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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Oct 21. 2022

재벌집 막내아들

소설 리뷰




재벌집 막내아들을 읽고 있다. 치토스 먹는 기분이다. 책장 넘기는 손이 멈추지 않는다. 5일 동안 한 결제가 10번이다. 하루 이틀 안에 이야기의 마지막을 볼 예정이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드라마 시놉시스 영상 시청이다. 커뮤니티에 신작 드라마 소개 영상이 떴다. 재벌집 막내아들. 경박스러운 제목이다. 이성민과 송중기, 처음 보는 배우가 등장해 드라마 시놉시스를 읽는다. 캐릭터의 목소리로 대사를 읽었다. 그러니까 연기를 가미한 낭독이다. 이성민과 송중기의 연기가 시선을 잡아끈다. 경박스러운 제목과 맞지 않는 무게다. 짧은 영상에 흥미가 동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인생을 엿보고 싶다. 댓글을 보고 원작 소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리디북스에 들어간다.


책은 웹소설이다. 표지만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잘생긴 팔등신 미남, 미녀가 폼나게 그려졌다. 언젠가 웹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과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책이다. 최고의 인기작이란 말이 무색했다. 허접함에 경악했다. 웹소설계의 구조상 어쩔 수 없다. 독서 경험이 없고 독해 능력 부족한 독자가 타겟이다. 에둘러 말하면 안 된다. 첫 몇 페이지에 강한 인상을 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부수고 죽이고 때리고 기연을 얻고 시작한다. 이후 웹소설 근처도 가지 않았다.


리디북스가 중매를 섰다. 1권은 무료로 볼 수 있게 안배했다. 나는 잃을 게 없다. 돈 안 내고 읽는다. 별로여도, 1권 정도는 까는 맛으로 볼 수 있다. 나의 고상한 안목에 감탄할 기회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까다로운 입맛을 실감하는 시간이 될 예정이다.



1권은 의외였다. 환생물 치고 유치하지 않았고, 구성이 탄탄했다. 정치, 재벌, 경제 분야에 자료조사가 제대로 됐다. 환생한다는 설정을 제외하고 논리적 비약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 의외성이 3천 원을 쓰게 만들었다. 2권은 1권보다 나았다. 3천 원을 또 썼다. 3권은 2권 보다 나았다. 3천 원을 또 썼다. 4권은 3권 보다 나았다. 작가로서 인정하게 됐다. 1권에서 보인 어설픔과 비약이 사라졌다. 인기가 궤도에 올라 웹소설 문법에서 자유로워졌단 인상을 받았다. 이노우에 작가가 떠올랐다. 잡지사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던 슬램덩크 연재 초기엔 트렌디 학원물을 그렸다. 인기가 작가의 펜에 힘을 실었다. 슬램덩크가 본격 스포츠 만화로 거듭났다.



분명한 레퍼런스 덕에 작품의 밀도가 올랐다. 진 씨 집안의 순양가는 이 씨 집안의 삼성가다. 라이벌 회사인 대현은 현대, 대현자동차에 인수된 아진자동차는 기아자동차다. 그 외 재벌가와 인물들은 실명으로 다뤘다. 실제로 있던 사건과 인물이 튼튼한 구조가 된다.



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할 수 있다. 나는 돈과 공상을 좋아한다. 지금의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내가 아는 경제지식과 투자정보를 동원해 부자가 될 생각이다. 블로그에도 관련 망상을 몇 차례나 올렸다. 이런 나의 망상을 주인공이 제대로 실현한다. 주인공은 인생 2회 차 특수를 온전히 누린다. 재벌 3세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국제정세를 아는 사람이 총알까지 넉넉하다. 재벌이란 울타리가 맘 놓고 총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국딩이 델 컴퓨터, 소프트뱅크,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드림웍스에 수백, 수천 억을 투자한다. 세계최고초딩부자로 거듭난다. 그 돈으로 삼성(순양)을 지배한다. 어찌 재미없을 수 있겠는가.



주식의 역사를 보면 백루타 쳤던 기업을 목격한다. 내가 배터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가치투자를 추종하는 내가 백루타 칠 일은 앞으로도 없다. 나는 실적이 담보되지 않은 기업을 사지 않는다. 내 투자 근거는 포텐셜이 아니라 가격이다. 잠룡에겐 눈길 주지 않고, 다 큰 용에게 돈을 건넨다. 검증된 기업 싸게 사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론 백배 천배짜리 투자처를 찾을 수 없다. 요컨대 백루타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라캉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욕망의 완성을 이룰 수 없다 말한다. 욕망의 완성은 죽음뿐이다. 내게 백루타가 이 본질적 불가능을 뜻한다. 거세된 욕망을 임시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 승화다. 예술을 통해 안정적으로 욕망을 실현한다. 매 타석 백루타 치는 진도준을 보며 말’한다. 유레카 이것이 라캉의 승화구나!’



책을 읽으며 ‘화려한 일족’이 오버랩됐다. 대기업 자녀들의 권력 투쟁을 그린 일본 드라마다. 일본 최고의 스타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을 맡았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고증, 발군의 연기력이 모여 마스터 피스를 만들었다. 내가 아는 재벌 싸움물의 최고작이다. 재벌 아들 또한 입체적 캐릭터, 고증, 탄탄한 배경지식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그간 갖고 있던 웹소설에 대한 인식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려한 일족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나이 먹고 이 정도 재미를 준 작품을 찾기 어렵다. 내게 판타지, 무협 소설은 온전히 재미만을 위해 존재한다. 웹소설도 마찬가지다. 음악에 머니코드란 게 있다. 다수의 인간에게 먹히는 코드 진행이다. 판타지도 머니코드가 있다. 밑바닥 인생이 기연을 얻어 복수하는 진행이다. 개판으로 써도 재밌다. 최소한의 개연성, 몰입감만 제공하면 기꺼이 읽는다. 문제는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개연성’의 기준이 올라간 데 있다. 해마다 백 권 넘는 양서를 읽는다. 책에 기대하는 수준이 오른다. 몇 페이지만 읽으면 수준 미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머니코드를 사용한 책의 대부분이 수준 미달이다. 



재벌 아들도 머니코드를 사용했다. 잘쓰기까지 했다. 판이 깔리니 온 마음을 다해 머니코드를 즐겼다. 작가가 작정하고 재미를 추구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재미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보다 재밌는 책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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