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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09. 2016

긍정 강요

 어머니의 뇌종양이 재발했다. 수술한 지 일 년만에 다른 종양이 생겼다. 의사는 악성이고 수술 중 돌아가실 수 있다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에 나의 하루는 없어졌다. 수술은 빠를수록 좋으나, 대기자가 많아서 보름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완 좋은 작은 삼촌은 수술을 앞당겼다. 수술에 문제는 없었다. 12 시간의 수술 후,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틀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간신히 밥숟가락을 드신다. 삼촌 말론 어머니가 아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원래 수술 날짜에 맞춰 예매한 비행기는 일주일 후 출항한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한다. 죄책감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이 앞선다. 생각이 꼬리를 물 수록 기분은 바닥으로 향한다. 우울해도 나아지는 게 없기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한다. 문제를 외면한다는 사실에 다른 죄책감을 느끼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일과 학교를 제외하곤,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이 안에서 주위를 환기시킬만한 소재를 찾는다. 모바일 게임, 공부, 과제, 인터넷. 끝없는 우울이 효는 아니다.


 어머니는 병이 발견된 작년부터 죽음을 입에 올리기 시작하셨다. 내가 가면 이렇게 저렇게 해라.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 것 같다 등등.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움켜쥔다. 숨이 턱 막히면, 억지로 소리 내어 웃으며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오래 사실 분이 그런 소릴 왜 하냐며 핀잔을 준다. 희망 전도사에게 우울은 어불성설이다. 같이 있는 시간만큼은 긍정적인 기류가 흘러넘쳐야 한다. 모자가 함께 출연하는 장면은 언제고 희극이다. 자식이 인정하면 정말 포기할 것 같다.


 죽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후 세계의 존재 여부는 상관없다. 삶이 만족스럽고, 점점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 그래프의 수치가 순간적으로 떨어질 순 있어도 결과적으로 오를 것임을 안다. 나의 가깝고 소중한 사람 역시 삶을 긍정하며, 행복 안에 살기를 바란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낙천적이 된다. 동네 교회 사람들이 찾아와서 걱정해주면, 어머니의 인복과 사람들의 친절을 입 밖으로 꺼낸다. 날씨가 좋으면 화창해서, 비가 오면 실내에 있어 비를 맞지 않아서, 병원 밥에 나물 반찬이 나오면 건강에 도움돼서, 많이 걸으면 운동돼서 좋다고 말한다. 울적한 기분을 털어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기운 낼 것을 강요한다. 불효와 효를 오간다.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확신이 서질 않는다. 다만 어머니 목소리를 오래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머니에게 살고 싶은 이유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드려야 한다. 왜 세상이 아름다운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에 대해 온 몸으로 설명할 것이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지만, 행복 강요를 멈출 수 없다. 일주일 후 나는 그녀 곁에서 세상이 아름다운 수 백, 수 천 가지 이유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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