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Mar 31. 2022

헬스장 깨작충



나는 짐(헬스장) 깨작충이다. 00충의 해석은 몇 가지로 나뉜다. 여기서 나는 ~에 충실한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사람인데 벌레 취급받으면 서운하다. 아무튼 한 달째 운동 중이다. 주 5일 이상 충실하게 깨작깨작 거린다. 충실함과 깨작거림(대충)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 보인다. 근데 잘 섞인다. 최선을 다해 운동을 대충한다. 아파트 최상층에 짐과 수영장이 딸려 있다. 접근성이 충실한 깨작거림을 돕는다.



운동할 때 패턴은 이렇다. 퇴근한다. 통풍 잘 되는 상의로 갈아입는다. 17층으로 올라간다. 귀에 이어폰을 꼽고 이북을 청취한다. 건강과 전신 근육 발달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3대 운동을 한다. 정해진 순서 없이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스쿼트를 한다. 운동 기구가 비어 있거나, 특정 부위가 근육통에 시달리거나 하는 등의 변수로 그날의 운동이 정해진다. 넓은 범위의 근육에 관여하는 운동을 하고 나면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뛴다. 3,4 가지 운동을 3세트씩 한다. 강한 심박을 즐기며 집으로 향한다.



운동 강도는 깨작충이란 칭호에 맞게 낮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면 한계까지 덤벨/바벨을 들어 올릴 테고, 개인 트레이너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계 +1까지 덤벨/바벨을 들어 올릴 것이다. 트레이너 친구와 함께 운동을 해본 결과 트레이너의 역할은 인간의 한계를 무게 한 번 더 칠 정도로 늘리는 데 있다. 나는 그와 대척점에 있다. 나는 한계 -1 혹은 -2에서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다. 와 진짜 힘들 뻔했다. 하지만 나는 살 만하지. 내가 자신을 소중히 다뤄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충실하게 중간중간 휴식한다. 한계 -1에서 멈춘다. 핸드폰을 들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확인한다. 세상일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 없다. 친구와의 대화도 재미를 더한다. 학창 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뉴스가 그렇게 재밌었다. 세상이 이렇게 스펙터클하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걸. 닐 포스트먼 형님께서 꼽은 현대 미디어의 특성은? 죽도록 즐기라 명령하는 것. 뉴스를 죽도록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중량 운동은 그 사이사이 휴식에 꿀을 바른다. 꿀 먹느라 시간이 언제 간 지 모른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충실충이었다면 4주 만에 어마어마한 근육을 조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옆구리살이 '안녕?'하며 안부를 묻지만, 전체적으로 근육이 늘었다. 식단 관리도 전혀 하지 않았고, 운동 시 체류 기간도 짧다. 이 모든 대-충 프로세스를 고려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최대의 결과가 나왔다. POE에서 인챈트를 하다 보면 랜덤으로 능력치가 부여된다. 하급 강화석을 발랐을 때 기대 체력 상승률이 2~5라고 한다면, 체력이 5 올랐다. 종국이 형이 옆에서 식단 챙겨주고, 한계 +1로 이끌고, 짐 체류 시간을 2시간으로 늘렸다면 최상급 강화석을 바른 것이다. 기대 체력 상승률 100~300일 텐데 그만큼 몸이 피곤하다. 낙천적인 나는 뱀의 머리로 만족한다. 하하하 용의 꼬리여 그 정도 노력해서 100밖에 안 올랐다니. 나는 요만큼 노력해서 5나 올렸지.



내 신조, 뭐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유노윤호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다. 내게 가장 이로운 벌레가 대충이다. 대충은 대충 하지 않으면 안 했을 어떤 것을 하게 돕는다. 제임스 클리어 형님이 말했듯 아주 작은 습관이 변화를 이끈다. 아주 작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대충 하자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깨작깨작 덤벨 드는 아주 작은 습관은 여러모로 이롭다. 깨작충이어서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