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특별하다. 영화보다 영화 외적인 일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보통 시상식 후엔 누가 어떤 상을 탔는지, 어떤 작품인지 설명하는 기사가 올라온다. 이번엔 윌 스미스와 크리스 락의 다툼, 혹은 일방적 폭행 사건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크리스 락이 사회를 봤다. 참여한 배우를 놀리며 시상식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윌 스미스의 배우자인 제이다 스미스의 머리를 농담 소재로 다뤘다. 삭발한 그녀에게 지아이제인 2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윌 스미스는 제이다 스미스의 불쾌한 반응을 보고 시상대로 올랐다. 삭발의 이유는 탈모였다. 속상한 와이프를 대신해 저질 농담의 발원지의 귀싸대기를 날렸다.
대중의 반응은 나뉜다. 잘 때렸다와 과한 처사였다. 국내엔 잘 때렸다가 우세하고 미국 본토에선 과한 처사였다가 우세하다. 특히나 여초 커뮤니티에선 윌 스미스를 옹호하는 유저가 9 할이다.
나는 윌 스미스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내 판단 기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만 정당화될 수 있다. 자기방어의 기준도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 내 신체를 억압하려 하거나, 해하려 하거나, 재산을 강탈하려 할 때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크리스 락은 윌 스미스의 신체를 억압하려 하지 않았고, 해하려 하지 않았고, 재산을 강탈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윌 스미스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게 윌 스미스를 비판하는 다수의 근거다.
반대로 윌 스미스의 옹호 근거는 이렇다. 가족을 향한 모욕은 있어선 안 된다. 공동체 문화권이나 개인주의가 발전하기 전 사회에선 가족 욕은 참지 않는다. 주먹질하거나, 가문의 명예를 걸고 생사의 결투를 벌였다. 이는 대단한 모욕으로 신체 폭력보다 정도가 더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족을 소재로 농담을 하는 것은 맞아도 할 말 없는 짓이다. 또한 그 소재가 그들의 아픔이라면 더더욱. 여성 탈모로 고통받는 제이다 스미스에게 해서는 안 될 농담을 건넸다는 입장이다. 도식화하면 이렇다. 가족의 아픔을 소재로 한 농담은 언어폭력이다. 그 언어폭력은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신체적 폭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윌 스미스의 폭력은 정당하다. 혹은 납득할 수 있다.
윌 스미스 옹호하는 이들은 언어폭력은 크게, 물리적 폭력을 상대적으로 작게 받아들인다. 폭력 노출 정도도 영향을 끼친다 생각한다. 학창 시절 주먹다짐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번쯤은 경험 혹은 목격해 봤을 것이다. 중,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싸움은 일어난다. 혹은 성인이 된 후로도 마찬가지다. 새벽 번화가에서 만취한 이들의 드잡이질을 볼 수 있다. 영미권에선 (신체적) 폭력을 대하는 태도가 강경하다. 다툼이 주먹질로 번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다. 요컨대 폭력의 무게가 다르다.
스탠드 업 코미디의 수위도 고려 대상이다. 어떤 일이든 맥락을 봐야 한다. 스탠드 업 코미디의 수위는 생각보다 세다. 그게 올바른 일은 아닐지언정, 부모님 안부 물어보는 것도 예사다. 자주 나오는 조크 패턴 중 하나다. "너희 엄마랑 데이트했어. 잘 하던데?" 크리스 락의 농담은 기존 코미디의 문법 내에서 다소 점잖은 편이었다.
반대 입장도 이해한다. 이런 농담에 불쾌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사회가 용인하는 범위가 다르다. 대체로 좁아진다. 점점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자, 상대가 불쾌를 표하면 멈추고 사과하자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크리스 락의 농담을 지나치다 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이 사회에서 살기로 한 이상, 문제 제기를 할 땐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방식(법)이 있다. 불쾌함을 주먹으로 해결한다면 전 세계는 파이트클럽이 될 것이다. 구두로 경고하거나, 후에 성명문을 내거나, 보이콧 등의 대안이 존재한다.
같은 행동과 말에 사람이 느끼는 불쾌감은 다르다. 몹시 불쾌한 일엔 주먹 해결이 가능하다란 논리는 다양한 상황을 불러온다. 신체 특정 부위가 콤플렉스인 사람에게 그 부위를 대상으로 농담을 건넨다. 농담을 들은 상대는 몹시 불쾌하다. 따라서 주먹을 사용해도 된다. 가족의 명예를 목숨보다 값지게 생각하는 이에게 가족을 향한 농담은 몹시 불쾌하다. 따라서 주먹을 사용해도 된다. 츄파춥스를 너무 좋아하는데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는 사람에게 츄파춥스를 맛있게 먹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다. 따라서 주먹을 사용해도 된다. 특정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에게 누군가가 소재로 삼은 아이돌의 추문은 몹시 불쾌하다. 따라서 주먹을 사용해도 된다. 될까?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법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쾌함을 주먹으로 갚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