 땡큐~

작가의 이전글 노오오력 요구하는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